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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구요?

[엄마의 쉼표21 : 미처 대비하지 못한 도덕책 밖 네살 인생(1) ]

by 삐와이

워킹맘이라는 사실을 앞세워 나는 평소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겪는 일은 전적으로 어린이집에 맡겨왔다. 우연히 주말이나 복직 전 친해진 몇몇 아이들과의 친분에 기대어 아이들의 사회생활을 가늠했고, 주말엔 간간히 친구네 가족들과 같이 어울리며 “이 정도면 잘지내고 있어”라는 안도 속에서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나에게 카톡이 도착했다. 학기초 우연히 번호를 교환했지만 사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던 같은반 아이의 엄마였다.


“쌍둥이 어머니 바쁘시죠.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카톡으로 전하자니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요.”


그 카톡을 읽으니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퇴근길에 듣게 된 전화 속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3월부터 새로 들어온 남자아이가 있는데 꾸준히 아이들에게 거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본인의 아이도 트러블을 겪은 적이 있어서 하원시간에 종종 원내를 살펴볼 때가 있는데, 선생님들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원 내의 다소 조용한 친구들에게 가서 머리를 치거나, 밀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거친 행동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 중 우리 아이들도 있다는 얘기를 건넸다.

“아무래도 쌍둥이 어머니는 등원도 이르시고, 하원도 아이들 다 가고 데려오시니까 상황을 잘 모르실 것 같아서요. 제가 벌써 두 번은 직접 봤어요. 선생님들이 안 보실 때 일어나더라구요. 똘양이는 몇 번 말하다가, 그냥 머리를 손으로 가리면서 맞고만 있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두근거림을 넘어 쿵쾅거렸다. 어린이집에선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고, 나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포자기하듯 맞고 있었다는 장면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일 없다는 듯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어린이집에서 책을 한권 읽어주고,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를 한바퀴 돌았고,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과 가볍게 놀이를 이어간 뒤 집으로 들어왔다. 대수롭지 않은 질문으로 보이기 위해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똘양이 똘군이 요즘 어린이집에서는 어떤거 하고 놀아?
(중략)
아~그럼 세모군(전화통화에서 나왔던 아이)은 뭐하고 놀아?”
“세모군? 세모군은 재밌어. 근데 좀 애들이랑 꼬집어요”
“꼬집어? 꼬집으면 똘양이똘군이는 어떻게 해?”
“음….하지말라고 하지. 근데 그래도 해요”
“그런 땐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
“근데 선생님은 바쁘잖아요”
“그럼 선생님이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도와주세요! 하는거야 알았지?”

미봉책에 불과했지만 갈등상황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땐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라고,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히어로를 부르듯 “도와줘요 선생님!!”을 외치는 연습을 시켰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멍든 상처도 그냥 넘어갔던 게 문제였나? 서로 지켜줄 거라 믿은 게 문제였나?’
생각의 물꼬는 내가 그간 아이들이 집에서 싸울 때 했던 훈육으로 이어졌다. 평소 아이들이 싸우면 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준 뒤, 각자의 상황이나 감정에 공감하는 멘트를 알려주며 따라하게 하고, 그러니까 다음에는 서로 양보하자로 마무리를 짓곤 했다.

어디까지나 상대가 내 말이나 부탁을 들어줄거라는 가정에서만 이루어진 훈육이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돌이켜보면 회사에서도 하루에도 수십번씩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뒤집어지는 것도 허다하다. 어제까지는 진리였던 것이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에나 있을 법한 생각이 되는 일도, 까라면 까야 하는 일도, 부당하게 혹은 과한 민원을 마주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아이들의 세계도 도덕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지켜라, 안되면 서로를 지켜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 지키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착하고 다정한 아이로만 키우는 것,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이제는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나는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 도덕책 밖 단단한 아이 만들기 프로젝트는 다음 쉼표(9.29발행)에서 계속됩니다.


25.09.22


ps.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다른 친구와 갈등을 겪는 일은 흔하니까

선배엄마아빠분들은 이미 여러번 이 과정으로 단단해지셨겠죠.

저는 왜 아이들을 동화속에서만 키워왔나...하는 현타를 맞았던 좋은 계기가 되었답니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단단한 엄마가 되는 길로 한걸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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