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해도 되는 걸까
요즘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
"말을 해도 되는 세상일까."
질문이 모순인 걸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말을 하는 대신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워 나가는 것 같다. 아이들은 점점 ‘묻지 않는 법’을 터득해 간다.
물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이다.
그래서일까. 교실 안에서조차 질문은 사라지고, 대신 아이들 표정뿐만 아니라 에너지에도 이미 ‘포기’가 자리 잡은 듯 느껴진다.
나는 매일 그 풍경을 본다.
손을 들기보다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 대답을 고민하기보다 눈치를 보는 아이들. 그들에게 세상은 이미 ‘정답이 정해진 문제집’ 안의 세상처럼 느껴진다.
“선생님, 저도 알아요. 근데요, 아무리 해도 변하는 게 없어요.” 성적이 좀 오른다고 대부분 모든 면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면 스트레스 또한 점점 느는 것은 아닐까.
변하는 게 없다는 아이의 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말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기록이자 정직한 보고서다. 공부보다 더 큰 벽이 아이들 앞에 있었다.
기회, 경쟁, 환경, 시선, 그리고 불평등.
우리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노력하면 된다. 노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 안 하니?”
하지만, 정작 그 문장 뒤에 숨겨진 조건들을,
어른들은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적응해 나가는 법, 그냥 그곳에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노력의 결과가 언제나 공평하지 않다는 걸. 그래서 점점 말하지 않고, 감추고, 웃지 않는다.
공부를 왜 꼭 해야 하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사는 방법은 그냥 돈이 많으면 된다고. 돈이 많으면 대부분은 누리고 살 수 있는 게 아닌지, 그쪽으로 머리를 쓰고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자주 묻곤 한다.
나는 수업이 끝난 교실 벽에서, 책상에서 가끔 아이들의 낙서를 본다. 수식 옆에 적힌 ‘지겨워’, ‘힘들다’, ‘괜찮은 척’. 그 낙서는 반항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일기였다. 아이들의 진심이었다.
또한, 아이들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우리가 가르치는 건 지식이 아니라 체념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묻는 대신, 내가... 어른들이 먼저 대답해야 할 때다.
“우리는 왜 여전히, 아이들이 편히 말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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