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16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율리아, 근데 우리는 도대체 봉사료 언제 받아요? 벌써 보름 짼데 소식이 없어."
뱀 사장이 없는 틈을 타 M이 유림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림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여기는 다른 곳처럼 매일 정산해서 나눠 가지는 시스템에 아니더라고요."
"에에? 정말?! 그럼 얼마 만에 나와요?"
"그게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는 거라 직접 한 번 여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면접 보실 때 그거에 대해선 따로 안 물어보신 거죠?"
"뭐, 팁이야 항상 당일 정산해서 현금으로 나눠 받아 왔으니 당연히 여기도 그런 줄 알았죠. 율리아는 어떻게 받는데요?"
"이 가게는 좀 특이하게 직원들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저도 뭐라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이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직접 여쭤보시는 게 제일 정확할 거예요. 그래도 이제 팁은 백 퍼센트로 계산해 주신다고 사장님과 확인하신 거 맞죠?"
유림은 '어떻게 팁을 받고 있냐'는 M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버티는 것에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며 황급히 다른 질문을 덧붙였다.
"아뇨~ 아직 절반만 주겠대요. 그래서 사실 뭐 얼마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언제 받는 건지는 알아야 될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문자로 두 번이나 보냈는데 사장님은 묵묵부답이고."
M은 앞과 뒤,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앞에서 짓는 표정과 뒤에서 짓는 표정이 다르지 않았다. 유림은 M과 같이 일하는 게 편하고 좋았지만 급여와 팁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솔직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도 처음에 당연히 매일 주는 줄 알고 있다가 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물어봐도 확실히 답도 안 해주길래 빡쳐서 강하게 나갔다. 급여도 월급으로 나온대서 그렇게는 일 못한다고 딱 잘라 말했더니 그제야 이주급으로 주더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유림은 자신이 코세이에서 제때 돈을 받고 있는 유일한 종업원이라는 사실을 눈치로 알고 있었다. 간장통 아래나 여자 화장실 청소 도구함 안, 혹은 카드 결제 단말기와 그 충전기 사이에 숨겨진 급여 수표와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찾아 앞치마 주머니에 챙겨 넣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셰프들이 돈 이야기를 꺼내며 푸념하는 횟수도 더 잦아졌다. 앞치마 주머니 속에서 손 끝에 봉투가 스칠 때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심란한 감정에 오지랖이라는 이름을 붙여 죄책감을 찍어 누르곤 했다. 유림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렇죠'라든가 '네, 맞아요'라며 맞장구를 치며 푸념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다음 주 롱위켄드 때, 어디 안 가요? 이제 날 더 지나면 날씨도 추워지고 비도 오고 그럴 텐데."
"아 다음 주가 연휴였나요? 몰랐네요. 저 그냥 계속 일해야 해서 휴일도 별 의미가 없어요. M 님은 어디 좋은 곳 가시나요? 무슨 계획이라도......?"
"아유, 진짜? 그 좋을 때 왜 그렇게 일만 해요. 너무 돈만 보지 말고 좋은 시절 많이 즐겨놔요. 그렇게 일만 하다 세월 보내고 나중에 후회한다?! 결혼하고 애 생기면 여행 같은 건 꿈도 못 꿔요. 돈 버는 것보다 차라리 돈 잘 벌고 능력 좋은 남자친구를 사귀어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결국 그게 남는 장사야!"
응, 그렇지. 그래도 나름 오래 버텼다. 보름만이면 꽤 길게 간 편이다. 이런 류의 대화가 한 번쯤 나올 법 한데 어째서 아직일까 심각하게 궁금해하던 차였다. 유림이 월화수목금토일 일만 하고 있으며 연애는 뒷전이라는 정보를 접한 한국 여성들의 반응은 나이대에 따라 갈렸다. 6,70대의 반응은 4,50대와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그렇게 일만 해서 언제 사람 만나고 연애해서 결혼하겠냐고, 교회에 당장 나와 건실한 청년들이 많은 청년부 모임에도 참여하라며, 말이 나온 김에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이 어떻게 되냐며 폰을 찾기 시작한다(교회 얘기를 꺼내며 폰을 꺼내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이렇듯 6,70대들의 반응에는 좀 더 적극적인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다.
