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미지수
아이들의 감정은 공식 밖에 있다.
지난 시간, 나는 수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교실에,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다시 깨달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풀렸지만 마음은 풀리지 않은 얼굴, 정답은 맞추었지만 표정은 조금 늦게 따라온 아이들. 수업이 끝난 교실에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만 조용히 남아 있었다. 그 감정을 천천히 쫓는다.
“중3의 감정은 늘 예상 밖에서 움직인다.”
“논리와 감정은 전혀 다른 축에서 흔들린다.”
“공식처럼 가르칠 수 없고, 정답처럼 말해줄 수도 없다.”
“오히려 정답을 아는 순간보다,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견디는 시간이 더 길다.”
“아이들의 표정은 늘 나에게 또 다른 ‘미지수’를 던진다.”
매일 긴장감 넘치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수학 문제는 풀지만, 마음은 늘 그 너머에 있다. 그래서인지, 중3을 가르치는 일은 언제나 ‘해석되지 않는 감정’을 함께 견디는 일에 가깝게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 다짐하듯 조용히 말해본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려고 한다.
“해답이 없어도 괜찮아. 함께 버티는 마음이면 된단다.”
수업이 끝난 교실엔 묘한 정적만 남았다. 문제를 풀며 분주하던 움직임 이상의 숨결은 사라지고, 바닥에 떨어진 연필 한 자루만이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지난 시간 나는 수식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교실 안에, 아이들과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했다. 물론, 오늘도 그 연속이었다.
문제는 겨우 풀었는데 마음은 풀지 못한 얼굴, 정답은 맞추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답답해 보이는 아이들.
중3의 감정은 언제나 예상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혹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정답이 있는 수학과는 달리 이 아이들의 마음 앞에서 나는 쓸모없는 수학에 대해서, 자꾸만 아무 공식도 쓸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교실 뒤쪽 창가에 앉았던 아이가 오늘은 유난히 목소리가 작았다. 별일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제를 풀며 한참 동안 연필을 굴리던 손끝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눈동자에서 찾으려던 길이 사라졌다.
또 다른 아이는 계산 과정은 전혀 엉뚱한데 정답을 찾았다. 과정이 틀린 풀이를 보며 웃는 그 얼굴에,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기운이 스쳤다. ‘맞혔으면 된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얼굴에 왠지 모를 고난과 피로가 묻어 있었다.
아이들은 종종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을 드러낸다. 작은 한숨, 잠깐의 침묵,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속도까지.
나는 그들의 감정을 풀어주기보다 함께 버티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점점 더 배워간다. 감정에는 정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답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중3의 마음을 푼다는 것은 수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답보다 더 예민하며, 풀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그래서일까. 가르치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해답’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과정, 여정을 견디는 마음’을 건네는 일이 되었다.
오늘도 교실을 나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답이 없어도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배우는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