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2
소설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지금까지 식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건 하나만 말해주세요. 그리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이 사람은 분명 인터뷰 질문 기출 학원에 다닌 게 분명하다. 무슨 임원 면접도 아니고. 써버 한 명 뽑는데 이렇게까지나 진심이라고? 솔직히 배웅까지 하며 이미 식당 밖에 나간 사람을 되불러 세우며 묻는 질문이라면 최소한 조금은 로맨틱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유림은 그 따위 기대를 한 스스로에게 경악했다. 첫 질문부터 멘탈이 털려 그런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인터뷰 질문이 끝이 났다는 말을 들은 후 뇌 속의 영어 회로 스위치가 진작 꺼진 상태였으므로 갑작스러운 추가 질문에 당혹스러웠다. 혹시 이 사람 나한테 장난을 치고 싶은 건가 싶어 남자의 표정을 살폈지만 장난기는 단 1퍼센트도 없어 보였다. 진지했다. 유림이 대답을 끝마칠 때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느리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손님이 많아 바쁠 때 주방과 홀의 잘못된 의사소통 때문에 손님에게 잘못 음식이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바쁜 와중에 서로 잘잘못을 따지느라 분위기가 험악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국 먼저 손님들에게 불편함을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으로 음식 서비스를 해 주는 것으로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했다. 바쁜 시간이 나서 주방 팀과 그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대화를 가졌다. 유림의 마지막 문장까지 들은 매니저는 수긍하는 듯한 표정으로 비로소 악수를 청하고 그제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갑작스럽게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치고는 꽤 훌륭하고 적절한 답변이라고 생각하며 유림도 식당을 등지고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쨌든 채용에 긍정적이니까 마지막까지 이런 질문도 하는 거 아니겠냐며 희망 회로는 켜두기로 했다.
첫 질문부터 마지막 질문까지 이렇게까지 정신없고 진땀을 뺐던 면접은 캐나다 와서 처음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식은땀이 났던 면접은 없었던 것 같았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거짓 아니,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위기까지는 진실이었으나 절정과 결말은 MSG 양념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었다. 주방과 홀의 티격태격은 곧 스시바까지 번졌고 평소 스시바 셰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주방장이 앞치마를 내동댕이치며 떠나버리는 바람에 골프를 치던 사장이 긴급 호출되어 주방 일손을 메꾸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되었다는 게 원작(?)의 줄거리였다.
식당 I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거짓말이었지만 The Northwood Room이라는 레스토랑에 지원한 이유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시안 음식, 특히 한식 중식 일식을 파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결국 한국 사장 밑에서 한국 동료와 함께 한국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으며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사장, 한국 동료, 한국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접시를 열두 개씩 들고 날아다닌다고 해도 그래봤자 '한국 식당 종업원'일뿐이라는 사실이 유림을 괴롭혔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인터뷰 질문에 대한 대답 중 가장 꾸밈없이 진실했던 건 정수 I(아이)의 반복문에 대한 대답 '영삼육구'였다.
캐나다에서 산지 10년, 그중에서 도합 6년 동안 식당일을 하다 보니 하는 일이 '써버'라고 해도 같은 '써버'가 아님을 점점 깨닫게 됐다. 그 속에서 일을 할수록,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려 발버둥 칠 수록 유림의 마음속에 '신분의 계층'은 더 뚜렷하게 그려질 뿐이었다. 그 그림의 가장 위층, 펜트 하우스에는 고급 캐나다 로컬 레스토랑이 있다. '럭셔리 다이닝(고급 저녁식사)'라고 검색하면 구글 첫 페이지에 뜨는 식당으로, 아무리 배를 든든히 채우고 가도 2인 기준 300달러 이하로는 먹기 힘든 곳이다. 음료에 애피타이저, 디저트까지 시키면 2인 500불도 우스운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써버가 계층 구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팁까지 포함한 그들의 월수입이 캐나다 의사보다 많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높은 층을 담당하는 것은 서양 냄새만 나는 캐나다 로컬 음식점. 그리고 중간층에 있는 것은, 한국인 아닌 다른 아시안이 운영하며, 한국 음식이 아닌 다른 아시안 음식을 파는 곳으로, 일 할 때 한국말을 할 일 없는 식당이다. 2층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되 손님 중에서는 한국인 비율이 30퍼센트 이상 넘지 않는 식당이 있고, 1층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이다. 일을 시키는 사장도 한국 사람, 같이 일하는 동료도 한국 사람, 밥 먹으러 들어오는 손님도 90퍼센트가 한국 사람이니 이건 '헬로, 아엠쏘리, 땡큐, 원 투 쓰리 포'와 손발짓만 어느 정도 잘해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랄까. 가끔 오는 외국인 손님(그들 입장에서는 자국민이겠으나)에 대한 두려움만 없다면 장벽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아이들 유학 때문에 가족 단위로 이민 온, 한국에서부터 가정에 봉사하다 보니 경력 단절이 된 3,40대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물론 반지하도 있다. 푸드코트나 패스트푸드 점, 아니면 테이크아웃 전문점처럼 음식 주문을 받고 내어주기는 하되 '써빙'을 하지 않으므로 손님들이 팁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는 곳, 그런 곳이 반지하에 속한다.
