테이블 No. 7 써버의 신

테이블 No. 7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저녁 손님도 다 빠진 밤 9시.

마감을 하며 팁을 정산하는데 주방에 있던 뱀 사장이 유림 곁에 와 물었다. 집에 저녁 먹을 거 있니?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을 거 아니야.

"아......."

그렇지 않아도 냉장고에 뭐가 남아있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중이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유림에게 뱀 사장은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오늘 직원 점심으로 짜장밥 했었는데 좀 남아서 밥이랑 같이 쌌어. 집에 가져가 저녁으로 먹어."

"우와, 정말요? 그렇지 않아도 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아 고민이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밤길도 어두운데 혹시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니?"


오랜만의 과장된 호들갑이었다. 면접 때 털린 개인 신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가족도 없이 혼자 산다는 것과 데리러 와줄 남자친구가 없는 여자라는 개인정보가 아무렇지 않게 언급되는 것이 불편했다. 게다가 유림은 짜장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도 짜장과 밥을 절대 비벼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년 남자기 쓰는 '했니'체에는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네?...... 아뇨. 운동도 할 겸 걸어서 가요. 별로 멀지 않아서 갈 만해요."

"그럼 내 차 타고 가지? 가는 길이니까 가다가 내려주면 돼."

"말씀 너무 감사하지만 가다가 들를 곳도 있고 해서 괜찮습니다. 그냥 걸어갈게요. 저녁도 챙겨주시고 말씀도 너무 감사합니다!"


일을 마치고 30분이나 걸어서 왔더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침대 위로 뻗어 버리고 싶었다. 유난히 힘든 마감이었다. 설마 했는데 아직도 써버한테 마감 청소를 시키는 식당이 있다니. 유림이 거쳐 온 식당들 중에서 가장 처음 일했던 한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식당들은 그 규모가 크건 작건 청소 업체를 따로 불렀다. 매일 가게 문을 열기 전 업체들이 직원보다 먼저 와서 청소를 하고 가면 직원들이 출근해 그날의 장사를 준비하곤 했다. 물론 그렇다고 써버들이 청결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다. 손님을 받기 전 화장실과 홀 내부를 확인하고 혹시라도 청소 업체가 놓친 오물이나 자국이 있으면 치워야 했다. 뿐 만 아니라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다시 저녁때가 되어 밀물처럼 밀려오기 전 반짝 한가한 오후 시간에 바닥 청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업체를 아예 부르지 않고 써버에게 전부 맡기는 구석기시대 유물 같은 가게가 있을 줄이야.


캐나다에 온 후 식당에서 일하면서 들어온 오가는 말들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일을 구할 때 스시 셰프는 밥 까는 기계가 있는지, 써버는 청소 업체를 부르는지부터 알아보라는 것이다. 밥을 까는 기계의 정식 명칭은 라이스 쉬이터(Rice Sheeter)다. 김을 넣고 밥을 넣으면 일정한 두께의 밥이 김에 붙어 나온다. 하루에도 롤이나 마끼(김이 바깥쪽으로 말리는 작은 사이즈의 롤)를 수 백 줄씩 만들어야 하는 셰프들의 입장에서 주문을 뽑는 시간을 상당히 단축시켜 줄 뿐 아니라 손목과 손가락 관절을 아낄 수 있는 고마운 기계다. 마찬가지로 써버들에게 청소업체는 고마운 존재였다. 유림이 캐나다에서 처음 식당 일을 할 때만 해도 청소는 써버들의 책임이 경우가 흔했다. 유림이 일하던 곳은 가게 문을 열기 전 매일 아침에 청소를 했는데 홀과 화장실을 비질한 후에 락스와 세제를 섞은 물에 빤 밀대로 닦고 바닥을 전부 닦고 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났다. 개시를 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청소업체와 밥 까는 기계의 존재는 업계 표준이 되었고 이제는 고마운 대상이라기보다 당연한 일이 되어 버린 마당에 아직도 써버에게 홀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규모가 아주 작은 가게라면 또 모르겠지만 코세이는 스시바를 합쳐 테이블 넘버가 17까지 있으니 하루 종일 쉬는 시간 없이 10시간을 꼬박 일한 유림 혼자 하기에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식당의 위생 및 청결 상태를 보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유림은 그걸 놓친 게 안타까웠다. 하긴 이제 와서 안타깝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예상을 했었다고 해도 당장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고, 지금 유림의 손에 잡힌 지푸라기는 불행히도 딱 하나였다. 청소든 뭐든 일을 시켜만 준다면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약에 찌든 길거리 노숙자들과 친구를 먹어야 할 판이니까.


식탁과 의자를 일일이 옮겨가며 물 먹은 무거운 밀대와 씨름을 하고 있자니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이 떠올랐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내가 머리가 나쁜가? 유림은 한 번도 스스로 머리가 나쁜 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학창 시절 반에서 1등은 도맡아 했고 600명이 넘는 전교에서 3등까지 한 적도 있었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마주칠 때마다 선생님들은 유림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대학교 때도 장학금을 놓친 적 없었다. 머리가 나빠서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럼 그냥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걸까? 집에 들어서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씻어야 했지만 너무 힘들어 일단 바닥에 드러누었다. 천정을 바라보며 뻐근해진 허리와 시큰해진 손목을 주무르며 어디서부터 어떤 단추부터 잘 못 끼운 건지 되짚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생각을 줄이고 심신을 조금이라도 더 쉬게 해주는 게 중요하니까. 생각을 포기하자 몸이 신호를 보냈다. 허기가 졌다.


대충 씻고 식탁에 앉아 가게에서 가져온 봉지를 열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차갑게 식은 짜장과 떡진 밥이 한 데 섞여 있었다. 폭풍 같던 시장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한 술은 떠야 했다. 하루 종일 먹은 건 점심으로 먹은 토마토 반쪽을 대충 썰어 올린 양배추 샐러드가 전부였다. 질퍽하고 까만 짜장밥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장이 유림의 저녁밥과 귀갓길까지 신경 쓴 이유는 명백했다. 레게머리 손님은 계산을 받던 사장에게 '유 디드 굿잡(You did a good job)!'이라며 유림을 직원으로 뽑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림이 주문을 받을 때 오늘 첫 출근이라고 한 말을 기억한 것이다. 많아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50대가 훌쩍 넘는 중년 남성, 그것도 사장에게 직원을 잘 뽑았다는 칭찬이라니, 한국이었다면 그 여자를 경우 없고, 무례하다며 손가락질했을 일이었다. 뱀 사장도 유난한 오지랖에 처음에는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카드 명세서에 찍힌 팁을 확인하고는 금세 표정이 풀어졌다. 그로써 유림의 트레이닝은 끝이 났다. 트레이닝이 끝났다는 것은 팁 지급에 대한 여부나 그 비율로 결정된다. 사장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유림의 팁 지분 100퍼센트를 약속하며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유림의 대답은 당연히 예쓰였다. 손님이 더 많을 주말에도 일하고 싶었으나 이미 다른 써버가 하고 있어서 스케줄을 바꾸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하루 만에 팁을 100퍼센트 받게 된 건 유림의 써버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간절함이 써버의 신이라도 감동시킨 걸 지도 몰랐다. 마감 청소는 죽도록 싫었지만 불면증에는 나름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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