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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니 Aug 31. 2022

무당개구리

이해와 오해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적막강산 같은 산골이 깊은 정적 속에 빠졌다. 온종일 남의 애간장을 녹이던 뻐꾸기마저 오늘은 어딜 갔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지금 이 산골짝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오직 비안개뿐이다. 산꼭대기에서 형체도 없이 뭉글뭉글 피어나더니 어느 틈엔가 골짜기 전체를 냉큼 집어삼키고 있는. 


  지붕을 가볍게 두드려대던 빗소리도 오후가 되자 그만 지쳐 버렸는지 경쾌함을 잃어버렸다. 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활기가 되살아날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듣고 있는 사람마저 축 늘어질 판이다. 번거롭긴 하지만 우산을 찾아들고는 밖으로 나선다. 


  축축한 공기 속에 촘촘히 배긴 초록 내음이 먼저 달려든다. 마치 아직 덜 익은 풋사과를 한입 베어 문 것만 같다.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몇 번 거듭하자 그제야 귀가 열린다. 우산 위를 통통거리며 튀는 빗방울 소리부터 시작해서 과수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과나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일시에 몰려든다. 귀가 간지럽다.  


  막상 우산까지 쓰고 문밖을 나섰지만 달리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하릴없이 작업장 앞마당을 서성거리는데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마침 잘됐다 싶어 소리를 따라가 본다. 생뚱맞게도 밭고랑을 따라 깔아놓은 비닐에서 나는 소리다. 


  '자르르르, 자르르르...' 


  마치 수십 명의 작은북 주자들이 줄을 지어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작고 낮게, 트레몰로로, 끊어질 듯 이어지며, 쉼 없이... 조금 단조로운 감은 있지만 흔쾌히 들어주마 작정하고 밭두렁으로 다가선다. 날아갈 듯 경쾌한 소리들이 밭고랑을 타고 흘러넘친다. 이 정도라면 입석이라도 충분히 감수하고 들어줄 만하다. 


  여긴 또 뭘 심었길래 아직 싹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콩 아니면 옥수수? 뭐든 비닐까지 덮어가며 키워서 수지를 맞출 만한 작물이 따로 없을 텐데... 괜한 호기심에 구멍 하나를 파서 확인해 볼 요량으로 허리를 굽히는데 나보다 먼저 와 있던 손님이 화들짝 놀라 펄쩍 뛴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검은 비닐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커다란 눈알을 굴리고 있는 놈은 무당개구리였다. 녀석도 모처럼 내린 비에 신이 나 마실을 나왔다가 밭고랑 교향곡에 취해 여기에 주저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하도 오랜만에 보는 무당개구리라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걸음을 떼는데 녀석은 위협을 느꼈는지 순식간에 몸을 홀랑 뒤집는다. 검붉은 배를 하늘을 향해 드러낸 채 사지를 꼬고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무당개구리다. 


  아마 스스로 괜찮다고 느낄 때까지는 저 모양 그대로 몸을 풀지 않을 것이다. 다 살자고 하는 짓일 테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안쓰럽다. 오해라고, 해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으니 그만 몸을 풀라고 하고 싶지만 무당개구리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 없으니 다 부질없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는 사라져 주는 게 도리지 싶다. 그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물리의 세계에서라면 작용과 반작용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을 테지만 사람의 세계에서는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나를 예상하고 한 일이 둘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둘을 기대하고 한 일이 도리어 하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나마 하나라도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아예 반응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살이에도 어떤 공식 같은 게 있다면 그것도 별 재미는 없을 것 같긴 하다. 때때로 하나가 셋이 되는 기적 같은 것도 못 보게 될 테니까. 그렇더라도 이렇게 입맛이 쓰고,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싫다. 애써 강한 체, 아무렇지도 않은 체 허풍을 떨어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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