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실망 사이의 거리
사랑은 종종 맹목적인 호기심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의 표현이다. 그의 어린 시절 사진부터, 습관, 약점, 심지어는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까지, 모든 조각을 맞춰 온전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것을 진정한 사랑의 증표라 여기며,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을 이상적인 관계로 생각한다. 그러나 김창옥 강사의 말처럼, "상대방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만 알게 해주세요"라는 한 애청자의 사연은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파헤쳤던 모든 진실이 결국은 우리를 가장 깊은 상처로 이끌 수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이 '거리'의 문제는 관계의 다양한 면에서 나타난다. 김용옥 교수가 아침에 사모님과 용변을 마주 보고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일화는 극단적인 친밀감의 예시로 들려오지만, 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은 용변을 보는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며, 이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자 스스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본능적인 행위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친밀함의 표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민낯'이 될 수 있다. 결국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채근담에도 이와 비슷한 통찰을 담은 구절이 있다. "물에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사람에게 너무 자세히 알면 정이 없다(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 이처럼 물이 너무 맑아 바닥까지 훤히 보이면 물고기가 숨을 곳이 없어 살지 못하듯,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고 하면 오히려 마음 붙일 곳이 없어져 관계가 깊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흔히 ‘솔까’라고 줄여 말하는 이 표현은, 자신의 말에 무게와 진실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솔직함은 타이밍과 맥락을 가리는 지혜를 포함한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 상대방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민낯’을 끄집어내는 행위는 솔직함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로가 될 수 있다. 관계의 섬세한 균형을 깨뜨리면서까지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는 태도는, 어쩌면 상대의 온전한 모습이 아닌 자신이 보고 싶은 '진실'만을 보려는 과도한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왜 타인의 민낯을 보며 실망하는가? 연예인들의 쌩얼과 화장한 얼굴, 성형 전후의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화려하게 꾸며진 그들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 완벽한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한 맨 얼굴의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속임수를 당한 것처럼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그 사람 자체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상적인 모습’을 사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환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그 모습에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타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민낯’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완벽하지 못한 내 모습, 부족하고 나약한 내면을 감추고 싶어 한다. 이렇듯 우리는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어느 정도의 ‘거리’와 ‘가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알면 다쳐'라는 말은 단순히 호기심을 경고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섬세한 균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한 지혜를 담고 있다. 상대방의 화장한 얼굴을, 수술 후 완성된 모습을 보며 그 멋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사함으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를 지속시키는 성숙한 사랑의 방식일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보여주기 싫어하는 부분을 존중하고, 드러내 보인 아름다운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때로는 조금은 모르는 척, 조금은 눈감아주는 것이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서로의 환상을 지켜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랑은 모든 진실을 파헤치는 용기보다, 아름다운 거짓을 품어주는 지혜로운 태도에서 더욱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