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독 다른 선진국과 달리 주연들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일등만을 기억하는 세상 아마도 그게 우리나라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보이는 비인간적인 현실, 나는 상상 놀이를 했다. 거기서 나는 주연이고 싶었다. 학교 강당에서 상을 받고, 공연을 하고, 관심을 받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저 무대 위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학교와는 안 맞았다.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몸은 아프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선생들 말은 듣기가 싫었다. 다들 삶에 찌들어가지고는..
주인공의 나라, 한 사람만 빼고 모두가 실패자가 되는 나라에서 일등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체념한다. 엘리트코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권력자 한 사람만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부하가 된다. 자아는 없다. 자아를 가질수록 불리하다. 왜냐하면 일등은 성과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구축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고 그것에 대항하려는 자를 말살시킨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그들의 질서는 결국 사회와 제도 장치에 의해 파괴되고 이인자가 다시 일인자가 된다.
세계를 물려받은 이인자는 자아가 이미 망가져있다. 그 사람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엔 너무 늙어버렸다. 닳고 닳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일인자가 만들어놓은 질서를 따른다. 그리고 이것은 반복된다. 은퇴한 일인자는 잃어버린 권력을 원망하며 외로이 죽어간다.
가끔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한 세계가 다시 나타날 동안 수십만의 사람들은 그저 잊혀 갔다. 지도자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한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지, 새로운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가져갈지. 대부분은 후자가 된다. 왜냐하면 결국 인생이란 자기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갖지 못한 자기 세계가 의미가 있는가? 맞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 때문에 기존 질서는 파괴된다. 자기 세계를 갖지 못한 삶이란 의미가 없으니까.. 기존 질서에서 들러리인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누구나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
결국에는 자기 세계를 아무도 갖지 못하는 나라,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가와 관료제가 억지로 만들어낸 질서의 억압과 세뇌로 이루어진 것이 현재 우리나라이다. 주관성이 성립하지 못하는 나라, 거기에 희망과 행복은 없다. 조연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극의 조연도 자기 세계에서는 주인공이기 마련이다. 영원한 질서란 없다. 비록 늦었을지언정, 자기 세계를 갖지 못한 사람은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