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No. 12 생선구이와 불청객

테이블 No. 12

by 황서영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허구입니다.





점심 장사는 별일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점심 손님들이 얼추 빠지고 나자 주방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밥 먹자. 준비해.' 스티븐 주방장이었다. 어쩐지 주방 쪽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스티븐의 목소리가 알람이라도 되듯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가게 내 가장 큰 식탁으로 움직였다.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스티븐이 가지고 나온 카트에는 생선구이와 오징어뭇국이 뜨거운 김을 내고 있었다. 그 외에도 직접 담갔다는 배추김치와 파김치도 있었다. 참치캔과 양배추와 토마토를 주식으로 먹는 유림은 이렇게 푸짐한 한식 밥상을 받은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역시 사장이 가게에 상주하지 않기에 가능한 식사였다. 사장이 직접 음식을 해주는 게 아니라면 직원 점심으로 식재료를 쓰는 게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사장이라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아마도 매니저가 유림을 며칠간 지켜본 후 계속 같이 일 할지 말지 결정이 나면 사장에게 이야기를 하겠지. 그립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시각적 후각적으로 맞닥뜨리자 없는 줄 알았던 그리움이 한 번에 몰려왔다. 구수한 생선구이와 칼칼한 오징어뭇국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첫 술을 음미하며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유림과 마주 앉은 매니저 진은 출입문과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 테이블을 번갈아 바라보며 맛이 느껴질까 싶을 정도로 기계처럼 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뱃속으로 집어넣는 것 같았다. 진은 식탁에서 흐르는 사람들의 대화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아 손님과 출입문으로 더 열심히 눈길을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유림의 오른쪽에는 스시바에서 롤을 마는 젊은 남자가 앉아 모든 음식에 후한 별점을 매기며 주방장의 음식 솜씨를 칭송하고 있다. 딜런이라고 했다. 나이를 말한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보자마자 '유림 누나'라며 말을 곧 잘 붙였다. 나이 질문을 받는 것도 싫었지만 묻지도 않고 '누나'가 되는 일도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좋아 보여 크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딜런 맞은편에는 점심 식사를 준비한 주방장 스티븐이 앉아 사람들에게 생선 구이를 한 마리씩 나눠주고 있다. 멀리서 볼 땐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몸집이 작고 왜소했다. 첫날이니 특별히 유림에게 큰 생선을 골라주겠다고 했다. 감사하다며 받았으나 유림이 보기에 가장 큰 놈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구석 자리에 앉은 제이미. 밝은 톤으로 염색을 하고 세팅파마로 볼륨감을 준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었다. 머리 색깔과 맞춘 갈색의 일자 눈썹과 과하지 않은 메이크업. 한국에서 샀을 게 분명한 통 넓은 슬랙스 바지에 딱 붙는 골지 반팔티를 입은 것까지 누가 봐도 20대의 한국 여성의 모습이었다. 캐나다에 온 지는 이제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픈 담당인 유림과 진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한 써버였다. 써버는 식사를 할 때 손님의 부름에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자리인 개방된 식탁 쪽의 가장자리에 앉는 게 보통인데 벽으로 막힌 구석 자리에 앉았다는 건 점심 식사를 방해받지 않겠다는 의도다. 점심식사 자리 선택 하나만으로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았으나 별 수 없었다. 첫인상으로 호불호를 결정짓는 건 인간의 본성이니까. 물론 성급한 판단일 거라며 두 번째, 세 번째 인상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으로 비호감이라는 현재의 감정에 합리화를 하긴 했다. 게다가 점심 식사 전까지 유림과 같이 홀을 보면서 유림이 시도한 '아이스 브레이킹' 대화나 '스몰토크'를 받아주지 않았다. 유림의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말하고 유림을 피하듯 먼저 자리를 떴다. 불호였다. 하지만 젊고 예쁘고 스타일까지 좋아서가 아니라 점심식사 자리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유림이 세 번째 숟가락을 뜰 때 진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마리씩 배당받은 생선구이는 손도 대지 않았다. 사람들의 밥그릇에 밥이 절반쯤 비워졌을 때 사람들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유림은 불안해졌다.


"유림이라고 했지? 캐나다에는 언제......"


시작됐다. 가장 만만하고 가벼운 질문으로 포문을 열고 나면 두 번 째는 결혼 아니면 나이, 세 번째는 연애 여부, 네 번째는 사는 곳, 다섯 번 째는 월세, 여섯 번 째는 동거인의 유무...... 한국 바닷물에 창의력도 응용력도 죄다 버리고 온 건지 캐나다 거주 한인들에게는 변함도 발전도 없는 '사생활 침해 레퍼토리'가 있었다. 한국은 그래도 요즘 많이 변했다던데 캐나다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시대도 트렌드도 피해 가는 걸까.


다들 처음 온 써버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을 테지만 다른 사람이 포문을 대신 열어주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유림의 이름을 입에 담은 건 스티븐 주방장이었다. 초면부터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반말로 시작된 걸 보면 이번에도 일말의 희망을 품는 건 차라리 고문이겠거니 싶었다. 유림은 첫 술만에 식욕을 잃었다. 최대한 빨리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 진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도유림입니다. 저는 이천 십오 ㄴ......"


"이야~ 맛있는 냄새나네. 내 밥도 있어?"


유림이 대답을 하려는 찰나, 주방에 난 뒷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셰프님! 일찍 오셨네요? 점심 드시려고 일부러 빨리 오신 거 아니에요?~"


"정답! 주방장이 푸짐하게 차렸을 거 아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분 나쁜 예감은 엇나가는 법이 없다.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