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15 퍼펙트 마이너스 삼

테이블 No. 15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출근하시면 여기 붙여놓은 종이에 팁 끊으시고, 앞치마는 여기."


뱀 사장은 처음 일하러 온 새 써버에게 왔냐, 갔냐 인사 한마디 없이 손가락으로 계산대 옆에 붙여놓은 손바닥 만한 이면지를 가리키며 앞치마 뭉치를 건넸다. 팁을 끊으라는 말은, 팁을 나눠야 하는 써버 인원이 바뀌면 계산법이 바뀌기 때문에 이전까지 받은 팁이 얼마인지 체크해서 기록해 두라는 뜻이다. 팁 이야기가 나오자 유림은 예민해졌다.


'설마 첫날부터 팁 백 프로 가져가나?'


당사자가 눈앞에 있는데 사장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거니와 아니라고 해도 봉사료 정산을 하는 건 마감을 하는 유림이 아니라 사장이므로 물어볼 명분이 없었다. 그냥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다른 곳에서도 일하니까 생활비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전은 돈에 연연하고 싶지 않은데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의지할 수 있는 다른 써버가 있으면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할 것이고, 그건 분명 긍정적인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몇 푼 안 되는 돈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경계부터 하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유림이 기억하는 예전의 자신은 이렇게 쪼잔하고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을 발견하면 지갑 속 큰 지폐 몇 장을 턱턱 접어 그들 손에 쥐어 주고 도망가기도 했다. 순수했고 자비롭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단골 질문이 머릿속에 또 쳐들어오려 했으나 단체 손님이 그것보다 더 먼저 가게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새로운 써버의 팁 분할 문제 따위는 곧 잊어버렸다.


뱀 사장은 여덟 명의 단체 손님 테이블에 주문을 받으러 가는 유림에게서 오더 태블릿을 빼앗은 후 M에게 건넸다. 첫날부터 단체 주문을 시키겠다고?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거다. 주문을 받는다는 건 식당 메뉴에 대해 완벽히 익숙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메인 포스 기와 연동되는 태블릿에는 50가지가 넘는 메뉴가 입력되어 있는데 음료, 애피타이저, 스시와 사시미, 롤 메뉴, 철판 요리류, 면류, 콤보메뉴, 런치와 디너 스페셜 등의 큰 분류 안에 일반롤, 스페셜롤 혹은 볶음 면류, 국물 면류 등의 소분류가 또 나눠져 입력되어 있다. 메뉴 이름을 다 외운다고 해도 어디에 들어가야 해당 메뉴의 버튼이 있는지에 대한 숙지가 있어야 지체 없이 빠른 주문 입력이 가능하다.


더욱이 단체 손님이라면 난이도는 더 올라가는데 한국처럼 대표자가 한꺼번에 시키는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 따로 주문한다. 한 사람 당 많게는 서너 개의 메뉴까지 주문하는 경우도 많아 눈과 손가락이 매우 바빠진다. 더치페이가 기본인 외식 문화 때문에 영수증 처리를 개별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만약 예외의 경우까지 생기면 더 복잡해진다. 한 사람 씩 차례로 주문을 받다가 '아참, 나는 내 파트너와 같이 돈을 낼 거야'라든지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 친구가 오늘 생일이라 내가 그의 식사값을 낼 거야.' 따위의 요청이 들어오면 이미 입력한 누군가의 주문에 추가로 올리는 방식으로 주문을 넣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단체 손님 주문받기'는 써버 역량 테스트 중 짧고 굵은 강력한 한방이 되는 것이다.


유림은 다른 테이블에서 음식 주문을 받으며 M이 가 있는 8인용 테이블 쪽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만에 하나 빨간 신호(Could you please give me one moment?)가 M의 입에서 세 번 이상 나온다면 신속히 지원을 하러 갈 생각이었다. M을 위해서라기보다 주문이 꼬이면 여러모로 피곤해질 뿐 아니라 봉사료도 안 나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두 번의 빨간 신호가 있었지만 무난히 통과한 것 같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메뉴 두 개를 태블릿에서 찾지 못해 유림이 대신 입력해 주긴 했으나 아무튼 놓친 것 없이 잘 받아낸 것 같았다. 유림이 매긴 점수로는 퍼펙트에서 마이너스 3점. 일단 단체 손님 주문을 받으러 가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음식값 지불에 대한 정리를 하는 것이다(-1점). 하나의 영수증으로 나가도 되는지 개별인지, 개별이라면 혹시 같이 내는 커플 같은 예외의 경우가 있는지 물어보고 예외의 경우를 먼저 주문받아 실수를 줄인다. 그리고 단체 주문을 받을 때는 중간에 끊어 간다(또 -1점). 여덟 명이라면 네 명쯤 주문을 받았을 때 '주문 보내기' 버튼을 눌러 주방이나 스시바로 주문지가 들어가게 해놓고 나서 나머지 손님의 주문받기를 진행한다. 다량의 음식 주문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셰프들이 음식 준비를 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테이블을 떠나기 전에 받은 주문을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하지만 빠르게)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마지막 -1점).


