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책을 만나다
사실 김 대표와 실이라는 검은 개가 하는 말이 다 사실인지 하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현실세계에 적응을 하지 못 하고 겉도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처럼 그림자 “하늘”과 인간 “늘”의 영혼을 빼앗고 그 몸을 차지하고 태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늘에게 현실 세계에서 삶은 자신이 속하지 않는 세상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미세먼지처럼 하늘에 부유하고 있는, 마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자신만 어딘가 멀리 동떨어진 기분.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은 마치 이에 낀 이물질처럼 대했고,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감시당하며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현실세계의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는 인간"늘"에게는 서로 맞지 않는 공을 쳐내는 탁구와 같았다.
"오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무슨 일 있어요?"/
네? 저 지금 가장 기분 좋은 표정인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희 회사에 직원인가요?"/
팀장님 저.. 당신과 3년 동안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김 대표가 자신에게 원래 당신은 현실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그림자 세상에서 생활해야 하는 그림자였다는 말이 그동안 이곳에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던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같았다. 늘 자신의 몸속에 뚫린 구멍으로 인해 발생하는 그 공허함이 잃어버린 자신의 인간 영혼 때문이라는 그들의 말에 심지어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림자로만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내가 저주받은 게 아니었어..”
계속 혼잣말만을 중얼거리는 하늘에게 김 대표는 어깨를 다독이며 걸어왔다.
"하늘 씨 우리 내일부터는 할 일이 많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김 하늘"씨의 집을 안내해 드릴게요. 실이 너는 여기 남아서 인수인계서를 만들어둬. 네가 하는 일 하나도 빼놓지 말고 말이야 내일이면 너를 대신할 개가 바로 네 일을 할 수 있게 말이야!"
"그.. 그건... 김.. 김.. 대표.."
‘쉿’이라는 자세를 지어 보이며 이미 끝난이야기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실이에게 표정으로 보이며 김 대표와 하늘은 입주자 대표 관리실을 나왔다.
사무실 밖에 나와서 다시 본 그림자의 세상은 현재의 시간을 잃어버린 듯 낮처럼 밝았다. 가게 앞에 서 있는 그림자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무언가를 사거나 먹거나 마치 한낮에 인간에게 당한 스트레스를 푸는 듯한 모습에 하늘은 그들도 인간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다만 하나 다른 점은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의 대답과 상관없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들에서 그들이 얼마나 대화를 좋아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과 과묵한 자신과 원래 같은 운명이었다니 라는 생각에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때 김 대표가 하늘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하늘 씨 집까지 가는데 심심한데 재밌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혹시 그 말 알아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 맞아요 그런데 그 뒤에 말은 아나요?"
"뒤에.. 무슨 말이 있어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그림자는 죽어서 그림자라는 글자를 남긴다. 는 말이 있어요 여기 그림자 세상에서는."
"아니 아까 현실세계에서가 아닌 그림자 세상에는 죽음도 탄생도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맞아요 죽음은 없지만 사라지긴 하잖아요 주인의 생명이 다하면... 그 기억들이 말이죠"
"아 그 거울을 통과하면 사라지는 기억들 말이에요?"
"맞아요 그럼 하늘 씨가 예를 들면 엄청 부지런한 사람의 그림자였어요. 정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쉼 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는 인간이 주인이었어요. 보통 그림자들에겐 "어릴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릴 때 가장 혈기 왕성하게 움직이고 다녀서 그런 말이 생겼죠. 그런데 자신의 그림자 주인은 정말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만 한 거예요. 심지어 쉬는 방법도 몰랐어요 쉬질 못 했으니 말이에요. “
"네.. 그래서요?"
"그런데 갑자기 그 그림자의 주인이 심장마비로 죽은 거예요. 그리고 그때는 그림자는 그림자 세상에서 부동산 재벌로 돈 밖에 없는 최고의 부자가 된 순간에 말이에요. 그럼... 하늘 씨는 어떻게 할 거 같아요? “
“말도 안 되게 억울할 것 같아요.”
"맞아요. 너무 아깝죠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걸 놓고 심지어 기억도 잃고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니... 그리고 다음 만날 짝과 그렇게 모을 확신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림자들은 자신의 돈을 책 속에 숨겨 놓기로 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쓰고 그 책 속 문장들 속에 빙고처럼 그림자라는 이어진 단어 안에 그 돈들을 숨겨두었죠. 다시 기억이 없어진 자신이 다시 그 돈을 찾을 수 있게 말이에요."
