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20 두 번째 맥주

테이블 No. 20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비자야는 마지막으로 입에 털어 넣은 콜라를 두 모금에 나눠 천천히 삼키고는 유림의 눈을 잠시 쳐다보다 자기 앞에 놓인 포크를 집어 들고 다시 유림을 바라봤다.



"왜? 왜 1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거야?"



아무 말도 없이 포크만 만지작거리는 그녀가 입을 열기 기다리다 결국 유림이 재촉했다.



"쫓겨날까 봐 두려워.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일한 1년의 급여를 하나도 못 받을 거 아냐."



여기서 더 참으면 1년 하고 1개월 치를 못 받게 되는 거야. 더 참으면 1년 하고 2개월 치가 되겠지. 소리 내 말하는 대신 맥주를 삼켰다.



"다른 데 일자리를 구해볼까도 생각했는데 쉽지 않아. 나랑 같이 사는 사촌 동생도 캐나다에 온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아직 일을 못 구했어."



"사촌 동생?"



"응. 내가 캐나다에 오고 나서 1년쯤 뒤에 왔어. 그땐 그래도 돈을 조금씩 받긴 할 때였어. 제대로 다 받은 건 아니지만."



비자야의 말은 이랬다. 1년 반 전 캐나다에 온 후 처음으로 구한 일이 지금의 코세이 주방일이라고 했다. 처음 3개월은 급여와 팁을 꼬박 챙겨 받았다. 그리고 그 후 3개월은 급여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는데 임금 지급을 요구할 때마다 사장은 500불 어떤 날은 200불을 현금으로 줬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급여 수표와 함께 달라며 고사했으나 나중에는 그것조차 받지 않으면 당장 월세도 내기 힘들어 지는 바람에 사장이 돈을 얼마를 주건 일단 무조건 받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급여에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다. 그러다 1년 전부터는 아예 그것조차 없어졌다. 비자야가 요청할 때마다 사장은 '지금 사정이 너무 힘들어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초반에는 매일 그 이야기를 꺼냈으나 비자야도 이제 지쳤다고 했다.



"밴쿠버 월세 비싼데 1년이나 돈을 못 받았으면......"



"그래도 다행이 아주 저렴한 월셋방을 구했어. 사촌 동생이랑 같이 내니 각각 240불 씩만 부담하면 돼. 사촌 동생과 내가 캐나다 올 때 들고 온 돈으로 버티는 거지."



방 한 칸에 사촌 동생과 같이 살다니...... 비자야는 사촌 동생과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좋은 편이라 지낼 만하다고 했다. 유림이 아는 한 현시점 기준 아무리 싼 방을 찾아도 월세가 600불 이하의 매물은 거의 찾을 수 없는 게 밴쿠버 상황이었다. 성인 두 명이 같이 내는 방 한 칸 월세가 480불이라면 방 사이즈나 상태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저렴한 방 렌트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서 올라오는 매물을 밤새도록 뒤졌던 때가 있었던 유림은 사촌 동생과 같이 산다는 480불 짜리 비자야의 방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 방은 어두웠다. 공기는 언제나 습하고 차가워 계절이 없는 세계 같았다. 천정에 붙어있다시피하는 작은 창문은 햇살에 인색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 패턴 무늬를 한 얇은 이불에 덮여있는, 한 쪽이 내려앉은 싱글 침대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끽끽 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침대 맞은 편 벽에는 60년 쯤 전에 만들어졌을 것 같은 작은 책상과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의 의자가 놓여 있다. 책상 상판에는 오랜 세월동안 새겨졌을 상처가 많았고 의자 등받이는 덜렁거렸다. 아마 집주인의 부모나 혹은 그들의 친인척이 운영했던 식당에서 썼던 의자 중 하나를 가져다 둔 것이겠지.



혼자 써도 작을 침대에서 사촌 동생과 꼭 껴안고 자는 거냐며 묻고 싶었지만 유림은 묻지 않았다.



"그럼 계속 사장이 알아서 돈을 줄 때까지 그만두지도 않고 계속 무급으로 일할 생각인 거야?"



비자야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유림의 눈만 쳐다봤다.



"나는...... 2주마다 꼬박꼬박 급여를 받고 있는 걸 알고 있어?"



비자야의 눈이 커졌다.



"급여뿐만 아니라 팁까지 1센트도 빠짐없이 챙겨 받고 있어."



"......"



