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생리통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별로다.
그래도 나갈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친구가 백화점에서 팝업 행사를 하는데, 이 날 자리가 갑자기 펑크 났다며 도와줄 수 있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집에서 약을 든든히(?) 먹고 나왔다.
큰 쇼핑몰에 온 건 오랜만이다. 가족 단위 손님들과 연인들이 많이 보였고, 영화관과 식당가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번 팝업은 양우산 브랜드 행사였다. 친구에게 제품 설명을 듣고, 종류별 특징들을 익혔다.
가장 걱정됐던 건 포스기 사용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포스기를 처음 써보는 거라 조금 겁이 났다. 미국 카페에 일할 때도 손님 응대보다 포스기 사용이 더 긴장됐었다.
화면에 터치 옵션이 많고, 키보드도 복잡하다. 친구가 시연해 주는 걸 옆에서 찬찬히 보면서, 어떤 순서로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어떤 화면에서 어디를 눌러야 하고 마지막에 엔터를 언제 쳐야 하는지를 메모장에 일일이 정리해 적었다.
나는 새로운 기계를 다룰 때 꼭 내가 해야 할 행동 순서를 적는다. 안 그러면 헷갈리고, 예기치 않게 오류가 나면 당황부터 하기 때문이다. 기계에 감이 없어서, 알려준 대로 그대로 해야만 마음이 편하다.
친구가 예시로 전화번호 하나를 등록했는데, 내가 그걸 바로 외워서 연습해 보니 친구가 “어떻게 바로 외웠냐”라고 놀라워했다. 그냥 아까 네가 입력하는 거 옆에서 보고 외워졌다고 했다. 나는 외우는 건 금방 하는 편이다. 다만 그걸 응용해서 적용하는 데는 약할 뿐....
몇 번 계산을 해보니 점점 익숙해져서 자신감이 붙었다.
우산 접는 법도 배웠는데, 나는 왼손잡이라 접는 방향이 서툴렀다. 내 편한 대로 왼손으로 접으면 찍찍이가 반대가 되어버려 할 수 없이 오른손을 썼다.
손님 응대는 곧잘 했다. 우산 특징 몇 가지만 머릿속에 정리하고 몇 번 설명해 보니까, 말하는 순서와 해야 할 말, 세일즈 멘트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손님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더 높여서 또렷하게 말했다. 이럴 땐 자동으로 성악 발성이 튀어나온다.
점심시간에 식당가에 올라갔는데 사람도 많고 복잡했다. 결국 나중엔 길을 잃어버렸다.. 겨우겨우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는데, 음식이 가격에 비해 맛이 없었다. 가격 대비 퀄리티가 별로다. 이 돈이면 야채랑 고기 사서 내가 요리하는 게 훨씬 맛있고, 합리적이고, 건강할 것 같다.
한 커플이 매장에 들어왔다. 여자가 남자에게 제품 하나를 선물해주고 싶어 하는 눈치다. 다 비교해 보고는 남자에게 어떤 게 좋은지 물어보는데, 남자는 결국 필요 없다며 사지 않아도 된다고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결국 그대로 돌아서 나갔다.
그 순간 갑자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예전에 할아버지 옷 사주려고 백화점에 가셨을 때, 할아버지가 “집에 옷 많다”며 “뭘 또 사냐”고 하셨던 일이 떠올랐다. (참고로 할아버지 옷은 기본 10년, 길게는 20,30년 된 것들이다.)
그때 할머니가 하신 말씀,
“아니, 내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지. 당신 옷 사주는 것도 있지만, 내가 경제 돌리려고 사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옆에서 엄청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할머니가 경제를 돌리는 거야? 대단하네!”
“그럼~“
할아버지는 옆에서 웃으며 말하신다.
“너네 할머니 대단한 할머니야, 경제도 돌리고”
일하면서 그 두 분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따가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겠다.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다.
매출은 그래도 꽤 잘 나온 것 같다고 한다. 다다음주쯤 여사님이 또 쉬실 일이 있다고 해서 내가 또 땜빵으로 도와주기로 했다. 제발 오늘 배운 포스기 사용법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체험, 삶의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