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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리, 남편의 자리

1. 사랑에도 리허설이 있나요?

by 무 한소

반복적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미소 가득한 입은 최대한 벌리고, 입꼬리는 손으로 살짝 올려 보이며 웃는 연습을 하고 있다. 넥타이를 다시 고쳐 매고 있는 손놀림이 부자연스럽다. 자세히 확인하니 손끝이 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어깨 근육은 뭉쳐 있으며 뒷모습은 목부터 허리를 지나 발끝까지 뻣뻣하게 굳어 있다. 그래도 체력관리에 노력을 한 영향인지 아직은 꼿꼿해 보인다. 그 자세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씩씩하게 느껴져서 이후 결혼식장에서의 딸의 손을 잡는 것도 식이 끝난 후의 그 허전함도 묘한 위안을 준다. 그의 뒷모습에 실린 허전함은 모두가 이해하려 애쓰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되어 공감할 수는 없다.


그는 내내 고독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 측을 찾아온 하객들을 맞이하여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그들 한 명 한 명 한없이 감사하지만 내면의 부담감이 하객들 수만큼 함께 증가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인 미소 짓기로 입 주변이 경직되어 잠시 근육을 풀어주는 모습도 스친다. 이곳에서도 그는 한결같이 아빠의 자리를 지켜냈다. 결혼 생활에서도 그는 자신의 자리보다는 아빠의 자리로 관계 맺기를 더 적극적으로 해왔었다. 결혼 생활에서 아빠의 자리를 잘 지켰고 그 길을 충분히 누려왔는가? 슈트 입은 그의 뒷 자태를 보니 외로움이 가득하다. 삶에서 그는 자신의 자리를 도대체 어떻게 지켜왔을까? 그의 주변으로 적당한 따뜻함이나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고독하다.



혼주석에 앉아있는 굳어있는 표정의 그와 그것보다 더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부인이 옆자리를 겨우 함께 하고 있다. 냉랭함 대신 사랑의 감정이 그들 사이를 휘감고 있는지 여전한 냉랭함으로 둘 사이의 뻣뻣한 기운이 사랑을 눌러버린 건지 분위기는 결혼식장이라는 장소에서의 주변과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그들을 향해 비친다면 그들만의 융화되지 못한 섬에서의 외로움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그는 무심히 정면을 응시했고 눈동자는 초점이 없다. 지금 옆자리에 앉아있는 부인의 냉랭함을 통하여 과연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지 아니면 현재에 좀 더 집중을 하는지도. 혼주석에서 무심히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뒷모습이 무엇인가 잡히지 않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듯 아련하다. 아련한 고독 한가운데 자리 잡은 흰머리가 쓸쓸함을 돋보이게 한다. 흰 머리카락 한가닥에 집중해 보면 특정 시간 복잡함이 그 한가닥을 만들어 낸 것처럼 얽힌 생각이 뒤엉켜있다. 그런 생각 후엔 머리 전체를 덮고 있는 흰머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삶 전체에서 보이지 않는 인내와 외로움의 시간을 대신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가는 삶의 길은 고행일까?



그가 단상 위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 있다. 다음으로 딸과 함께 발을 맞추고 호흡을 하며 걷고 있다. 그의 표정이 말해 주는 것처럼 결혼이라는 건 복잡하기만 한가, 아니면 그는 지금 결혼식 이외의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걸까? 어쨌든 그의 복잡한 표정만큼이나 마음의 짐으로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가끔 미간을 찡그리기도 한다. 피부색으로는 그의 내면을 알 수 없다. 마치 무거운 짐을 누른 채 딸의 손을 함께 잡고 걷고 있는 것처럼. 마주 보는 단상 끝에서 딸의 손을 다시 잡아줄 사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다. 이제 곧 딸의 손을 놓는 순간 그 손을 사위가 함께 잡아 줄 때의 감정은 과연 어떻게, 어디로 흐르게 될까? 그 쓸쓸한 에너지가 바람으로 비로 공기 속에서 내게 닿았다.


후련함일까? 아니면 미련에 의한 아쉬운 감정일까? 복잡한 그의 감정에 지금의 심정도 포함이 되어 있는 건지, 이후에 혼주석에 다시 앉을 때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식을 지켜보는 가운데 혼주석의 아버지 자리를 지키고는 있으나 그의 이성은 어디론가 떠나 사라져 버렸다. 동공은 기억의 특정한 시간에 머물러 있는 거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눈꺼풀은 한참이 지나 겨우 한 번씩 깜박였다.



아빠의 자리는 남편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그것은 그의 삶에서 결혼을 통한 네트워크가 이루어진 모든 관계와 연결된다. 아빠의 자리 이전에 그에게 주어진 남편의 자리로 그는 뿌듯했고 행복했었다. 의무로 가득 채워진 삶이 만족스러웠는가. 그는 의무로 가득 채워진 삶 가운데서도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인생이 녹아있는 성장과정은 결혼생활에서 감정조절을 평범하게 할 때의 걸림돌이 되곤 했다. 결혼 이후 그의 마음은 아빠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기 이전에 벌써 너덜너덜해졌다. 남편의 자리를 위한 노력의 기회는 상처가 대신 차지했다.


미처 방어벽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들어오는 강한 감정에 대해, 얼마만큼 흡수나 반사로 대처가 가능할까? 그는 강하고 뾰족한 사람이지만 흡수 또한 잘하고 잘 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자리에 있기 전까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빠의 자리에 앉자 그냥 주어진 삶과 아빠의 자리에서 지켜야 하는 삶은 자식들의 시선이 늘어나면서 차이가 생겼다. 자식들의 시선이 생기자 그동안 참아 왔거나 눌러왔던 감정들에서 그것이 해결책이 아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선언했다.


그 누구의 시선이나 입장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자리에서의 감정에 그대로 스며들어 살아간다. 그것이 오늘 혼주석에 앉아있는 그의 감정을 건드렸는지 주변을 혼란스럽고 복잡해 보인다.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보이는 그의 이성은 가끔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때때로 정도 이상으로 차분해 보이며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는 관계에서 지나친 거리를 두고 있다. 그가 옳다고 판단한 먼발치의 사랑은 과연 지금의 모습처럼, 객관적으로 타자의 자리에 서있는 걸까.



결혼식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또 다른 설렘으로 살펴볼 기록물들을 남기느라 카메라 셔터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덩달아 후레시도 연신 터진다. 그 또한 아빠의 자리에서 가장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기록물들을 남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다. 아빠의 자리, 남편의 자리에서 방향성을 잃어버린 그의 위치는 안타깝게도 외로움만이 가득한 고독이 덮고 있다. 그의 고독을 그 누구도 달래주거나 위로해 줄 수는 없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그는 남아있는 쓸쓸함이 둘러싸고 있는 고독한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다독인다. 그에게 아빠의 자리에서 사랑은 의무와 책임으로 대체되었다. 결혼 생활에서의 학습으로 그는 깨닫는다. 고독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없다. 오늘도 그는 고독을 즐기며 주변에 깔린 쓸쓸함을 벗 삼아 청소와 장식, 정리와 꾸밈을 번갈아가며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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