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까 정말 힘들고 지칠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징징대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처음에 눈물은 잠긴 수도꼭지처럼 툭 건드리면 쏟아져 나오곤 했다. 이때만 해도 억지웃음으로 힘들지 않은 척을 했지만, 혼자가 되고나서부터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너무나 고독했다. 사실 가장 힘든 시간들의 기억은 희미하다. 어렴풋이 그랬었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원래 내 친구였던 고독을 잊은 채로 살다가 갑자기 다시 마주하니 정말 어색한 시간만 흘렀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날 더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정말로 그 시간들은 길었다. 남들에게는 멋진 업적 하나 남길 정도의 시간이었으니까.
징징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그때의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싶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쪽팔린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죽을 때가 되어서야 조금씩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그것들을 용서하지 못했다.
삶이 정말로 잔인한 이유는 기쁜 일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불행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한꺼번에 닥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용서할 때 내 전부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때의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으니까. 나는 지금의 나를 70퍼센트 정도 사랑하는 것 같다.
가슴 깊이 묻어둔 것들을. 삶의 찌꺼기들을. 오물과 거름들을. 굳이 보잘것없는 악몽을 파헤쳐서 뿌리를 손상시키진 않겠다. 죽고 나서 잿더미를 바람에 날리면 더 이상 대물림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가슴 깊숙이 묻은 그런 비극적이고 쪽팔린 이야기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