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14
테이블 No. 14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미즈키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코세이의 뱀 사장은 유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다른 식당에서도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을 전하는 동시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슬쩍 흘린 이후로 사장은 유림의 급여를 제대로 주기 시작했으며 팁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감 때 종이에 정산한 팁 계산 내역을 항상 폰 카메라로 찍어두었다. 증거 자료 수집의 목적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큰 목적은 '내가 항상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급여는 대부분 며칠씩 늦었지만 유림이 말을 꺼내기 전에 사장 쪽에서 먼저 언제까지 주겠다는 말을 꺼냈다. 유림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 열흘이 지나도록 언급조차 없었던 초반과 비교했을 때 그건 장족의 발전이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 찜찜하다는 거였다. 유림이 가게로 출근하기 30분 전쯤, 미리 가게에 나온 뱀 사장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화장실 앞 비품 선반 간장통 아래'
처음에 유림은 그게 무슨 뜻인 지 몰라 의아했으나 출근 후 문자 속 그 장소를 찾았을 때 구겨진 봉투의 모서리가 대형 간장통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저기 간장물이 묻은 봉투 안에는 수표와 현금이 들어있었다. 사장이 알려주는 위치는 간장통 아래가 되기도 했고 여자 화장실 청소 도구함 안이 되기도 했고, 카드 결제 단말기와 그 충전기 사이가 되기도 했다. 모두 써버만 접근하는 곳이었고 봉투는 깨끗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불법 마약 거래를 하는 마피아 심부름꾼이 된 기분이었다. 구겨진 봉투를 앞치마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출근하는 유림에게 직접 전해주면 될 것을 굳이 문자로 장소를 알리는 이유를 짐작했다. 처음에는 사장이 왜 마피아 놀이를 즐기는지 의아했으나 짐작은 곧 확신이 됐다.
"저번 달도 미루더니 이번에도 가타부타 말도 없이 또 말일을 넘기네......"
"저도 어젯밤에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문자 답장도 없고."
스시바 셰프 둘이 불평했다. 급여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림아, 사장한테 돈 달라고 해봤어? 우리가 힘을 합쳐서 계속 푸시를 해야 돼. 안 그럼 석 달 넉 달 밀리는 수도 있다고. 다 내가 경험해 봐서 하는 얘기야."
"아...... 네......"
말을 얼버무리며 유림은 주방으로 도망쳤다. 거름망으로 펄펄 끓는 기름 속 불순물들을 걸러내고 있었다. 가을 공기가 차가운 10월인데 비자야의 이마와 목에는 기름기 섞인 땀이 번들거렸다.
"비자야, 잘 돼가?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응, 아니야. 물어줘서 고마워. 오늘은 별로 안 바쁘네."
"근데 말이야. 너...... 팁은 잘 챙겨 받고 있지, 그렇지?"
담장 너머로 책가방을 넘기듯 소리가 주방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자야의 어깨너머로 목소리를 넘겼다. 유림의 질문에 비자야는 거름망을 잠시 내려놓고 몸을 돌려 유림의 눈을 3초간 응시했다. 새카맣게 탄 튀김을 막 입에 넣은 것 같은 표정으로.
"팁이라고? 팁이 뭐야?"
"?????? 팁 말이야 팁. 우리가 매일 버는 팁! 주방으로도 35퍼센트 가잖아."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긴 정적 흘렀고, 비자야의 눈에는 농담을 실패한 사람이 가질 법한 표정이 스쳤다. 그리고 그 표정은 곧 체념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나도 잘 알아. 팁...... 근데 그것보다 그냥 급여라도 좀 받았으면 좋겠다."
"급여?"
"1년째 못 받고 있어."
"!!!???"
유림이 할 말을 찾는 동안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무거나 잡히는 것을 꺼냈다. 손님이 버리고 간 영수증이었다. 영수증을 벽에 대고 손톱으로 번호를 적은 후 비자야의 앞치마 주머니에 급하게 넣었다.
"내 번호야. 꼭 문자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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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사장은 냉장고에 채워 넣을 음료 박스를 유림에게 건네주며 오늘 저녁에 새로 뽑은 써버가 올 거라는 소식을 가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만큼 큰 소리로 알렸다.
"오 진짜? 오래간만에 뉴페이스네~ 여자야, 남자야?"
"한국 사람이에요? 설마 워홀은 아니죠?"
뱀 사장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J셰프와 사장보다 나이가 적은 S셰프가 새로운 써버가 온다는 말에 질문을 쏟아냈다.
"여자. 워홀은 무슨...... 나이는 좀 있는데 경력이 꽤 길어서 괜찮을 것 같더라고."
