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생이 한국에 와서 어제와 오늘, 강남에 머물고 있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 LA.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 단속을 지시하면서, 시내 전역에 경찰이 배치되었다.
시민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동생이 사는 지역에도 단속 경찰이 출동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만약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도 저 현장을 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시민권’이나 ‘영주권’ 같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특히 미국처럼 이민자의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신분’이라는 단어는 삶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화두가 된다.
외국인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삶의 터전을 잡으려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이 ‘신분’ 문제다. 비자를 신청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우리나라에 왜 당신이 머물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정부에 서류로 설득해야 한다.
LA에는 신분해결이 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한국인 중에도 불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40대 여성분은 20년 동안 신분 없이 살다가, 아들을 통해 드디어 영주권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한국 갈 수 있어요!” 하며 기뻐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어떤 분은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사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미국에서 영주권 취득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LA에서 일하던 회사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영주권을 스폰해 주겠다는 말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 기회 있을 때 해야 해.”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고, 상황에 따라 3년에서 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영주권을 진행하게 되면 한국에 올 수 없었다. 사실상 긴 시간 동안 한국은 꿈에서조차 멀어지는 땅이 되는 셈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영주권을 진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정말 끊임없이 생각했다.
출근하면서도, 일하면서도, 퇴근하면서도,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영주권을 얻고 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끝에 아무 목적이 없었다. 영주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일터를 카페로 옮긴 후 카페 사장 언니도 나를 위해 카페를 통해 영주권을 받을 순 없는지 알아봤다고 말해주었다. 그땐 내가 이미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후였지만.
그 말에 너무 감사했다.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회사 실장님도 마지막에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말씀해 주셨고, 좋은 향수도 선물해 주셨다. (누군간 복을 걷어찼다고 그러겠지...)
미국에서의 삶이 그립지 않다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 결정이 옳았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때 미국에 계속 있었다면, 순례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에 대해 이렇게 깊이 고민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 브런치 글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끄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믿음은 점점 더 단련되어지는 중 같다.
어느샌가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나의 움직임 속에는 하나님이 동행하신다고 믿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이게 맞나...?, 뭐지....?’
때로는 생각에 지쳐, 차라리 감정도 의지도 없는 로봇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아니라는 걸, 그리고 우리가 각자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서 기도했던 날들, 열심히 일했던 시간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하다.
보내는 이도, 보내시는 이도 결국 그분이시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조차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영이 일으키신 것이다.
위에 20년 동안 불체자였다고 언급했던 이분은 원래 한국에서 기독교를 핍박하시던 분이었는데, 미국에 오신 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면서 믿음을 갖게 되셨다.
본인도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다고,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려고 미국으로 부르셨나 생각해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믿음의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대화였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알고 또 알아도 모른다는 것을.
언제나 미지의 세계가 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장 29 - 31 절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섬세한 돌보심과 전적인 주권을 강조한다.
작은 참새조차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더욱 귀하게 여겨지고 보호받는 존재이다.
나는 왜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해, 신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걸까.
하나님을 빼고는 내 인생이 어느 순간부터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 결국, 내 마음은 서서히 메말라가겠지.
진리를 모르는 척하고는 살 수 없다.
아무리 매일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해도 그건 그저 잠깐일 뿐(물론..저도 사람인지라 좋아해요...),영혼의 갈망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아예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저 무지의 상태에 머물렀다면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앎’이라는 경험을 한 이상, 더는 외면할 수 없지 않을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3
이 말씀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점령당하기 직전, 혼란과 절망의 순간 속에 주어진 말씀이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내게 부르짖으라.”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회복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장차 유다와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고, 의로운 왕, 곧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도 주어졌다.
이 말씀은 과거의 역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이 말씀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붙들 수도 있다. 그건 각자의 믿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나치든, 붙들든. 우리의 반응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단지 위로가 아닌, 하나님이 회복과 소망을 어떻게 이루어가시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께서 깊고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다고 믿는다.
그리고 ‘앎’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세상과의 괴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고난이 따르고,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뇌의 시간이 이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숨을 거두는 날까지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와 당신을 통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강남.
낮이나 밤이나 바쁘다 바빠...
동생이랑 헤어진 후 강남에 온 김에 교보문고에 들러, 몇 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 episode
지하철 안에서 동생이 묻는다. 동생은 코리안 아메리칸이며, 한국말이 서툴다.
“언니, 여긴 설렁탕을 많이 팔아서 선릉역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여기 설렁탕집 많던데, 그래서 이름이 이런 거 아냐?”
“ㅋㅋㅋㅎㅎㅎㅎㅎㅋㅋ하핳ㅎㅎㅋ너무 웃겨”
엉뚱한 동생의 말을 듣고 지하철에서 나의 웃음 버튼이 터지고 말았다.
꾹꾹 참느라 혼났네....
이름이 비슷하긴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