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알고 있는데요."

불확실성을 가장한 회피

by 뉴욕 산재변호사

TV에서 보는 인사 청문회 뿐만 아니라, 공청회의 증인 심문에서, 혹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곧잘 사용되는 표현 "~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한국어 표현은 단순한 겸손이나 조심성을 넘어, 때로는 정보의 불확실성을 가장한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느껴져 나는 이 표현이 많이 불편하다. "My understanding is..."와 같은 영어 표현이 주는 미묘한 거리감과는 달리, 우리말 '알고 있다'는 어딘가 모르게 미온적이고, 심지어 무책임하기까지 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 표현이 과연 언제부터 우리 언어생활에 이토록 만연하게 스며들었으며, 왜 특정한 상황에서 이토록 강한 불신과 반감을 불러일으키는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표현이 한국어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를 전달할 때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문법적 구조의 일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오용과 남용에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 명확한 사실 관계가 밝혀져야 할 상황에서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듣는 이에게 정보의 부재는 물론, 발화자의 의지 부족까지 느끼게 한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나약한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


불확실성의 가면: 무책임한 태도를 드러내다

이 표현이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책임감의 희석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가며, 그 정보의 진위와 신뢰성을 판단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데 특정 위치나 역할을 가진 사람이 "알고 있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면, 듣는 사람은 그 정보가 검증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허위일 가능성까지 의심하게 된다. 전문가라면 확신을 가지고 말해야 하고, 리더라면 명확한 지시를 내려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알고 있다"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요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담당자가 "현재까지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안심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정확히 알고 있는 건가?',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건가?'와 같은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이는 결국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언어의 퇴행: 모호함이 지배하는 사회

'알고 있다'는 표현의 만연은 우리 사회가 명확하고 확신에 찬 소통보다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소통을 선호하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에 대해 섣불리 단언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비판을 피하려는 심리, 혹은 자신의 지식이나 판단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이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만드는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 습관은 결국 소통의 질을 떨어뜨리고, 불신을 조장하며, 나아가 책임감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는 표현이 주는 불필요한 모호함에서 벗어나, 더욱 명확하고 책임감 있는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되, 불확실한 정보에 대해서는 그 출처와 한계를 명확히 밝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언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알고 있다'는 표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더욱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소통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불확실성의 가면 뒤에 숨어 무책임한 언어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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