"잘 됐네. 그래, 앞으로 남자는 웬만하면 뽑지 마. 아니, 저번에 그 자식 말이야, 집에서 식탁 한 번 닦아본 적 없는 애를 어디서 데려와 가지고는......"
"근데 나이는 어느 정도 돼요? 경력 길고 나이 좀 되는 거면...... 아줌만가? "
"뭐 이렇게들 관심이 많아?! 오거든 직접들 물어보슈. 야, 아직도 14번 테이블 데리야끼 안 나오면 어떡하냐!"
사장은 주방을 향해 외쳤다. 베트남에서 캐나다에 온 지 6개월 됐다는 찡(Chinh)에게 하는 소리였다. 찡도 비자야도 한국어를 몰랐으나 사장은 일을 가르칠 때도 화를 낼 때도 한국어를 썼다. 비자야는 그렇다 쳐도 찡은 누가 봐도 사장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 같았는데 벽에 낙서를 해놓은 5살 아이를 혼내듯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인상을 쓰며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이 사장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면 사장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곤 했다.
오늘따라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테이블을 치우면 다시 손님을 앉히기 바빴다. 딸랑. 유림이 14번 테이블 계산을 받고 있을 때 출입문에 걸린 차임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웰컴 투 코세이'를 외치며 출입문을 향해 돌아서다 걸음을 멈췄다. 높이 올려 묶은 갈색 머리에 토트백을 겨드랑이에 낀 채 어색한 듯 걸어 들어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드는 한국 여자. 뱀 사장이 말하던 새로운 써버임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되신 써버...... 분 맞으시죠? 반갑습니다."
유림은 아는 체를 했다. 부디 잘 어울릴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40대 중반 혹은 후반쯤 돼 보였다. 뿌염(뿌리염색) 시기를 놓친 듯,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의 두피 쪽 검은 머리카락 속에 흰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아, 네. 맞아요. 저랑 같이 일할 다른 써버 분이시구나. 반가워요. M이라고 불러주세요."
"엠이요?"
"네. 엘엠엔오피 할 때 그 엠. 제 이름이 M으로 시작하는데 마음에 드는 영어 이름을 못 찾아서......"
유림은 M에게 자신을 '율리아'라고 소개했다. 어학원에 다닐 때 영어 닉네임을 정하라고 했었다. 그냥 한국 이름을 쓰면 안 되냐고 묻는 유림에게 강사가 제안한 영어 이름이었다. '율'까진 그렇다 쳐도 '리아' 부분이 너무 오글거렸다. 마음이 선하고 외모는 만화 주인공 같으며 분위기는 뭔가 성스러워야 할 것 같았다. 어학원 밖에서는 절대 쓰지 않았던 닉네임이었으니 10년 동안 기억 속에 묻힌 이름이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잊혔던 닉네임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을 유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림은 애초에 한국 사람들이 너도나도 영어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병철은 브라이언이 되고, 재민은 제임스가 되고, 진희는 제니퍼가 되는 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골라,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유림은 한국 이름을 고집해 왔다. 문제는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 사람에게 소개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절차였다. 처음 유림의 이름을 들은 열 명 중 여덟은 '유린(Urine: 오줌)? 유린이라고?' 하는 반응을 보였다. '유(You) 할 때 유와 드림(Dream)할 때 림'이라며 아무리 끊어 설명해 줘도 음절 기반의 언어가 아닌 영어가 모국어인 그들은 '유'와 '림'을 합치면 되는 간단한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혼란스러워했다. 그냥 당신들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오줌이 되는 것보다 남의 권리, 인격, 명예, 자유 등을 함부로 침해하거나 짓밟는(蹂躪) 사람이 되는 게 더 싫었으므로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M이라면 민지, 민희, 미란, 미연, 미영, 미자, 미숙, 명희, 명옥 그 어디쯤 될 테고 전자보다는 후자 쪽일 확률이 높겠지. 짐작했지만 묻진 않았다. 묻는다고 대답할 거였으면 애초에 M이 아니라 본명으로 소개했을 테니까.
"율, 뭐라고? 율리아......? 유림보다 예쁜데? 진작 영어 이름 있다고 말하지 그랬어."
귀 밝은 셰프 J가 옆에서 듣고 한 마디 거든다. 유림은 그를 향해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어차피 같이 일하다 보면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을 통해 유림의 본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굳이 영어 닉네임으로 소개한 건, 상대가 쳐놓은 경계선에 대응하는 마음으로 방패를 드는 무의식적 반사행동 같은 거였다. 그 방패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려놓은 경계선을 확인했으며 적절히 대응해 주겠다는 의지의 몸짓을 보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