'단체 손님 주문받기' 미션은 무사히 지나갔으나 M은 다시 마이너스 1점을 획득하고 말았다.


한창 바쁜 저녁 시간 아보카도 롤에 크림치즈를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얼마를 추가하면 되는지 사장에게 물었다가 사장의 짜증을 획득했다. 크림치즈 연어 롤 가격과 연어 롤 가격을 확인해서 차이만큼 추가하면 되는 거였다. 바쁘지 않을 때야 물어보고 확인하는 게 가장 좋지만 정신없이 바쁠 때는 어느 정도 융통성 발휘가 필요하다. 만약 유림이었다면 크림치즈 연어 롤과 연어 롤의 가격을 못 찾았다고 해도 적당히 1.5달러나 2달러 정도 추가하고 주문을 넣었을 것이다. 롤 하나에 들어가는 추가 재료는 보통 그 정도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만에 하나 50센트에서 1달러 정도 오차로 잘 못 넣었다고 해도 그 정도의 적은 금액인 경우 사장도 손님도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과서 대로 한다면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게 맞겠지만 사장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스시 가게 경력이 8년이라는 M은 센스나 융통성보다는 몸을 잘 쓰는 쪽이었다. 유림이 식탁을 치우러 가면 이미 M이 끝내고 돌아오고 있었고, 접시를 한 손에 두 개씩 들고 날랐다. 유림이 그걸 느꼈다면 사장이나 스시바 너머에서 홀 전체를 지켜보는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셰프들은 진작에 파악했을 것이다.


"율리아, 저 미안한데 화장실 좀 금방 다녀올게요."


"그럼요! 편하게 다녀오세요. 손님 좀 빠졌으니까 천천히."


영어 이름을 쓰면 편한 게 있긴 하다. 그건 손아랫사람을 대할 때 호칭이 좀 자유로워진다는 거다. ~씨로 불러야 할지, ~님이 나을지 고민 없이 그냥 영어 이름만 부르면 되니까. 유림 님은 부담스러웠고, 유림 씨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유림으로서 담백하게 '율리아'라고 불리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봤을 때 마흔여덟까진 아니고, 한 마흔넷, 다섯?"


"애가 초등학생 이상은 되는 것 같으니까 뭐."


"이번엔 제발 좀 길게 가면 좋을 텐데."


테이크아웃 주문 음식을 포장하고 있던 유림의 귀에 셰프 둘의 대화가 들렸다.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M에 대한 이야기였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국 업주들은 까다롭다. 써버 한 명을 뽑는 데에도 원하는 조건이 너무 많다. 앞에서 대놓고 얘기하지 않지만 뒤에서 하는 말들이 많았다. 남자든 여자든 외모가 좋은 게 일단 좋은 거다. 하지만 역시 집안일에 익숙할 확률이 높은 여자를 더 선호하며 비자 문제로 갑자기 그만두게 될 수도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는 기피한다. 책임감이 없고 아직 일머리가 없다는 편견으로 20대 초반은 안되고, 20대 후반부터 괜찮긴 하지만 웬만하면 사회생활 좀 해 본 30대를 가장 선호한다. 40대 중반을 넘기면 '아줌마'라서 가게 분위기를 까내린다며 반기지 않는다. 40대 미만에 무자녀 미혼이면 더욱 환영이다. 아이가 있으면 픽업을 해야 한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 등 여러 가지 변수로 시프트 구멍 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미혼이 환영받는 이유는 조금 복잡하고 민감하다. 아무도 대놓고 말한 적 없지만 유림은 알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어른으로 대해 주지 않는 한국 사회의 인식 때문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은 대하기가 편하다. 즉,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비자 문제가 없는, 젊고 예쁘되 성숙하고, 스케줄 변수가 없으며, 다루기 만만한 한국 여자. 유림은 일회용 용기에 미소 된장국을 담으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안도했다. 여섯 개의 조건 중에 네 다섯 정도는 통과했다는 생각에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도 물론 이제 얼마 남지 않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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