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13 차단된 사람들

테이블 No. 13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1년 전.


스시 스키(Ski) 회식 날이었다. 술 좋아하는 사장은 한 두 달에 한 번씩 손님이 가장 빨리 끊기는 수요일, 일치감치 문을 닫고 회식을 열곤 했다. 신나는 노래도 실컷 틀고 시끄럽게 소리치며 노는 날이었다. 평소 그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은 유림도 가게 회식만큼은 꼭 참가했다. 그날도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가 파했다.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서 나와 서로에게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를 나눴다. 겨울 공기는 차가웠지만 불콰하게 술이 오른 볼이 시원했다. 가깝게 지내던 써버에게 손을 흔들고 유림은 택시 어플을 켰다. 연말이라 택시가 많은 편이었다. 유림의 주변에만 해도 3대의 택시가 손님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아무거나 선택해 불러도 3분 안에 도착할 것이다. 유림의 손가락이 호출 버튼으로 가는 순간 담배 냄새가 훅 들어왔다. 고개를 드니 준희였다. 준희는 수요일 하루만 스키에 나와 써버일을 했다. 평소에는 에어컨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택시 잘 안 잡히죠?"


"...... 응? 응. 그러네."


"가요. 가는 길에 내려 줄게요."


"너 술 마시지 않았어?"


"맥주 딱 한 잔이요. 왜 이래요. 캐나다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니면서."


맥주에 소주도 탔잖아, 따질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준희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유림을 째려보았고, 유림은 스마트폰에서 택시 어플을 껐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다며 거절했을 거였다. 신세를 진다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해 오던 유림이 순순히 준희의 차에 올라탄 건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희가 유림에게 장난을 치는 게, 장난을 칠 때 보조개를 보이며 활짝 웃는 게 좋았다. 그와 함께 일하는 수요일을 일주일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


유림은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버스를 타도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확실히 늦은 밤이라 엄청 빨리 왔네. 라이드 고마워. 다음에 커피라도 살게."


내리기 직전 고맙다는 말을 하며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준희의 얼굴이 너무 가깝게 있다고 생각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유림을 바라보며 준희는 문을 열던 유림의 손을 잡았다. 인중에서 느껴지는 담배 냄새가 생각만큼 불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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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어쩐 일인지 숙취가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는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밤새도록 술기운을 느끼는 유림이었지만 세 잔이나 마시고도 다음 날 멀쩡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행이었다. 오픈 담당이라 일찍 가게에 나가봐야 했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다 머리 집게 핀을 잃어버린 걸 깨달았다.


가게로 가는 길에 달러샵에 들러 잃어버린 것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머리 집게 핀을 사느라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늦을까 봐 뛰었다. 10시 56분, 다행히 늦진 않았다. 사람들이 스시바에 모여 있었다.


"굿모닝. 근데 뭐 재미있는 일 있어요?"


유림이 스시바로 다가가며 인사하자 주방팀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은 굿모닝이라고 말했지만 유림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어, 좋은 아침!"


유일하게 유림의 눈을 쳐다보며 인사를 받은 에드워드 셰프는 뒤이어 덧붙였다.


"어제 술 꽤 마시는 것 같더니 의외로 얼굴 괜찮네?"


에드워드의 의미심장한 웃음이 찜찜했다. 유림의 얼굴이 숙취에 찌든 모습이길 기대했는데 너무 멀쩡해서 실망이라도 한 걸까. 그때 주방에서, 누군가의 한 목소리가 터지는 물풍선처럼 튀어나왔다.


"좋은 시간 보내서 술이 빨리 깼나 보지."


"네?"


무슨 말인지 되묻는 유림에게 에드워드가 손을 내밀었다.


"아참, 이거 준희가 전해주래."


에드워드가 펼친 손바닥 위에는 익숙한 베이지색 머리 집게 핀이 있었다.



유림은 다음 날 식당을 그만두겠다고 사장에게 문자로 전했다. 원래 일을 그만두기 전 최소 이 주일 전에는 통보를 해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눈치챈 것인지,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어서인지, 사장은 유림이 갑자기 그만두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구할 시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급하게 관두면 어쩌느냐며 원망과 울음이 섞인 투로 사정하며 며칠만이라도 더 일해 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한 유림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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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어?, 어!"


진이 일어선 자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은 에드워드는 진의 몫이었던 생선 구이 꼬리를 들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생선을 떨어뜨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셰프님."


"어..... 잘 지냈어? 새로 왔다는 써버가 너였구나."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진이 분명 개업하기 전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했었는데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혼란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네. 전에도 제가 여기 식당에서 일했었거든요. 한 일 년 정도."


"아~~ 정말? 그때 에드워드 형님이랑 여기서 같이 일했었구나. 그건 그렇고, 그때 여기 매출 괜찮았니?"


갑자스러운 에드워드의 등장으로 불편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의외의 이득이었다. 어차피 겨우 내일까지 미뤄진 것일 뿐일 테지만...... 예전 식당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성실히 해소시켜 주다가 눈치를 보며 적당한 타이밍에 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림의 밥그릇에는 밥이 반이 넘게 남아있었지만 더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손님 테이블에 찻잔을 채워주고 돌아오는 진에게 다가갔다.


"저, 매니저 님. 에드워드 셰프님이요."


진은 점심 식사 시간에 오가던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눈치는 빠른 편이었다. 묻기도 전에, 유림과의 면접 이후 에드워드 셰프가 합류하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있던 메인 셰프가 사장과의 언쟁으로 급하게 그만두게 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뭐, 문제 있는 건 아니죠?"


진은 유림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럼요. 문제는 무슨. 예전에 회식도 자주 하고 같이 잘 지냈어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말이 좀 많다는 것과 아재 개그에 심각하게 집착한다는 걸 제외하면, 에드워드는 팀에 있어서 나쁠 것 없는 분위기 메이커 같은 존재였다. 그의 안타까운 농담에 고개를 흔들고 못 말린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놀리긴 했어도 유림은 에드워드가 밉지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준희가 유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에 데려다주던 날 그의 차에서 잃어버린 머리핀이 왜 에드워드의 손에 있었는지, 준희가 식당 사람들에게 그날 밤의 일을 어떻게 말하고 다닌 건지 유림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 않았다. 유림이 마지막으로 일한 화요일 밤 준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한 시간 뒤에 에드워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유림은 준희와 에드워드의 번호를 모두 차단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싫었으나 피할 방도는 없었다. 이제 와서 일을 그만두겠다고 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고작 그딴 과거의 일 때문에 현재를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 일 년간 유림은 변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은 회피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한 발짝 떨어져 담담히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발자국 뒤에서 팔짱을 끼고 마치 남의 일 구경하듯 바라보는 마음을 수도 없이 연습한 결과였다. 굳이 그때 그 일을 에드워드가 꺼낼 일도 없겠거니와 만에 하나 그때처럼 유림을 도마 위에 올리며 가십거리로 삼는 다면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더 이상 그의 눈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