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내 동생은 ‘곱슬머리’만 빼고 딱 이 가사 속 아이였다.
아이들이 단체로 수영장에 놀러갔다가 귀가하려 할 때, 말 안 듣고 혼자 사라져서 안내방송을 울리게 만들고. 멀쩡한 신발 놔두고 맨발로 뛰어다니기 일쑤라 결국 '어글리'란 별명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별명을 갖게 됐다. 번개맨 봐야한다고 TV 리모컨을 가져가서 숨기고, 항상 우리집 리모컨은 그 아이 차지였다.
까불이, 장난꾸러기, 사고뭉치는 동생을 위한 단어였다.
나는 내 삶이 바빠서 동생이 어떻게 크고 있는지 잘 몰랐다.
어느 날 문득, ‘어라, 얘가 이렇게 컸네?’ 하고 느끼게 된 순간들이 있다.
처음으로 느낀 건, 3년동안 못보다 만난 동생의 키가 나보다 컸을 때.
“어메… 이제 나보다 크네?” 하고 놀랐던 기억.
두 번째는 군대를 다녀왔을 때. 가장 크게 느꼈다.
가기 전엔 부모님께 반말을 일삼던 녀석이 제대 후에는 존댓말을 쓰고, 나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방을 정돈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주변에서도 “얘 사람 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도대체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기하다. “군대 갔다 오면 달라진다”는 말, 그 증거가 내 동생이다.
세 번째는, 말이 통했을 때.
성인이 된 후 몇 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얘랑 이런 얘기를 할 날이 오네’ 하고 속으로 웃었다.
막내라서 그런지, 밖에서는 형 노릇, 오빠 노릇하고 싶어한다. 가족과 있을 땐 과묵하지만, 동생들 사이에선 늘 밥 사먹이고 어울린다. 누군가를 챙길 줄도 아는 그 모습이 기특하다.
나한테 부탁할게 생기면 다짜고짜 '누나아~, 이것 좀 해줘~'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평소엔 무뚝뚝하다가. 본인이 어떻게 해야 내가 말을 들을지 안다. 웃음 한 번 콧방귀처럼 새어 나오고는 나는 또 해주게 된다.
요즘은 공부한다고 바쁘다. 오늘 나는 이것저것 하다 보니 밤을 꼴딱 새웠고, 새벽에 동생 나갈 시간이 다가오자 문득 고민했다. ‘도시락을 챙겨줘 말어’ 하다가 해줬다. ‘챙겨줄 수 있을 때 챙겨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컵밥 말고, 따뜻한 밥 먹어
밥 챙겨줬더니 오늘도 동생이 말한다.
“고마워.”
아직도 그 말이 어색한데 싫지 않다.
동생의 수고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