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이 사진을 발견했다.
'러닝크루 단톡방에 이 짤 올렸더니 바로 강퇴당함'
혼자 피식 웃었다.
요즘 러닝 크루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데, 거의 젊은 남녀들이다.
댓글 중 하나가 유독 공감됐다.
'운동하러 가서 사람 만나고 예의 차려야 하지, 말해야 하지, 운동에 집중 못한다. 혼자 뛰세요.'
만남을 목적으로 크루에 들어간 사람들을 뭐라 할 순 없지만, 진짜 러닝의 몰입감과 효과는, 오롯이 혼자 뛸 때 가장 강하게 오는 것 같다.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 중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알아보니 니체가 이런 뉘앙스로 한 말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라고 한다.
아니 저걸 러닝크루에 보낼 생각은 어떻게 한 거지...? 아무튼 웃긴 사람들 많다.
오늘은 니체의 책 중에서,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을 정리해 보았다.
사랑만이 구원한다
다만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다.
사랑만이 굽은 것을 펴고, 회복하고, 조정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진정한 창조력을 갖춘 사랑이야말로 완벽한 구원자다.
- 생성의 무구
낮은 시점에서 바라보라
가끔은 등을 굽히고 가능한 한 자세를 낮춰 웅크리고 앉아 풀과 꽃, 그 사이를 춤추는 나비를 가까이서 바라보라.
지금껏 그저 멀리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그곳에는 풀과 꽃, 곤충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어린아이가 매일 당연한 듯 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세상의 파도 속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하여
타인을 알아가고 가까이 사귀어 친분을 공고히 하는 것을 사교 혹은 교제라고들 하나, 사람들 대다수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순수성을 현저하게 잃어간다.
심지어 비열해지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강인해져야 한다. 타인의 주장이나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물들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본래의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한다.
세상의 파도 속에서 사교적으로 살면서도 표류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리는 단호함과 용기,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런 자만이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독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 선악의 저편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라
사랑이라는 것은 젊고 아름다운 이를 좋아하여 손에 넣고자 하거나 뛰어난 사람을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기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자를 찾거나 슬픔을 나누는 것도 아니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기뻐함이다.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함이다.
사랑으로 두 사람의 차이를 메우거나 어느 한쪽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현명함은 얼굴과 몸에 묻어난다
현명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익히면 어느 결에 그 사람의 얼굴은 슬기로움의 빛으로 채워진다. 표정뿐 아니라 겉모습에서도 현명함이 묻어난다.
예컨대 타인의 눈에는 그의 동작이나 자세에서 섬세함이 엿보인다. 이렇듯 어떤 정신을 가지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동 또한 달라진다.
건강한 사람이 활기차게 걷듯이, 슬픔과 실의를 간직한 사람이 터덜터덜 걷듯이.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하는 방법은 변한다
젊은 시절 마음을 사로잡히거나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대개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 색다른 것들이다. 그리고 보통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조금 더 성숙해지면 진짜와 진리가 가진 흥미로움을 사랑하게 된다. 사람이 한층 원숙해지면 젊은이들은 단순하다 혹은 시시하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진리의 깊이를 기꺼이 사랑하게 된다.
비록 땀이나 기교는 없을지라도, 진리야말로 최고의 심원함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처럼 자신의 깊이에 따라 사랑하는 방법을 달리해 간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음악은 영혼을 밖으로 이끈다
음악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이유는 혼탁한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영혼을 이끌어 내어 위로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현실의 테두리 밖으로 영혼을 가만히 옮겨다 놓고, 현실 속 나를 저만치서 바라보게 한다.
고요하고 평온한 공기 속에서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 침묵에 나를 맡길 뿐이다. 그럼으로써 영혼은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속삭임, 노래라 믿으며 영혼은 위로받는다.
- 아침놀
멀리 떨어져 바라볼 때
때로는 먼 시야라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그들을 생각할 때, 함께 있을 때보다 그들은 한층 더 아름답고 그립게 여겨진다. 음악 또한 그것과 떨어져 있을 때 더 큰 사랑과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그처럼 때로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응시할 때, 많은 것들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 아침놀
자연은 이루어 낸다
자연은 무엇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연은 반드시 목적을 달성한다.
- 생성의 무구
이상과 꿈을 버리지 마라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누구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한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다며,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 떠올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상과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엔가 이상과 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타인이나 젊은이를 조소하게 된다. 시샘과 질투로 마음이 물들어 혼탁해지고 만다. 발전하려는 의지나 자신을 이기려는 마음 또한 버려지고 만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코 이상과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자유롭고 높은 곳으로 당신은 가려고 한다. 그런 당신은 아직 젊기에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간절히 원한다.
당신이 사랑과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기를.
당신의 영혼에 깃든 고귀한 영웅을 버리지 않기를.
당신이 희망의 최고봉을 계속 성스러운 것으로 바라보기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것으로 가는 길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자신만이 증인인 시련
자신에게 시련을 주어라. 아무도 모르는, 오직 증인이라고는 자신뿐인 시련을.
이를테면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게 살며, 혼자 있는 경우라도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티끌만큼의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 냈을 때 스스로를 다시 평가하고, 자신이 고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진정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강력한 자신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
- 선악의 저편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생각의 시간과, 고독의 실험을 거쳤기에 이런 문장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 글 하나하나가 마음 깊숙이 와닿는다. 그 문장들 속에 담긴 말들을 우리 삶으로 천천히 옮겨내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이겠지만.
누군가의 고뇌가 후대에 전해져 공감받는 것도 결국 다 같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고통과 고민, 고독과 선택 앞에서 사람은 시대를 초월해 서로를 이해한다.
책 만드는 사람들이 그 글이 팔릴 것 같으니 책을 만들었겠지. 허투루 만들었을까? 그만큼 사람들이 이 말에, 이 문장에 자신의 그림자를 비춰볼 거란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랑 차를 타고 가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 이름이, 말이든 글이든,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머무른다면 그 또한 살아 있는 생애가 아닐까.
어제 글 올리고 알았다. 100번째 글이란 것을.
나는 별거 아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걸 잘하는 편이다.(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인지 ‘100’이라는 숫자가 괜히 더 반갑고 기분 좋게 다가왔다.
글을 쓰며 무엇인가 알아가는 기쁨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모두 편안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