"그렇지만 초기화된 그림자들이 그걸 기억할 리가..."
"없죠.. 그냥 그들은 책에 미래에 나를 위한 작은 희망이라는 그 두 글자를 남기는 거예요. 어쩌면 아니면 우연히 자신이 그 돈을 찾길 바라며 말이에요. 아마도 그런 희망들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림자들은 점점 그런 일을 생각을 하게 되고 실행에 옮기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숨기는 곳은 그림자들이 절대 안 하는 행동 속에 숨겨두어야 했겠죠. 내가 힘들게 모은 돈을 다른 그림자가 가져간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잖아요. 문제는 남이 안 하는 건 나도 안 해서 문제지만…. 또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한 번도 그 돈을 찾은 그림자는 없었어요. 저 또한 그 사실을 알지만 저는 관리자일 뿐이라 찾을 자격도 없고 돈도 부족하지 않아서.."
"그럼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지?"
김 대표는 의아해하는 하늘을 보고 하늘이 살 곳이 여기라고 소개해 주었다. 네모난 격자무늬 모양이 있는 하얀 건물에 하늘그림자 도서관이라는 문구가 검은색 글씨로 적혀 있었다.
"어쩌면 이곳이 당신의 보물섬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하하하 시간 날 때 한번 찾아보세요 책 속에 그림자라는 그 글자를 말이에요 당신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지도.. 이쪽으로”
김 대표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마다 가득 차 있었고 책장 안에 책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정확히 하늘이 전화로 묘사한 그 자체를 여기에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하늘은 이 건물에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깊게 숨을 마셔봤는데 김대표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 자신의 코 끝에 닿았던 향기가 스쳤다. 향긋한 풀로럴 시트러스 향과 진한 체리색 오크향이 묻어있는 종이책 냄새가 공간 가득히 묻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음 짓게 하는 향기로 인해 도서관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고 있었는데 김대표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환상에 빠져 계신 듯해서 말 걸기가 죄송하지만 내일부터 하늘 씨가 할 일을 말씀드려야 해서 말이죠. 하늘 씨는 오전에는 이곳에서 도서관 사서 역할을 저녁에는 돌아오지 않은 그림자들을 실이와 함께 찾게 되실 거예요"
"저... 저는 쉬는 시간이 없나요?"
"하늘 씨에게는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쉬는 시간이 아닐까요? 말이 도서관 사서지... 책을 보는 그림자는 아마 없을 거예요. 물론 당신의 어머니 그림자는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는 종종 왔지만 말이에요. 그러다가 도서관 사서로 아르바이트도 했었죠”
"어머니 가요?”
"네… 그게 제 실수였을 수도…아! 그리고 하나 더! 가끔 제가 여기 와서 뭐라고 혼잣말 구시렁거려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이제 조 사서도 없어서.. 아니.. 아니요 저도 나름 스트레스 풀 곳 한 곳은 있어야 하니까요..."
하늘은 아까 실이가 보여준 영상 속 김 대표가 일 못하는 강아지를 흉보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네 저는 상관없을 것 같네요"
"네 그럼 내일 봅시다 바이 차오 안녕."
김 대표는 문을 닫고 나갔다. 공허한 도서관의 불빛이 마치 주인을 환영한다는 듯이 반짝이고 새로운 책들은 본인의 자리를 찾아 책장에 꽂히고 있었다. 하늘은 이제부터 자신이 이곳에 책임자라는 생각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무언가를 책임졌던 적이 있었는가? 내 몸뚱이 하나도 책임지기도 힘들었는데... 하지만 어쩌면 이곳은 왠지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아. 도서관이니까..'
그리고 좀 전에 들은 김 대표의 설명으로 마치 자신이 보물섬에 있는 도서관에 보석들이 잔뜩 꽂혀 있는 곳을 담당하는 것 만 같았다. 자신 앞에 놓인 책들을 손으로 쓰윽 훑어보았다.
그림자의 개미! 따상하다
그림자의 너! Never Stop
그림자의 꿀 피부 뷰티 살롱
그림자의 부자 병법
Shadow‘s K-pop dance!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책 이름에 몇 장을 넘겨보다가 오늘 하루가 너무 피곤했는지 하늘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하늘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이 떨어지며 스르륵 펼쳐졌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하늘이 그림자 세상에 오기 위해 물속에 뛰어 들어왔을 때 들렸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아 하늘아 너는 그림자 인생을 살면 안 돼!
너만은 네가 주인이 되는 거야 엄마는 그거면.. 그거면 돼
아니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야 무슨 짓을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