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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망태 Mar 27. 2024

이렇게까지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도착점에 관하여

  살면서 참 많은 출발들을 맞곤 한다. 제대로 된 기억이라는 게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매년 3월에 항상 새로운 학년을 맞았다. 새 학년, 새 학기, 새 교실과 새 담임 선생님, 새 친구들, 그리고 새 교과서와 새 공책 연필 같은 것들. 그래서 고등교육까지 마치고 난 뒤 맞은 첫 몇 해 3월은 학교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꽤 많이 했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대략 12년 간의 3월을 그런 식으로 맞아왔으니 당연했던 일일 것이다. 


  그때는 출발점만큼 도착점도 분명했다. 매 학년 종업식이 있었고 그다음 학년 역시 그랬으니까. 도착점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과 연결되어 있었다.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이건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하물며 다니던 신문사를 퇴사했을 때에도 일은 곧바로 프리랜서 기자의 삶으로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욱 도착 없이 계속해서 출발만을 맞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나는 나의 음주의 끝을, 마침내 도착한 그 지점을 거창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제도 오늘도 꼭 붙은 눈꺼풀을 떼어내고 몸을 일으켜야만 하는 하루의 출발은 어렵기만 하고 그렇게 매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했던 여러 가지 일들, 인생의 많고 많은 출발점에 비해 어딘가에 제대로 된 도착을 해본 경험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저 기간이 끝나서, 시간이 다 돼서, 적당한 정도를 달성해서, 계약 기간이 끝나서 떠밀리듯 피니시 라인에 닿았던 건 아닐까. 내 결심으로 내 의지로 어딘가에, 어떤 시점에 도착해 본 경험이, 그래서 오롯이 끝이라고 느꼈던 일이 얼마나 되었나. 그렇게까지 떠올려보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음주를 끝냈다. 금주의 삶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몇 개월의 시간이 있었고, 결심과 실행은 어느 날 갑자기였다. 음주의 끝은 다른 어떤 것의 시작과도 맞닿아있지 않다. 술을 사랑했고 그걸 마시는 시간을 즐겨왔기에 그만한 것을 대체할만한 어떤 것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언제나 즐겁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헛소리 같은 말들도 여전하다. 다만 술을 마시지 않을 뿐이다. 많은 것이 그대로인 일상 속에 금주에 도착한 내가 있다. 그다지 거창하지 않지만 알고 보면 엄청나게 거창한 것, 금주는 내게 그런 시간과 경험들을 가져다주었다.


  도착점에 오고 나니 뒤를 돌아보는 일들이 더욱 경쾌하다. 키보드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쓰면서 늘 숨 쉬듯 해온 글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나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내가 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가를 깨닫는다. 많이 좋아했고 아꼈고 절절하게 사랑했다.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걸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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