"내가 무슨 대단한 인재라서 나만 돈을 받겠니...... 무슨 말인지 알지?"



무슨 말인지 아는 것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만만한 사람만 골라서 돈을 안주는 거잖아! 유림은 소리치고 싶었다.



"제대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밀린 급여 정산해 달라고. 아니면 신고하겠다고."



비자야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생각이라니 도대체 이 상황에 무슨 생각을 더 한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코세이의 다른 한국 셰프들이 유림에게 밀린 돈타령을 할 때마다 드는 찜찜한 기분, 비자야가 사촌 동생과 웅크린 채 침대 가장자리에 겨우 매달려 있는 모습이 상상될 때마다 올라오는 축축한 기분, 그건 바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었다.



뱀 사장은 유림의 손이 제법 빠르고 일 수완이 괜찮다는 것을 파악한 것과 동시에 유림은, 돈이 밀리는 순간 바로 일을 그만 둘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건 유림이 신경 써서 작업(?)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급여 봉투를 간장통 밑에서 찾은 순간 유림은 눈치를 챘다. 마음이 불편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유림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직원들이 유림에게 푸념을 늘어놓거나 하소연을 할 때면 '그러게요'라든지, '저도 계속 말씀드리고는 있는데'라면서 맞장구를 치거나 말끝을 흐리는 식으로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셰프들도 비자야도 유림은 제때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비자야의 통장은 비어 가고 있을 테지만, 그녀가 좁은 침대 가장자리에서 굴러 떨어질 테지만 그렇다고 뱀 사장에게 '나는 괜찮으니 사정이 더 딱한 비자야의 돈부터 챙겨주셔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림 본인의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낫다고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거였다. 예전의 유림이라면 몰라도 더 이상 예전의 유림이 아니었다. 단지 비자야가 자신처럼 뱀 사장에게 강력하게 의사표현을 해서 본인의 권리를 찾길 바랐다. 그래서 유림이 스스로의 권리를 챙기는 당연한 일에 대해 마음이 불편하지 않길 바랐다. 유림이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Okay. I've decided(그래. 나 방금 결심했어)."



유림이 고개를 들어 비자야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미적지근한 그녀의 반응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던 유림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Yeah? So when are you actually gonna talk to the Mr. Park about it?(그래? 그럼 언제 사장한테 제대로 말할 거야?"



"Not that— I meant I’ve decided to try my first-ever drink in my life tonight! (그게 아니고—난 오늘 내 인생 첫 술을 도전할 거야!)"



비자야는 메뉴판을 높이 들어 종업원을 부르고는 유림이 마신 것과 똑같은 맥주 한 잔을 시켰다.



"You, really? (헐)"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지켜보는 유림에게 윙크를 해 보이며 메뉴판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생맥주는 금방 그들의 식탁 위에 놓였다. 비자야는 가득 찬 생맥주 잔을 코 앞에 대며 냄새를 맡았다.



"How does it smell? (냄새는 어때?)"



"Of course! It’s a smell I’ve never smelled in my life before! (당연히 내 인생에서 처음 맡아보는 냄새지!)"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그녀가 맥주 거품에 입을 가져다 대는 것을 지켜봤다. 한 모금, 두 모금......



"Wait, just take a sip. You said it's your first time, dude! (잠깐만, 한 모금만 마셔. 처음이라며!)"



처음 마시는 술이라며 그녀는 삼 분의 일 정도를 비웠다. 그러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괜찮냐고 걱정하는 유림에게 맥주잔을 내밀었다. 콜라처럼 달지도 않은 맥주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비자야게서 맥주잔을 받아 든 유림이 남은 맥주를 한 번에 비우는 모습을 경이롭다는 듯 쳐다본다. 첫 잔을 끝낼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비자야가 건네준 맥주가 들어가자 취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취기였다. 이것도 얼마 가지 않을 걸 알지만. 유림은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의자 등받이에 허리를 묻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식당에 들어와 식사하고 대화하는 내내 한 번도 긴장을 푼 적이 없다는 것을.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 있던 비자야가 낄낄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술 취한 건가? 어쩐지 처음이라며 무리를 하더니...... 유림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비자야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What happened. Are you okay?"



"I've heard people say 'dude' all the time, but that's the first time I've actually been called one.(사람들이 '듀드'라고 하는 건 많이 봤지만, 내가 그렇게 불린 건 처음이야.)"



