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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윤 Aug 12. 2024

꿈을 먹는 사람들(2)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삶을 포기한 엄마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전업 주부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여자로서 꿈을 포기했거나 박탈당했다. 조금 속물근성을 갖고 있는 여자들은 남자를 고르면서 돈을 택한다. 사회적 관습에 의해 그랬던가 혹은 자신이 원해서 그런 삶을 살거나 어찌 되었건 간에 그들도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은 자식에게 넘어간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길 바란다. 대게 대학에 집착하는 부모들이 그런 족속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 전후로, 대학은 일종의 신화를 만든다. 대학 서열은 하나의 계급이 되고 사다리는 계급 안에서만 작동한다. 이들은 거기서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자식이 대학을 잘 가기를 바란다. 명문대에 합격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식에게 집착한다. 이들은 사랑을 주지 않는다.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대학 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어도 또 다른 상처가 생겨난다. 아이들은 사랑받고 싶었지만 대학에 합격해도 상처는 그대로다. 지친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난다. 이때 부모는 깨닫게 된다. 자식과 나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꿈이라는 환상이 깨진다. 자식이 명문대에 가더라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현실은 잔인하다. 꿈을 이미 포기한 시점에서 삶은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속물근성이 있는 부모들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들은 보통 중산층~상류층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식이 자신의 계급을 유지시키길 바란다. 어떻게든 안정적이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택하도록 노력한다. 예를 들자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자신의 영속성을 위한 것에 해당한다. 이런 부모들은 사랑대신 돈과 허영을 택하였다. 특히 한쪽이 다른 배우자보다 사회적인 계급이 뒤떨어지는 경우에 심하다. 이러한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이들의 꿈은 자신의 가치관, 돈, 계급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하기를 원한다. 위에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식과 부모는 서로 다른 존재이다. 자식이 독립할 때 즈음이 되면 자신의 꿈과 아들의 성공은 별로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상처는 되풀이된다. 상처는 점점 더 불어난다. 자신의 상처는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자신의 상처는 자신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것은 다들 그게 두려워서 진실을 알고 있는데도 자꾸만 외면한다.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후가 돼서야 어떻게든 수습하려 한다. 이미 그때는 많이 늦었다. 곪은 상처란 쉽게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아이들 너무나 불쌍하다. 청춘을 즐기지도 못하고, 겨우겨우 버티면서 안정적인 직업이란 단지 집착의 결과물일 뿐 행복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순수했던 아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타협한다. 그렇게 부모처럼 속이 썩어간다. 집착이 되는 환상은 다시 되풀이된다. 그렇게 아이는 보통의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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