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9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사장님, 팁이랑 이주급 오늘은 나오는 거죠?"
사흘 동안 참은 말이었다. 16일이나 17일쯤이면 나와야 하는 이주급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급여가 밀리는 일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지만 밀리게 되면 고용주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돈 얘기를 먼저 꺼내야 하는지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었다. 유림의 질문을 들은 뱀 사장은 마치 외계어를 들은 것 같은 표정으로 유림을 바라보더니 눈길을 다른 곳으로 치우며 짧게 대답했다.
"우리 가게는 이주급 아니고 월급으로 나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건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너무나 당당한 사장의 태도에 유림은 당황한 나머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팁은 사실 매일 마감하는 써버가 일이 끝나면 하루치를 정산해 그날그날 나눠 가지는 게 관례였다. 사장으로부터 나오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고, 일하는 사람과 그들의 시간이 날마다 제각각이다 보니 당일 마감 때 정산하고 나눠 갖는 게 가장 편리하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면접을 볼 때 뱀 사장이 말하길, 팁을 모았다가 급여가 나갈 때 같이 현금으로 나갈 거라고 했었다. 그때 유림은 좀 쎄한 기분이 들긴 했었다.
일 하는 날 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일하는 날도 있었다. 대게 저녁 시간에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오후 5시부터 마감전까지 한 명 더 사람을 쓰는 게 보통이지만 월요일과 화요일은 저녁 시간을 지원하러 오는 써버 없이 유림 혼자 홀을 지켰다. 따로 사장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었으나 이유는 알만했다. 물어보나 마나 인건비 절약 때문이리라. 주말에 돈과 에너지를 쓴 사람들이 가장 외식을 자중하는 날이 월요일과 화요일이라 일주일 중 다른 날에 비해 하루 종일 한가한 편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혼자 써빙하랴 힘에 부쳤으나 보름쯤 지나자 혼자 일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져 큰 실수 없이 지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오픈과 마감까지 쉬는 시간 없이 일하다 보면 몸은 힘들었지만 유림은 혼자 일하는 날아 오히려 좋았다. 다른 써버와 나눠가질 필요가 없으니 봉사료(팁) 수입이 주말보다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홀 주문과 써빙, 전화 주문과 배달 및 픽업 포장을 전부 혼자 해낸다는 보람이 있었다. 식탁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닥친 일들을 혼자 척척 처리해 나가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한바탕 몰아치듯 바쁜 시간이 지나고 땀을 닦으며 앞치마를 다시 묶고 있으면 같이 일한 사람들이 수고했다며 엄지를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과 수고와 짜릿함은 그것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유림은 더 이상 점잖은 척 고상한 척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발랑 까졌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월세와 공과금이 밀리는 게 더 싫었다. 오후 3시 40분, 점심시간의 끝물. 유림은 마지막 점심 손님이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던 뱀 사장에게 말을 붙였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보통 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고 제가 미리 짚고 넘어가지 못했어요. 다름이 아니라요, 저...... 는 이주급으로 받고 싶습니다. 특히 이번 달은 제가 좀 급해서 말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아침부터 반나절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말들을 한 번에 쏟아냈다. 민감한 문제일수록 기세가 중요한 법이니까. 유림의 말이 끝나고 나서도 뱀 사장은 보던 뉴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엄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 더 넘겼다.
"저도 진짜 그러고 싶지 않은데 불가능하다고 하시면 저...... 다른 일 찾아야......"
"오늘은 늦었고 내일이나 모레 줄게."
"급여 주실 때 팁도 정산해서 부탁드려요. 그리고 저 월급 말고 이주급으로......"
유림의 마지막 말에 뱀 사장의 눈은 더 가늘어졌지만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까딱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장의 구부정한 어깨가 주방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유림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긍정의 몸짓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걸었지만 주방으로 사라진 뱀 사장은 그날 하루 종일 홀에 나오지 않았다.
대개의 경우 사장의 입에서 '내일이나 모레'라는 말이 나왔을 때, 특히 그것이 돈과 관련된 일일 경우 '내일' 그 일이 일어날 확률은 50퍼센트가 아니라 0퍼센트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진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유림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약속 한 '모레'는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얘기를 꺼내기엔 좀 이른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구인 광고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인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삼 주 전쯤에 본 업주들의 광고들 뿐 딱히 새로 눈에 들어오는 건 없다. 사람이 구해지지 않으면 하루에도 같은 광고가 여러 개 올라오는 곳이었다.
