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한 적이 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도의에 어긋나는 짓을 하긴 했지만 나는 품어주었다. 내가 너무 사랑했다. 그때의 나는 참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했다.
부산남자였다. 처음 접한 사투리가 뭐 그렇게 재밌었는지 만날 때마다 그가 치는 장난에 나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사람 보는 법과 보통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 등 나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 남자는 가끔 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정말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좋아해 줬던 여자는 없을 것 같다. 어린 나이였지만 결혼하고 싶었다.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거리도 거리였을뿐더러 서로의 미래를 위해 헤어졌다. 나는 헤어질 때도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울었다. 너무 슬펐다. 헤어지고 지하철을 탔는데 눈이 너무 부어 선글라스를 썼다.
너무 흐느껴 내 어깨가 들썩들썩했고, 사람들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일날 친구를 만났는데 나를 보고 웃어야 할지 같이 울어줘야 할지 갈팡질팡했다고 한다.
이젠 웃으며 지나갈 수 있다. 당시엔 정말 아팠다. 시간이 거꾸로 솟는 듯했다. 나에겐 '가벼운 연애'는 없다. 그렇게 여기려고 해도 그게 안된다. 이렇게 태어났다.
그 남자는 나 때문에 변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나를 떠나갔으니. 최소한 나와의 처음과 끝엔 달라져 있었다. 아마 죽을 때 즈음 내가 마지막으로 건넨 그 한마디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몽글몽글함, 불안함, 사랑, 편안함, 걱정. 한 번의 연애로 나는 진이 빠져버렸다.
꽤 오래 지났지만 아직 남자를 만나지 않고 있다. 사람을 사랑할 때의 내가 너무 무서워졌다. 나는 굳힌 마음이 열리면 확 열리며 사랑을 하면 헌신한다. 친구는 너 그래서 걱정이라 그런다. 나도 이런 나를 알아서 더 경계한다.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는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그걸 어떻게 알겠냐마는.. 그게 문제지 뭐, 그리고 아직까지 이 이성적 생각의 선을 뛰어넘을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만나게 된다면 나는 존경할 수 있는 남자, 믿고 따를 수 있는 남자를 만날 것 같다. 내 주변사람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래야 나는 사랑을 느낀다.
관계에 있어서 내가 위로 올라가는 포지션일 때는 나에게 리더십이 느껴질 뿐이지 사랑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게 그런 면을 느끼게 해주는 연하와 동갑이 아닌 이상 나는 연상을 만나게 되지 싶다.
미국에서도 몇 번 기회가 있긴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우리 부모님은 9월에 만나 12월에 결혼하며 지금까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잘 살아가고 계신다. 나에겐 우리 부모님이 가장 이상적인 부부이다. 두 분을 보면 신기하다. 커갈수록 더 신기하다. 아니 3개월 만에 결혼하고 이렇게 잘 산다고? 축복이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잡고 걷는 뒷모습을 종종 보는데 너무 사랑스럽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사랑은 두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는 과정이라고.
사랑도 사랑이지만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이것은 나의 꿈이지만 나의 꿈이 아니고 나도 부지런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도 함부로 만날 수가 없는 것 같다. 만나고 싶다가도 이게 내 안에 걸린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20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 노선도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괜한 열정만 부여잡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이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또래 여자들과 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이건 예전부터 스스로 타고났다는 어떤 내적인 힘인데 ‘순수’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심지가 박혀있는 순수이다.
이 안의 것을 잘 이용해야 나는 내가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된다.
사랑은 참,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