"Why is that so funny?(근데 왜 그게 그렇게 웃긴 건데?)"



"Just because. I kinda feel Canadian for a second, like I finally made my first friend here in Canada. (그냥. 잠시 캐나다 사람 된 것 같아. 그리고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친구'라는 단어에 순간 정신이 들었다. 친구는 만들지 않는 게 유림의 방식이었다. 어차피 다 시절일 뿐이니까. 비자야는 기뻐보였고, 유림은 그 기쁨에 적당히 반응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In your culture, what do you guys say instead of ‘dude’? (너희 문화에서는 '듀드' 대신 뭘 써?)"


"Yaar."


"Yaar?!"


어느 새 비자야의 눈 주위가 빨개져 빨간색 무늬 판다같이 보였다. 술기운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의 잔이 비워진 걸 보자 담당 써버가 와서 한 잔 더 하겠느냐 물었다. 유림은 괜찮다며 대신 따뜻한 물과 계산서를 요청했다. 머그잔에 레몬 한 조각과 함께 담겨 나온 온수를 비자야에게 마시라며 건넸다. 그동안 유림은 써버가 들고 온 계산서를 확인하고 결제를 했다. 세금까지 해서 120.66달러. 유림의 한 달치 식재료비 지출분으로 정해두고 쓰는 돈이 150달러였다. 카드 단말기에 기본으로 세팅돼 있는 봉사료 옵션이 18퍼센트부터 시작했다. 2번째 옵션이 20퍼센트, 3번째 옵션이 30퍼센트였다. 유림은 3을 누르고 데빗 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댔다. 아참, 이번 달엔 쌀도 떨어졌는데! 갑자기 텅 빈 냉장고와 쌀통이 떠오르며 곧바로 후회를 했지만 경쾌한 결제 알림 소리는 이미 유림의 한 달치 식비 아니, 한 달치 식비 보다 6달러 86센트 더 큰돈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어쩌랴. 싱글벙글하는 써버의 앞치마 자락을 붙잡고 팁을 다시 무르자고 사정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Hey, why did you pay for everything? I've got cash, I can give it to you right now. How much was the total? This place is pretty expensive, isn't it? (왜 네가 다 냈어? 나 현금 있어. 현금 줄게. 근데 전부 얼마 나왔어? 여기 꽤 비싸지?)"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유림 앞에 놓여있던 영수증을 가져갔다.



"Oh my god...... Seriously? even 30 percent for a tip??? (세상에...... 심지어 팁을 30퍼센트나???)"



"It's fine. Once you get all that money from Mr. Park, you can treat me to something nice. Just so you know, I'm totally fine with curry. (돈 됐어. 사장한테 돈 다 받으면 그땐 네가 맛있는 거 사줘. 참고로 난 카레도 좋아.)"



'카레'라고 발음할 때 최대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비자야를 향해 한쪽 눈을 빠르게 감았다 떴다. 그녀의 주머니에 현금이 80불이나 있을 리도 없었다.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하는 비자야의 표정은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에 가까웠다. 사실 두 번째 맥주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유림이 써버로 돈을 번다는 사실을, 맞은편에서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이 모른다면 절대 내지 않을 팁의 액수였다. 18퍼센트도 아까워 '기타' 메뉴로 들어가 15퍼센트만 찍어줬을 터였다. 하지만 비자야는 분명 영수증을 궁금해할 것이고 영수증을 가져가면 유림이 얼마의 봉사료를 주었는지도 확인할 거라는 걸 유림은 알았다. 팁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면서 팁에 인색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은 넉넉하게 잔 돈을 남기는 손님들을 좋아하면서 스스로는 그것에 인색한 사람인 걸 들키고 싶지 않은 건지 몰랐다.



"Well, you are a server. No wonder you're such a generous tipper! (넌 써버니까 역시 팁에 후하네.)"



"Nah, this is purely because of the beer you passed me. I am drunk. (아냐. 이건 순전히 네가 나한테 넘긴 맥주 때문이야. 나 취했다고.)"



"Anyway, thank you so much for tonight, dude! (어쨌든 오늘 정말 고마워, 친구!)"



네가 네 돈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그 식당에서 길게 일하지 못할 거야. 내가 식당에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면 우리가 친구로 남을 확률은 더욱더 낮아지겠지. 친구든 뭐든 되고 싶으면 네가 진작 받았어야 했을 그 돈을 제발 받아내줘. 유림은 이번에도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진 않았다.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