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시끄러운 여자

by 실버레인 SILVERRAIN

나는 미각과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우리 집 음식 간은 주로 내가 맞췄고, 자라서는 자연스럽게 요리를 도맡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네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며 기뻐하셨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건 독일에 살면서부터다. 그곳에서는 한국 음식과 디저트가 많이 그리웠지만, 매일 식당에 갈 수도 없었기에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오롯이 그 시간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온도 조절이나 재료 손질에 따라 맛과 모양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다.


손이 큰 편이라 음식을 넉넉하게 만들어 나누어 주는 걸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엔 주변 사람들에게 디저트를 만들어 나누어 준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시고 “넌 종갓집에 시집가야겠다”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장을 보는 일도 즐거운데 특히 새로운 식재료를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주말마다 마트와 시장을 오가던 기억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외국에서는 손님을 집에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홈파티 문화가 익숙하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오는 포트럭 파티도 흔하고, 집주인이 오롯이 혼자 준비하기도 한다. 그 분위기가 '진짜' 같아서 좋다. 반면 한국은 외식 문화가 더 익숙해, 밥만 먹고 헤어지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요즘 한국의 식문화는 빨리빨리에 효율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많이 바뀐 것 같다. 요리나 뒷정리를 귀찮아하거나,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은 주로 배달을 이용한다.


여담이지만 우리 집엔 ‘배달의 민족’ 앱을 쓰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직접 해 먹거나, 외부 음식을 원하면 나가서 사 온다. 생일선물로 배민 쿠폰을 받은 적이 있어서 한 번 가입했다가, 사용 후 탈퇴했다.




요리영화 중《줄리 앤 줄리아》라는 영화가 있다.

《줄리 앤 줄리아》는 1950년대 줄리아 차일드의 삶과 2000년대 줄리 파월의 삶을 교차 편집 방식으로 번갈아 보여주는 전개를 사용한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성이 요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따뜻한 실화 기반의 이야기다.


프랑스에 거주하게 된 줄리아 차일드는 남편과의 새로운 시작 속에서 요리에 눈을 뜨고,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에 도전하게 된다.


그녀는 열정과 끈기로 요리 기술을 익혀가며, 결국 프랑스 요리를 미국 가정에 소개하는 요리책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줄리아는 기쁨과 열정, 그리고 꾸준함으로 진정한 요리사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메릴스트립의연기가너무사랑스럽다



반면, 2000년대 뉴욕에 사는 줄리 파월은 일상과 직장에 지친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녀는 어느 날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 『프랑스 요리의 기술』을 들고 1년 안에 524개의 레시피를 모두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매일 요리하고 블로그에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줄리는 요리 실력뿐 아니라 삶의 자신감과 성취감을 되찾게 된다.

두 여성은 시대도, 환경도, 성격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요리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무게를 이겨내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이 영화는 요리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실패하고, 지치고, 넘어질지라도 끝까지 해보는 과정 자체가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두 여성의 여정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자신감을 얻고, 삶의 방향을 다시 찾게 된다.

내 꿈 중에 하나는 예쁜 주방을 갖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힘든 사람들, 고아들에게도 음식을 통해 작은 위로를 베풀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음식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힘도 결국은 음식에서 오는 에너지 덕분이다. 그 기본적인 것을 내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다는 건 내가 복을 받은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YfZViW3BnWs

드디어 줄리가 524개의 레시피를 완성하고 축하하는 장면




생각으로 속이 시끄러울 때 요리를 하면 몰두하게 되며 마음이 조용해진다. 하지만 요리를 하면 부엌은 시끄러워진다. 요리를 멈추면 외부는 조용해지지만, 다시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제목을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여자’로 정했다.






이미지 출처: IMDb / 영화 Julie & Julia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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