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따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최고 가치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즐거워하는 것 = 기뻐하는 것
기쁘시게 하는 것
비슷한 표현이지만 의미와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
기쁘시게 하는 것 - 나의 행동으로 기쁘게 해 드리는 것
기뻐하는 것 - 내가 직접 기뻐하는 감정인 상태
아이들을 예로 들면,
엄마를 기쁘시게 하는 것
엄마를 기뻐하는 것
한 영상에서 아이들이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청소를 해놓고, 잠에서 깬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엄마, 나 좀 봐주세요! 나 청소했어요. 잘했죠?”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을 울리던지.
그 말속에는 단순한 인정욕구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한 행동으로 엄마가 기뻐했으면 좋겠어.’ 그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 엄마의 미소가 곧 자기 행복이 되는 그 어린 마음이다.
엄마가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현관에서 환하게 반긴다.
집 안 가득 밝아진 분위기, 아이들은 마치 세상이 환해진 것처럼 기뻐하며 엄마를 맞이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다.
엄마가 나가는데 집 분위기가 환해지면... 음.. 문제가있th..
우리는 '기쁘시게 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 양립적인 태도가 두 가지 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쁘시게 하는 것 : 나 --> 타인 / 행동, 순종, 헌신
기뻐하는 것 : 타인 --> 나 / 관계, 사랑, 누림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길 바라며, 나를 기쁘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관계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은, ‘내가 어떻게 해야 기쁨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될 때 시작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 내가 기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더 깊은 사랑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밀당’이니, ‘그렇게 하면 내가 손해 본다’는 사람들은 모르겠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니... 그런 마음으로는 깊은 신뢰나 사랑이 싹트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관계를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도 달라진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작은 행동들이 반복되어 쌓이면, 그 안에 사랑뿐 아니라 믿음과 신뢰도 촘촘히 매듭지어지게 된다.
그런 관계는 단순한 호감이나 편안함을 넘어서, 서로에게 존재만으로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삶으로 이어진다.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도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것이 진정한 기쁨의 삶이며, 마음이 풍요로운 삶이다.
내 안에 기쁨과 사랑이 충만할수록, 손해 보는 듯한 순간조차도 결국은 내 마음을 더욱 넓히고 깊어지게 만든다. 나를 먼저 사랑해 주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출발점이다.
내 안에 사랑이 채워질 때, 그것이 넘쳐흘러 자연스레 타인을 품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듯, 우리도 그런 사랑을 배우고 닮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참된 평안과 기쁨이 우리 삶에 스며든다.
Rejoice alw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