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8 사교성과 비위의 상관관계

테이블 No. 8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하이."


빨아도 빨아도 끝없이 나오는 구정물 때문에 혈압이 오르기 일보 직전이라 누군가 옆에 다가온지도 몰랐다.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기며 고개를 돌렸다니 인도 여자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서있다.


"굿모닝."


유림은 평소의 목소리 톤보다 조금 더 끌어올려 최대한 밝게 인사를 했다.


"너는 이름이 뭐야?"

"아, 미안. 내 소개를 아직 안 했네. 나는 유림이야."

"....... 유린?"

"아니 오줌...... 이 아니라, 유림. 내 이름은 유림 도야."

"오, 미안해. 나는 비자야(Vijaya)."


겨우 통성명을 하면서 서로에게 미안해야 하는 이 상황이 웃기다고 생각하며 유림은 비자야에게 악수를 청했다. 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림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거나 다가가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먼저 다가와준 그녀에 대한 일종의 적극적인 고마움의 표시인 셈이었다. 어제와 똑같은 검은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비자야에게서 인도인들에게서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땀냄새가 났다. 그 냄새 속에는 새우도 있었고 돈가스도 있었고 만두도 있었다. 비자야는 주방에서 튀김을 담당한다고 했다. 데리야키 철판 요리나 면요리 따위를 만드는 주방 메인 음식은 베트남 출신의 다른 사람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마침 주방으로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제 봤던 얼굴인 걸로 보아 주방 메인이 바로 그 사람인 듯했다.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으려는 찰나 뒷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셋은 별 다른 말도 없이 동시에 흩어졌다. 유림은 밀대를 빨던 수도로, 비자야는 튀김기 앞으로 그리고 아직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베트남 사람은 철판 옆에 있는 식자재 냉장고로. 사장이 주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각자 위치로'에 너무 빨리 성공한 셋은 동시에 눈이 마주치며 웃음이 터졌다.


주방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스시바에 셰프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스시바 셰프 둘 중에서 좀 더 경력자인 듯 보였던, 머리에 손수건으로 만든 두건을 두른 아저씨였다. 사장으로부터 이름은 미리 들었는지 이름은 묻지 않았다. 어디에 사는지 물었고 걸어서 25분 거리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식당에서도 일을 하는지 묻길래 지금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인상이 나쁘지 않다고 유림은 생각했다. 한국 중년 남성이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한국 여자에게, 초면에 나이를 묻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남긴다. 물론 초면이라 예의를 차린 것일 뿐 사흘 안에 물어 올 것이라는 데 유림은 전재산 280불 25센트를 전부 걸 수 있었다. 불편한 개인정보가 더 털리기 전에 유림은 사람 좋아 보이는 두건 셰프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방어는 선방이다.


청소 업체를 쓰지 않는 식당은 세 가지 경우 일 수 있다. 첫 째는 주인의 깔끔한 성격으로, 본인이 업체보다 청결 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굳이 돈을 주고 비싼 업체를 부리지 않는 경우이고, 두 번 째는 업체 비용을 아끼고 싶은 경우, 그리고 마지막은 위생 개념이 그냥...... 없는 경우다. 유림은 머지않아 식당 코세이의 청결 이슈의 이유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혼합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픈 청소를 하면서 유림은 침묵 속에서 비명을 여러 번 질렀다. 손님이 식사를 하는 테이블 바로 옆에 있는 창틀에서 발견한 바퀴벌레 사체는 고생대 때부터 있었던 것인지 먼지가 너무 두껍게 쌓여 처음에는 사체인지도 몰랐다. 세면대 화장실 수전 뒷부분에 끼어있는 물때는 그보다 더 오래된 것 같았다. 일회용 위생 장갑을 겹쳐 끼고 사람의 손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것 같은 기분 나쁜 것들을 치우고 닦아냈다. 아무리 비위가 강하대도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위생 개념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이는 뱀 사장은 유림이 위생 장갑을 두 장이나 겹쳐 끼며 해낸 이 희생적인 업적들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집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코세이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적어도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때까지 저 꼴을 계속 보느니 눈 한 번 질끈 감고 하고 마는 게 나았다.


사교성이 좋지 않은 대신 유림은 어렸을 때부터 비위가 좋았다. 둘 다 좋지 않았더라면 십 년 간 캐나다에서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튀김 기름과 와사비 분말이 묻은 앞치마가 지긋지긋해서 한 일 년간 식당 근처도 가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다시는 식당 일을 찾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앞치마를 벗어던졌으나 막상 때려치우고 나니 할 게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샌다는 물가 높은 밴쿠버였다. 숨을 쉬는 비용은 렌트비와 전기세와 최소한의 영양공급을 위한 식비를 의미했다. 그것만 해도 1000불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더불어 인간의 자유권적 기본권 중 하나인 와이파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신 교통비를 포기했다. 가능한 한 두 다리를 이용했고, 걸어갈 수 없는 거리는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가지 않았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한 달 생활비 1300불쯤 됐다.


