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18 차악과 차별

테이블 No. 18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야, 저기 또 온다. 내 데이터에 의한 확률로 봤을 때 100퍼센트다."


"에이, 주방장 님. 저건 확률 따질 것도 없죠."


딜런과 스티븐은 출입문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출입문 쪽을 바라보니 무슨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책가방처럼 생긴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레터 사이즈(북미 표준 용지 규격)의 종이를 든 사람. 미니멈 잡(최저 임금 일자리를 부르는 용어)을 구하고 다니는 대학생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깃으로 미즈키 스시를 고른 듯 출입문을 향해 걸어왔다. 그 백팩 학생은 어색함과 긴장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와 가게 내부를 한 번 둘러본 다음 유림과 매니저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Hello. My name is XXX. I am loo......(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XXX입니다. 저는......)"


"Sorry. We are not currently hiring(미안합니다. 우리는 현재 구인을 하지 않고 있어요)."


진이 학생 쪽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표정은 다정했으나 말투는 단호했다. 백팩 학생은 진을 향해 내밀던 종이를 다시 거뒀다. 학생의 얼굴에 무안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유림은 들고 있던 행주로 방금 전 이미 닦아 깨끗한 선반을 또 닦았다. 그녀는 잘 알겠다며, 좋은 하루 되라는 예의 바른 인사까지 하며 방금 전 들어온 유리문을 밀고 다시 나갔다. 유림은 출입문의 차임벨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등에 필사적으로 달라붙어있는 백팩의 반쯤 열린 지퍼가 마음에 걸렸다.


유림은 자신이 '콜드 콜(Cold Call)' 방식으로 비아시안 레스토랑만 골라 다니며 이력서를 뿌리던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때 '구인하고 있지 않다'는 단호한 거절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유림을 맞이했던 서빙 직원들도 3초 만에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레터 사이즈 용지를 접지 않고도 넣을 큰 가방, 동행인 없는 혼자인 모습, 누군가 다가와 'How can I help you?'라고 말 걸어주길 기다리는 어색함과 긴장된 표정. 입구에서 직원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며 인사한 것만 제외하면, 그 학생과 유림은 거의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유림이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후에도 그들의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은 구인하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필요할 때 연락 줄게'라든지 '매니저에게 이력서를 전달할게'라는 말과 함께 유림이 건넨 이력서를 친절히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콜드 콜 방식으로 이력서 전달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당장 내일이라도 연락이 와서 '인상이 좋아서 채용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고 싶다'며 면접 날짜를 잡자고 할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이력서 상단에 적은 이메일과 전화번호가 잘 보이도록 형광펜까지 칠해 두어도, 유림의 휴대전화는 끝내 울리지 않았다.


채용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구인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단호하게 희망을 잘라주는 것이 나은 걸까. 아니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이력서라 할지라도, 눈앞에서는 희망이 있는 척 좋은 말을 건네는 것이 더 나은 걸까. 무엇이 그 사람에게 더 나은지, 아니 덜 좌절을 주는 선택인지 유림은 가늠해보려 했지만 결국 결론 내리기를 포기했다.


"매니저 님, 저희 써빙 직원 구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말씀하시길 주방 보조도 필요하시다고......"


"저 인종을 어떻게 뽑아. 사람이 아무리 부족해도 절대 안 될 말이지. 갑자기 연락 두절됐다가 일주일 뒤에 연락 와서 아파서 그랬다고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잖아, 쟤네."


유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드워드가 불쑥 말을 잘랐다. 유림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인종'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게 울린 것 같았다. 다행히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은 그 대화에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한국말을 알아들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정 인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유림은 '그 인종'이란 말이 누구를 뜻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불리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국 써버들 사이에도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였다.


"진짜 짜증 나. 포크 갖다 달라, 냅킨 갖다 달라, 미소 식었으니 다시 떠달라, 시키는 건 제일 많으면서 또 봉사료는 0이야."


"말해 뭐 하냐? 설마 뭐 기대라도 한 거야? '그 인종'인데?"


"내가 제일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 뭐, 요청 많은 거? 괜찮아. 우리가 그거 하려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봉사료 0 때리는 거? 그것도 백번 양보해서 괜찮아. 음식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야, 나 너 뭔 말하려는지 알아. 존나 당당한 거 말하는 거지?"


"내 말이!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고 훌륭한 식사였네 어쩌네, 어메이징, 원더풀 다 해놓고 존나 당당하게 0 때리고는 나한테 활짝 웃으면서 카드 기계 건네주는 거, 그 표정 알지?"


유림은 써버들의 그런 대화에는 절대 끼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비드 팬데믹 때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매일 사망자 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는 상황,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위험 앞에서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사회적 거리 지키기 캠페인이 시작되고 엘리베이터에는 한 번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수를 2명으로 제한된다는 공고가 붙었다. 유림이 두 번째 탑승자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강력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렇지 않아도 엘리베이터 전쟁인 출퇴근 시간에 탑승 거부를 당하자 1시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두 배가 되었다. 두 배가 된 출근 시간이 반복되자 유림은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뿐만 아니었다. 길을 가다가 난데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받으며 '라고 백 투 유어 뻐킹 컨츄리(Go back to your fucking country)!'라는 인사를 받기도 하고, '미즈 바이러스(Ms Virus)'라는 별명을 갖게 되기도 했다. 다른 서양권 나라에 비해 차별이 적다는 캐나다도 죽음의 공포 앞에선 별 수 없었다. 그 당시 유림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유림에게 죽음의 공포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아시안을 상대로 하는 '묻지 마 폭행'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이었다.


불호의 이유가 합당하다면 차별이 아니게 되는 걸까. 유림은 에드워드의 단호한 말을 떠올리며 묘한 감정에 잠겼다. 피부색이 밝지 않다는 이유로 혐오하고 폭행하는 건 차별이지만, 뻔뻔한 국민성을 가졌다는 인식이 있는 나라의 사람을 기피하는 것은 단순히 선호의 문제가 되는 걸까. 유림은 만약 자기가 식당 사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에드워드의 말처럼 '그 인종'이라면 직원으로 뽑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을 개인으로 대하는 데 실패하고 집단으로 낙인찍는 실수라고 손가락질당해도 이미 불리한 패를 가지고 확률 게임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이력서를 한 번쯤은 읽어보고 고려하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맞는 거라고 믿었다.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