"사장님, 저 유림입니다. 내일까지 약속하신 이주급이랑 팁 정산해 주시는 거 맞죠? 그리고 앞으로 이주급여가 어렵다고 하시면 어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일자리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만둔다는 건 아니고요, 다른 데서도 일하게 되면 시간 조정 필요할 수도 있으니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전송. 에라 모르겠다. 돈 돈 거리는 발랑 까진 애라고 욕하면 욕을 먹고, 내쫓으면 쫓겨나야지 뭐. 이참에 집에서도 쫓겨나고 캐나다에서도 쫓겨나면...... 뭐 한국으로 가는 거지 별 수 있나. 십 년 동안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학교를 다니다 적응을 못해서 가는 사람, 졸업해도 취업이 안 돼서 가는 사람, 취업을 해도 비자가 나오지 않아 돌아가는 사람, 그냥 캐나다가 질려서 가는 사람....... 그들도 처음에 캐나다를 왔을 때는 분명 각자의 꿈과 목표를 가지고 왔을 거였다. 캐나다에 오는 이유는 비슷해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제 각각이었다. 한 때 가깝게 지냈던 사람도, '친구'라고 불렀던 사람도 한국으로 거의 다 돌아갔다. 그 이후로 친구 사귀는 데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돌아갈 텐데 싶었다. 마음을 나누며 가깝게 지냈으나 한국으로 가버린 후 연락이 끊긴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대신 그들을 부적응자들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심한 사람들은 홀가분해 보였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캐나다를 포기하고 떠난 이들을 정착에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복잡한 마음이 조금 수월해졌다. 그 대신 부작용이 생기긴 했는데, 이대로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강박이 생긴 것이었다.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름때와 와사비 분말이 묻은 앞치마만 입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십 년 동안 사라졌던 유림에게 화살처럼 쏟아질 질문들과 눈빛들에 당당히 맞설 자신이 없었다. 한국에 간다고 해도 딱히 뭘 해 먹고살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다. 떠오르는 건 파란색 조끼를 입은 채 담배 매대를 등지고 서서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받는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캐나다나 한국이나 인맥도 친구도 없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캐나다에 있으면 '여긴 외국이니까'라는 변명이 외로움과 자괴감을 어느 정도 희석시켜 주었다. 유림은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와 꽂히는 전선을 지키는 병사처럼 변명의 방패를 아직 놓을 수 없었다.
폰을 들어 메신저 친구 목록에 들어갔다. 엉망이었다. 친구 리스트를 열심히 관리하던 때가 있었다. 그룹을 만들어 나누고 프로필 사진이나 배경을 관계의 종류에 따라 철저하게 구분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웃고 있는 사진과 이름을 볼 수 있었고, 일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찍은 캐나다의 청쾌한 하늘이나 빨간 단풍잎을 볼 수 있었으며, 더는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진도 없이 'Y'라고 적힌 프로필 닉네임만 볼 수 있었다. 그조차 속하지 못한 과거의 인연들은 미련 없이 삭제했다. 유림은 친구 목록이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길 바랐다. 메신저에 들어갈 때마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싫었고, 애써 외면하는 일 또한 피곤했다. 그렇게 열심히 관리하던 목록을 한동안 신경 쓰지 못한 채 방치하고 말았다. 여러 해의 명절을 지나친 산소의 둔덕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바닥에 누운 채 한 손가락으로 리스트를 훑어 내렸다.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었다. 유림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겠지만 그들의 프로필 사진 속 배경은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익숙하게 느껴졌다. 다들 즐겁게 사는 것 같았다. 적어도 대문에 걸어놓은 사진 안에서는. 적어도 행복을 전시할 마음이 들 만큼은 행복하다는 뜻이겠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큼은 행복은 보장되는 걸까. 훑어내리는 눈길에서 턱턱 걸리는 몇몇 개의 프로필이 눈에 띄었다. 목록에서 삭제할까 고민하다 결국 그냥 두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최악이라고 해 봤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한국인이 한국 여권 들고 한국으로 가는 게 뭐 그렇게 큰 대수였을까. 벌벌 떨며 두려워했던 일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자 오히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체념이 가진 힘인 것 같았다. 예전처럼 겁이 나지도 않았고 쪽팔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당당하길 포기하니 담담해졌다. 내일도 돈을 못 받으면, 그리고 뱀 사장이 별 다른 얘기도 꺼내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집주인에게 말일까지만 시간을 더 달라고 연락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밀린 적 없었으니 한 번쯤은 봐줄 것 같았다. 한 번 밀린다고 쫓아내기야 하겠어. 드르륵. 그 순간 폰이 진동했다. 웬일로 뱀 사장이 돈 달라는 문자에 답장을 이렇게 빨리?!
"안녕하세요. 한 달 전 연락 닿았던 ㅇㅇ 스시 홀 매니저, 진(Jin)입니다. 유림 씨 라고 하셨죠? 저번에 그렇게 연락이 끊기게 되어 죄송했습니다. 혹시 지금 통화 잠깐 괜찮으신가요?"
기다리던 문자가 아니었다. 유림은 처음에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번호로 온 이전 문자 내역을 올려보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구인 광고를 통해 연락이 닿았다, 면접 날짜를 상의하던 순간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던 어느 식당의 매니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