M이 방금 유림에게 한 말은 새끼 캥거루의 꼬리만 한 질투가 어느 정도 포함된 관망적 충고다. 만약 '4,50대에 한국 기혼 유자녀 여성이 일만 하는 30대 미혼 여성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 모음집'이라는 책이 있다면 가장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올 문장으로 채택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M의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소리가 앙상블을 이루며 유림의 청신경을 자극하자, 오랜만에 뇌 변연계의 편도체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제 고등학교 동창은 애기 등에 업고도 잘만 해외여행 다니던데요? 그리고 결혼한다고 다 출산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애초에 결혼이 제 인생 계획 안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정해 버리고 안타깝다는 듯이 평가하세요? 그리고 능력 좋은 남자 친구가 버는 돈은 그 남자 돈이겠고, 제가 버는 돈이 제 돈이 되겠죠. 설사 돈 잘 벌고 능력 좋고 인성도 좋은 환상적인 남자가 있다 해도 그런 사람은 '남는 장사' 운운하는 여자를 구분하는 능력도 있을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조언은 감사합니다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스무 살 때부터 지겨울 만큼 여기저기 배낭여행을 다녀서요. 안 가본 나라를 찾는 게 더 힘들어요."
라고 쏟아내고 싶었으나 전전두엽이 편도체를 제어하는 데 성공해 준 덕에 다행히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조금씩 변주되긴 해도 유림이 견디지 못하는 포인트는 동일했다. 바로 타인의 삶의 계획을 자기들 마음대로 설정해 버린다는 것. 누구나 자기만의 줄거리는 있기 마련이다. 개개인이 생각하는 각자의 최선이 반영된 기승전결 말이다. 하지만 그건 80억 개의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유일무이한 것이며 당사자에게만 효용 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러라고 신이 인간에게 상상력과 이성을 동시에 준 것일 테니까. 타인의 삶에 마음대로 결말의 시나리오를 써놓고 올바른 전개 대로 흐르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평가하는 건 부주의한 스포일러를 넘어선 무례한 오만이다. 유림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속사포 같은 말들을 침과 함께 겨우 다시 삼키고 질문했다.
"그래서 M 님은 이번 연휴 때 어디 좋은 데 가셔요?"
"아이고,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 남편 얼마 전에 직장 그만두고 지금 백수예요. 얼마 전도 아니네. 벌써 1년 다 되어 가요. 새 직장 찾아보고는 있는데 요즘 경기가 경기이다 보니 쉽지 않네요. 그나마 내가 풀타임으로 여기저기 일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아...... 여러모로 힘드시겠어요."
"몸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더 힘들죠, 뭐. 당사자는 더 힘들 거고. 참, 별소릴 다하네, 내가. 율리아 오늘도 수고했어요. 화장실 쓰레기통은 내가 아까 비웠어요. 마감까지 수고하고요, 우리 다음 주에 또 봐요."
역시 구토처럼 울컥 올라오는 말들은 웬만하면 다시 삼켜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한 현실의 사정이 타인의 삶을 마음대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무례함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아니었다. 삼킬 때는 역하고 괴로워도 뱉어진 오물을 다시 주워 담는 일이 분명 그보다 훨씬 더 괴로울 것이며 (불가능할 것이며), 하고 싶은 말을 전전두엽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쏟아내는 것 또한 누군가의 진심을 곡해하고 상처로 남기는 되돌릴 수 없는 사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진실만 있을 뿐 보편적인 진실은 없다. 대신 진심이 항상 진실에 앞선다.
마감 청소를 끝내고 가게를 나오니 어둡고 추웠다. 벌써 10월 말. 어둠이 깔리고 나면 한낮의 온기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한 겹 더 껴입어야겠다. 옷에 달린 후드를 덮어쓰며 양손을 재킷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아까 간장통 아래에서 발견한 급여 봉투가, 왼쪽 주머니에는 폰이 만져졌다. 왼손으로 폰을 꺼냈다.
"사장님, 이제 마감하고 집 가는 길이에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저랑 같이 일하는 M님 경력이 많으셔서 그런지 금방 배우시고 이제 혼자서도 다 하시는 것 같은데 아직도 봉사료를 제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게 좀 마음이 그래서요. 홀에 할당된 봉사료는 M님과 제가 50퍼센트씩 가져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오늘 봉사료 정산 결과 사진 찍어서 첨부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셰프님들께서 요즘 들어 부쩍 저에게 “사장님께 월급 달라고 말씀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저는 그때마다 아무 말하지 않고 웃고 넘기지만 솔직히 마음이 많이 불편합니다. 저는 제때 받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사장님께서 곤란하실 것 같고, 그렇다고 매번 모른 척하기도 어려워서요. 외람된 말씀인 건 알지만, 이런 상황이라는 걸 알려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조심스레 말씀드립니다. 평안한 밤 되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유림 드림. "
끝날 것 같지 않은 귀갓길을 느리게 걸으며 유림은 문득 궁금해졌다. M은 '남는 장사'를 고르는 걸 실패했던 걸까? 골랐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이젠 아니게 된 걸까?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닌 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하지만 자신한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을까? 지금처럼 가끔 절대 해소되지 않을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물음표로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유림은 마음껏 상상해버리곤 했다. 어차피 진실은 아무도 모르므로. 아무도 모르는 어떤 것이 되는 순간 진실은 사라지므로.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이나 폰을 확인했으나 사장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