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쉼표19 : 주말 출근 플레이리스트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가 갑자기 생겼다.
처음 하는 행사라 모두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내가 책임자로 지목되었다.
행사의 A부터 Z까지 내 손에서 처음 기획되었고, 내가 올린 모든 안은 여러 리더들의 검토를 거쳐 뒤죽박죽 다른 안으로 탈바꿈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그때 그거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수정사항이 추가로 돌아왔다. 나는 수없이 내용을 취합하고 N번째 수정을 거듭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결정은 나지 않았고, 같은 단계의 수정만 반복되었다. 일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마감은 더 가까워졌다. 점심도 거르고 PC 앞에 앉아 일했지만, 내 몫이었던 기존의 업무를 끝낼 시간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결국 쌓이고 쌓인 일들을 참을 수 없어 어느 일요일 아이들과 아쿠아리움을 다녀오고, 온 가족의 저녁을 준비해놓고, 다음날 등원 가방까지 챙긴 뒤 주말에 다시 회사로 향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가한 출근길 차 안.
착잡한 기분을 달래려 스트리밍에 저장된 음악을 랜덤으로 틀었다.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나는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 짙은, 〈잘 지내자 우리〉 中
무심코 흘려 듣던 노래였는데, 이 구절이 귀에 꽂혔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왜 이 노래가 나를 사로잡았는지 생각했다.
일요일 저녁, 아무도 없는 건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키보드 소리만 울리던 시간.
다시 퇴근길 차에 올라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를 달리며 깨달았다.
그래, 나는 퇴사가 하고 싶었다. 벌써 몇 개월 째 나는 퇴사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은 계속 하고 싶었다. '늘 하던대로'를 외치는 사내 분위기, 조직의 80%가 전보조치를 당하는 사내정치가 판치는 조직문화, '후배가 감히 선배한테?'라는 말과 함께 후배들에게 R&R 없이 내려오는 각종 일들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 아니었다. 벌써 이 직장도 세 번째 직장이니, 최소 두 번은 이 기분을 이기지 못해 결국 이직을 택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별에 후회하는 노래’에 감정이입을 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마 전 이런 상상을 했던 게 떠올랐다.
“만약 내가 첫 직장에서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두 번째 직장에서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그리고 아직 그곳에 남아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선배와 동료, 후배들이 떠올랐다.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것들까지는 붙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스쳤다.
첫 직장에서, 나는 숱한 VOC에 시달리며 약간의 민원 응대력을 높였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PPT와 전략 수립, 기획의 기본기를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여기서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까.
쏟아지는 업무를 PM이 되어 끝까지 끌고 가는 경험.
극한의 상황에서 나의 감정과 일을 분리하는 방법.
타인과 협업하며 균형을 잡는 법.
분명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얻기 어려운 경험이 지금 내 앞에 있다.
물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일 수 있지만.
그렇게 스스로의 목표를 정리하고 나니, 주말 야근을 위한 밤 11시의 드라이브가 조금은 덜 무겁게 느껴졌다. 몇 시간 자고 다시 출근, 다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고 나니 파도에 무작정 휩쓸리지만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퇴사를 꿈꾼다. 더 나은 내가 되어, 더 해볼만한 것이 없을 때, 더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그때까지는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다. 내게 다가올 기적을 꿈꾸며.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로 말이다.
25.09.08
여전히 야근의 늪에 빠져있는 월요일 밤.
이번주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