모이는 건 오래 걸려도 빠져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통장 잔고가 봄날의 고드름처럼 녹아나자 식은땀이 났다. 일용직이든 육체노동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하루는 지인이 콘도 이사 청소 대타를 좀 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밴쿠버에서 부자 동네로 유명한 곳에 있는 고급 콘도라길래 궁금하기도 해서 얼른 하겠다고 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유림은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집 내부였다. 모든 유닛이 개인 엘리베이터와 그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거실에 들어서니 삼면으로 된 전면창으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와 얼마나 가까웠는지 마치 바닷속에 있는 집에 들어온 것 같았다. 미로처럼 연결된 방들은 이방이 그 방인지 그 방이 이방인지 헷갈려 전부 몇 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화장실이 네 개였던 걸로 보아 최소 방이 네다섯 개는 되는 콘도였을 것이다. 방 한 칸에 화장실 한 칸짜리 콘도가 월세 2000불이 넘는 밴쿠버에서 방 다섯 개 화장실 네 개, 게다가 오션 뷰에 개인 엘리베이터까지 달린 콘도는 도대체 월세가 얼마일까? 짐작이라도 해보려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가늠도 되지 않았다. 나중에 청소일을 부탁했던 지인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16000불이라고 했다. 일 년 치가 아닌 한 달 월세가.


정신없이 집 구경을 하고 나니 5분 정도 지나있었다. 5분의 판타지 뒤에 5시간의 현실이 유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션뷰에서 눈을 돌려 집 내부를 다시 훑어보았다. 이 넓은 곳을 전부 청소해야 하다니. 현실로 돌아오자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전망을 바라볼 때보다 정신이 더욱 아득해졌다. 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깊어지는 것처럼 누군가가 좋은 집에 살수록 누군가는 더 막막해지는 걸까.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괜찮아 보이는 것들도 막상 안에 들어가 당사자가 되는 순간 괜찮지 않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고급 콘도를 구경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사 청소는, 누군가 먹다 버린 라면 찌꺼기와 머리카락이 뭉쳐있는 거름망을 비우는 일이었고, 향긋한 제철 과일향을 맡으며 일할 수 있다고 좋아했던 과일 분류 작업은, 썩다 못해 초가 되어 흘러내리는 과육 속에서 포식하던 통통한 애벌레와의 예고 없는 눈 맞춤을 겪는 일이었다.


라면 찌꺼기와 머리카락 뭉치, 썩은 과일 속 벌레 외에도 유림의 비위를 강하게 단련시켜 준 것들이 있었다. 가장 높은 시급을 받았던 픽업 서비스 일당은 시급도 셌을 뿐 아니라 몸도 마음도 편했다. 미리 약속된 한국 사람들을 공항에서 픽업해서 숙소에 내려주기만 하면 됐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동안 한국 사람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다른 일에 비해 조건이 너무 좋았으므로 유림은 픽업 일을 더 많이 받았으면 했다. 고객과 유림 사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랜딩 서비스 오너에게 안부 문자를 자주 넣었고 오너는 답장을 할 때마다 식사를 하자고 했다. 첫 번째 안부 문자에는 첫 업무를 잘 마쳐 수고했다며 밥 한 끼 하자고 했고, 두 번째는 다음 고객 건에 대한 일 얘기 할 게 있으니 밥 한 끼 하자고 했다. 세 번째 식사에서는 유림의 손에 지폐를 세 장 쥐어주며 허리를 주물렀다. 먹던 접시를 오너의 얼굴에 박아 버리고 싶었으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쉽고도 당연해 보이는 그 일이 현실에서는 쉽지도 당연하지도 않았다. 막상 그런 일을 당하자 몸도 머릿 속도 얼음처럼 얼어버린 것 듯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상을 엎을 타이밍을 못 찾은 유림은 그 식사를 꿋꿋이 마쳤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들어있는 50불 세장을 발견했다. 찢어버리는 대신 밀린 전기세와 휴대폰 요금을 냈다. 오물이나 음식쓰레기 같은 걸 마주친 것처럼 비위가 상하는 일을 당했을 뿐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 일 이후로 픽업 일은 하지 않았다.


더러운 하수구에 손을 넣지 않았다면,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벌레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유통기한이 지난 요거트를 그냥 버렸다면, 곰팡이가 핀 치즈를 도려내고 먹지 않았다면 그 시기를 결코 지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한 때 푸른곰팡이를 품었던 치즈의 조각을 씹으며 유림은 생각했다. 사교성이 좋아 친구가 있었다면, 아는 사람이 많았다면, 인맥이 넓었다면 나는 지금 다른 모습일까. 하수구 냄새와 썩은 과일 냄새와 곰팡이 냄새를 견디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잘 지내는 것이 왜 더 어렵고 힘든 건지 오래도록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명료해진 것은 있었다. 강한 비위는 단순히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약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진화시켜 갈고닦은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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