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I'd love to. 11화

네 가지 다 할게요

by 실버레인 SILVERRAIN


오늘 서울로 미술관과 서점에 가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이었다. 뭐 이런 날도 있겠거니...! 조만간 가야겠다.


오늘은 ‘사랑’의 글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내가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 날이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네 가지 사랑(The Four Loves)'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사랑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며, 균형을 잃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도 이야기 한다.




스토르게 (Storge) - 애정


스토르게는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사랑이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주어지는 이 사랑은 일상 속에서 자라난다. 함께 나누는 시간과 일상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지만 이 사랑은 때로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고마움을 잃을 수 있고, 소유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지나친 보호는 상대의 자율성과 성장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아 (Philia) - 우정


필리아는 친구 사이에서 경험하는 우정의 사랑이다.

같은 관심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의 삶에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사랑이다. 필리아는 대화를 통해 자라며,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공유하는 소중한 관계를 만든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끼리’라는 배타적인 관계로 굳어져, 엘리트주의적 우월감을 낳을 수 있다. 진정한 우정은 타인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넓어지는 방향이어야 한다.




에로스 (Eros) - 연인


에로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로맨틱한 사랑이다.

상대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며, 그 사랑이 나에게 집중되는 깊은 감정이다. 에로스는 강렬한 감정과 헌신을 동반하며, 예술과 문학에서 자주 다뤄진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랑은 너무 강렬하고 열정적이어서, 때로 상대를 우상화하거나 집착하는 감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사랑이 나를 무너뜨리는 힘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아가페 (Agape) - 자비


아가페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 즉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이 사랑은 자신의 이익을 바라지 않고, 오직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사랑이다.


아가페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랑의 최고 형태이며, 우리가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때,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러나 인간이 이 사랑을 흉내 내려할 때, 자기의 의로움으로 왜곡될 위험이 있다. 아가페는 결국 하나님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이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흐를 때 온전해진다.




루이스는 말한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사랑이 중심을 잃으면 타락할 수 있다고.


사랑은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랑을 경험하면서,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스토르게로 가족을 사랑하고, 필리아로 친구를 사랑하며, 에로스로 연인을 사랑하고, 아가페로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


사랑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우리 집 카톡방은 거의 매일 아빠의 응원 메시지로 시작한다.


소소한 그 말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아까 위에 언급한 대로 이 스토르게의 사랑은 너무 익숙해져서 고마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는 요새 읽씹한다.. 반성해야겠다.)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싸우신 적이 없다.

어릴 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크고 나서야 조금 이상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분이 그렇게 사이가 좋은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그 안에서 ‘스토르게’와 ‘에로스‘ 사랑을 간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두 분은 서로에게 반말을 하지 않으신다.


같은 나이임에도 선을 보고 결혼하셔서 그런지, 처음부터 말을 놓지 않으셨다.


서로를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고,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꼭 존댓말을 쓰신다.


한 번은 친구 커플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동갑내기였는데, 다투면서 "야", "너" 하며 언성이 높아졌다.


그 순간 문득, 부르는 호칭이 감정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했다.


결혼 후에도 ‘야’, ‘너’라고 부르게 되면, 갈등 상황에서는 그 호칭이 감정을 더 날카롭게 만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


아빠는 엄마를 ‘중전’이라고 부른다.


“엄마를 중전으로 모시면 나도 왕이지”라며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엄마를 높이면서 본인도 함께 높아진다는 뜻이다. 아무튼, 아빠는 엄마 바라기다.


두 분 사이에는 늘 존중과 배려가 있다.



그리고 두 분은 만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아빠는 거의 없고, 엄마도 가끔 만나시는 정도다.


정기적인 모임도 없다. 운동이나 낚시 동호회 같은 데에도 나가지 않으시고, 아빠는 혼자 헬스장에 다니신다.


그래서인지 두 분이 늘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신다. 잘 노신다, 둘이서.


아빠의 유머감각도 한몫한다.


소위 말하는 ‘아재개그’인데, 가만히 듣고 있다 어이없게 빵 터지게 만든다. 그 웃음, 무시를 못한다.


엄마와 함께 일하는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쌤들이 다 너네 엄마 부러워하고 있어. 너네 아빠가 그렇게 잘하신다고. 그거, 너도 알지?”


나는 몰랐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밖에서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의 사랑이 엄마의 자존감과 품위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엄마, 복 받았네.”




내 성격은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감정 표현하는 걸 어색해하지 않는다.


한 번은 친구에게 “네가 내 친구라서 진짜 고맙고 감사해~~~”라고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서 한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약간 당황한 눈치다.


칭찬이나 살가운 말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였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얘 왜 이러지?’ 싶었는데, 내가 계속 그러니까 이젠 익숙해져서 “그래~~” 하면서 웃으며 받아준다.


유머코드가 맞고 티키타카가 된다.


가치관도 비슷해서, 깊은 대화도 자주 나눈다.


서로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덕분에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통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우리는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좋은 우정인 것 같다.



애정, 우정, 에로스, 자비 네 가지 사랑은 우리 인생에 서로 어우러지며,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사랑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며, 우리를 깊은 곳에서부터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받은 사랑에 감사해야 하고, 또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살아가며 네 가지 사랑 잘해볼게요~’


이런 생각을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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