하지만 한식을 파는 곳에서 일하는 게 '별로'라는 건 이제 좀 옛말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케이-푸드(K-food)의 인기로 한국 음식점이 외국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끌면서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대규모 한식 레스토랑이 급부상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리안 바베큐라고 부르며 불판이 설치된 식탁에서 즉석으로 삼겹살이나 불고기를 구워 먹는 게 유행이었는데 손님도 많고 단가도 높은 편이라 하루 종일 일하는 써버들은 시급 외 팁으로만 2,300불씩 챙기기도 한다. 젊은 층과 외국인 손님의 비율이 높은 곳은 한식당이라 해도 한국 써버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다.
유림도 일주일 전에 잘렸던 I 식당에서 일하기 전 K-바베큐 전문점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을 시작했으나 3개월 만에 그만뒀다. 고기 종류가 바뀔 때마다 불판을 갈아야 했고, 반찬과 야채, 개인 앞접시와 국그릇, 그리고 다양한 소스 그릇까지 4인기준 기본으로 깔리는 그릇들만 스무 개가 넘었는데 메인 음식 그릇까지 합치면 서른 개 남짓의 그릇과 수저들, 집게와 가위까지...... 한 팀이 나가고 나면 치워야 하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모아 담고 주방의 가장 안 쪽에 있는 개수대까지 가져가는데 바퀴가 달린 카트의 수는 한정적이어서 바쁠 땐 손으로 들어 날랐다. 일한 지 한 달 후에는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고, 두 달 째부터는 손목에 허리까지 아팠고, 세 달째에는 뒷목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파스를 붙이고 출근하면 '미관상' 좋지 못하다며 당장 떼라는 호령이 떨어졌고, 파스만 없어지면 '내가 아름다운 관경'이 된다는 거지? 싶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파스를 기꺼이 떼버리고 불판을 갈았으나 바베큐를 시키지 않은 손님 테이블에 쌈장과 기름장 그릇이 나갔다는 이유로 육두문자를 들은 날 유림은 그만두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캐나다에서 먹고살며 유일하게 배운 건 써빙밖에 없었다. 당장 그것밖에 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라도 최대한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한식 중식 일식당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다. 대부분 매니저에게 이력서를 전달해 줄 테니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을 듣는 게 전부였다. 매니저가 이력서를 보고 필요하면 주겠다던 연락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써버는 필요했으나 나는 필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이 필요 없는 것이 나의 인종인지 나의 영어실력 내 나이인지 아니면 내 외모인지 알 길이 없어 유림은 화가 났다.
큰 기대 없이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The Northwood Room'에서 웬일인지 마침 매니저가 있으니 원한다면 인터뷰를 바로 보자고 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규모가 있는 캐주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쯤 되는, 걸어서 다니기 무난한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서 가장 고급 식당에 속했다.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훑어본 식당 내부는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화려했다. 보통 가정집의 두 배쯤 되는 높은 천장에, 3면이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아무 데나 앉아도 뷰가 환상적이었다. 이름도 고급졌다. 'The Northwood Room'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로 반대편 통창으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보여 마치 숲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테이블이 못 해도 서른 개는 넘어 보였다.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받아 반짝이던 것이 샹들리에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거꾸로 매달린 수 십 개의 와인잔이라는 것을 알고 감탄했다. 대낮인데도 화이트 와인과 함께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손님들은 하나 같이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고 완벽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허리에 무전기를 차고 돌아다니는 검은색 옷을 입은 써버들의 머리 색은 전부 금발이었다. 두 어 명쯤 아시안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잠자리도 쉬었다 갈 수 있을 만큼 긴 인조 속눈썹과 과감한 메이크업 스타일을 봤을 때 최소한 이민 2세처럼 보였다. 나도 접시를 나르고, 이들도 접시를 나르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다른 접시,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외제차를 끄는 유림의 직장 동료들은 그녀가 캐나다에서 접시를 나르고 식탁을 닦는다는 걸 절대 모를 것이다. 캐나다에 온 지 딱 5년이 지났을 때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고, 그로부터 3년 후 팬데믹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던 그 시기에 유림은 일자리를 잃었고 한국에 사는 지인, 친구들과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유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락하고 싶은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세계가 마스크를 벗는 순간, 그녀는 마스크 뒤로 숨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나서 유림은 더 열심히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