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무원 Feb 15. 2023

불쾌하고 화가 나거든요 지금

[교행일기#23]  행정실로 찾아온 민원인

"저를 무시했다는 게 저는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나거든요 지금."


욕을 하진 않으나 말에 날이 서있습니다. 우아하고 고상한 척하지만 이미 첫마디부터 화가 나있구요. 예의 있는 척 이야기해보려 하지만 천박함이 묻어 있습니다.


"어제 저한테 보조 인력 뽑을 생각 없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한시간 뒤에 공고가 올라오더라고요. 저도 요즘 학교들 다 내정자 있는거 알고 이미 뽑을 사람 다 정해논거 아는데, 그래도 굉장히 불쾌하더라고요. 저를 무시하고 저한테는 안뽑는다 해놓고선 공고 바로 올리고. 사람을 무시했다는게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나거든요 지금."


음, 어쩌라는걸까요. 내정자가 있었나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있던지 말던지 사실 행정실에서 뽑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 분은 행정실에 와서 시비를 거시는 것일까요? 시작은 단순히 그전날 받은 전화 한통이었습니다. 보조인력을 다른 학교는 다 뽑던데 왜 여기는 안뽑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쎄요.. 지금은 안뽑으시는 거 같은데요." "보조인력 없어요?" "네 지금은 없습니다." 라고 말씀 드린 뒤 끊은 것 뿐이었죠.


당연합니다. 제가 전화를 받을 시점에는 안뽑고 있었고, 교무실쪽에서 보조인력을 뽑던지 말던지 행정실 일개 주무관에게 그런 사실을 꼬박꼬박 보고해주지도 않겠지요.


저는 내정자가 있다고 말도 안했는데 혼자 망상 속에서 내정되어있는 사람이 있으니 본인에게 말을 일부러 틀리게 전달한 것이라고 생각중이었던 것입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민원인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다음 소희' 영화를 보면서 더욱 더 느꼈습니다. 죄송할 일이 아닌데 죄송할 필요가 없고, 허리 숙일 일 아닌데 허리를 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청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내가 잘못한 일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이 사람이 이렇게 들쑤시고 갔는데 아무리 여기에 지원서를 낸다한들 사람들이 좋게 봐줄리가 만무합니다. 하나만 알고 열은 모르는 사람인 겁니다.


학교뿐만이 아니라, 행정복지센터도 콜센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민원인분들, 가서 소리 지르기 전에, 욕하기 전에, 희롱하기 전에, 생각이라는 것을 해봅시다. 내가 이 사람들이랑 앞으로 평생 다시는 스쳐지나갈 일이 없을까? 내가 화를 내고 있는 상대방이 내 자식뻘은 아닐지, 내 아랫사람이라 생각해서 무시했더니 어느 날 내 회사 상사가 되어 나타나지는 않을까? 이런 판단을 먼저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전 04화 교행직 공무원이 돈 더 버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