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운명의 실타래 풀기
"깔깔깔깔 아이 이름이 하늘이라서 아픈 게 아닐까요?
늘 건강하라는 의미로 "늘"이란 이름은 어떠세요? 깔깔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를 쳐다보는 여자에게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
고개를 돌린 순간 그 하얀 가운의 남자가 사라지고 마치 여자는 꿈을 꾼 것처럼 공허한 눈빛으로 그 남자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쳐다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컴컴한 복도에서 혼자 서 있는 걸 깨달은 여자가 조용히 한마디를 읊조린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아이를 살릴 수가 있다면... 그때 이 아이 이름을 "늘"로 할게요 “
갑자기 비상벨 같은 소리가 복도에 가득 울리더니 신생아 중환자실 창문에 검은색 커튼이 쳐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환자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온다. 밖에 서 있던 창백한 표정의 여자는 무슨 일인지 당황해서 울부짖는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
그 소리에 중환자실에서 갑자기 문 밖으로 나온 간호사의 얼굴에 당황함이 가득 묻어있고 눈은 밖에 서 있던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런 간호사를 보며 불안감에 휩싸인 여자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겠다며 난동을 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두 팔을 꽉 쥐며 간호사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 아.. 니예요... 산모님, 산모님의 아이 하늘이가 아니고 다른 아이가 갑자기 경기를 해서 조... 조.. 조치 중입니다."
"우리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 하늘이는 잘 있는 거죠..?"
"네.. 산모님 여기서 서 있지 마시고 저희가 산모님을 부를 때 오세요. 안정을 취하셔야 할 분이 여기 서 계시면 안 됩니다 제가 다시 안내해 드릴게요..."
"아니... 네..."
불안한 듯 여자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가 사라지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두 명의 그림자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야 인간들 난리 났어 애가 사라졌데!"
"누구? 그 얼굴에 큰 몽고반점 있던 그 애?"
"어 맞아 감쪽같이 없어졌다고 찾고 난리 났던데 그 애 이름이 뭐였지?"
"침대에 김 하늘이라고 적혀 있던데?"
!!!!!
그림자 “하늘”이 자다가 놀라서 잠에서 깬다.
"이 꿈은 도대체 뭐지?"
얼마 만에 이렇게 깊은 잠이 든 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심지어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너무 생생했다. 마치 그 꿈에서 벌어진 일을 지켜보고 있었던 느낌마저 들었다. 그건 아마도 어제 김 대표와 실이라는 개가 한 이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친숙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하늘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림자 “하늘”은 오래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부터 시작될 하늘 그림자 도서관의 사서 일을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계는 이미 8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작은 방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새로운 책들이 반짝이면서 도서관 책장에 꽂히고 있었다. 비록 책을 읽는 그림자는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그림자들이 많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계속해서 책이 꽂히고 있는 책장을 몇 분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기가 내 새 직장이구나”
그리고 김 대표의 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늘 그림자 도서관의 오전은 그림자 개미 한 마리도 찾지 않는 조용한 하루였다.
그래서 하늘에게는 오히려 도서관의 많은 책들을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림자 책들을 읽을 때마다 하늘은 신기하게도 그들의 글들이 자신이 본 것처럼 머릿속에 영상처럼 펼쳐졌다.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유리 조각처럼 박혔는데, 그 유리 조각에 비추어 펼쳐지는 영화 같았다. 그중 하늘에게
기억이 나는 문구가 있는 책은 그림자의 부자 병법이라는 책이었는데, 묘사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그림자와 주인이 대화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그 책 속에 한 문장을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내 주인과 나는 태어나서 한시도 쉰 적이 없다. 그도 나도 브레이크 없이 굴러가는 바퀴처럼 굴러기가 만 한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는 열심히 일 한 만큼 부를 얻지 못한 것이고, 나는 그와 함께한 노력 때문에 그림자 세상에서 이름만 대면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보상 없는 삶에 지쳐갔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끝없이 내가 안다고 울부짖었지만. 그는 나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고, 점점 그의 병색은 악화되어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그림자일 뿐이니까... “
<그림자의 부자 병법 중에서>
분명 책 속에서도 현실세계에도 부유하게 살 오른 목에 흰점이 있는 그림자가 자신의 주인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알아!! 너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 난 너에게 늘 고마워~만약… 네가 내 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나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은 혼자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이 그림자 세상과 현실세계와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주인과 그림자는 같이 있었지만 묶인 끈들의 존재가 무색하게 극도로 외로워하고 있는 모습들을 말이다.
그렇게 하늘이 이 책을 빠져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 어느새 검은 개 실이가 자신 앞에 서 있었다. 퉁명스럽게 삐쭉 나온 입으로 하늘에게 오후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나를 대신할 새.. 새로운 개를 채용했어..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없었어도..."
"아.. 미안.. 내가 김대표에게 잘 말해볼게"
"주둥이 다물어! 한마디만 더 하면 너를 아주 갈기갈기 물어버릴 거야! 으르르릉"
"아.. 미안.."
"오늘부터 내가 그림자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 그림자들을 찾아다닐 거야."
"나는? “
"어디 그림자 따위가... 너는 그냥 나를 멀리서 지켜보기나 하라고 이 실이가 얼마나 사라진 그림자를 잘 찾는지 말이야. “
"아.. 어 (어제는 김 대표에게 보인 태도랑은 확연히 다르구나)“
"그래. 알아들었지? 나는 지금 오후 9시부터 금빛 하늘 공원으로 나가서 그곳에서 사라진 그림자들을 찾을 거야."
"어떤 그림자들인데 내가 미리 알면 나도 도울 수.. 도? “
"이봐 나는 이래 봐도 냄새 맡는 그림자 세상 최고 엘리트 개야! 나는 그림자들의 냄새로 그들을 찾을 수 있어. 그림자들은 인간과 평생 함께 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인과 같은 냄새가 나지 아주 고약해 너도 맡을 수 있었다면, 내 일자리를 다른 강아지에게 이렇게 쉽게 주는 일은 없었을 텐데... 너와 나는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 정도는 너보다 훨씬 어른인 내가 감내해야겠지.."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 도망친 그림자들을 왜 금빛 한강공원에서 찾아?”
"그림자라는 존재는 자신이 집이 있는 그림자 세상의 무조건 돌아오게 되어있어 잠을 자지 않는 대신 충전이 필요하다고 해야 할까? 이곳의 물들이 하루 종일 그림자들이 비추듯이 밤에는 그림자들을 충전해 주는 역할을 하거든 사람들이 물 근처에 살려고 하는 게 다 사실은 그림자 때문이야."
"아 그래서 사람들이 한강 근처에 살려고 하는 게... “
"맞아. 그림자들이 인간들과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는데 종일 세뇌시키는 거지 인간들이 그들의 말이 들리진 않아도 매일 같이 있다 보면 물 근처에 사는 게 성공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라는 게 생긴다고 하더라고. 대신 그림자들도 멀리 가지 않고 충전할 수 있는 거고.. “
"아.."
"그럼 빨리 가자 설명이 너무 길어졌어! 김 대표가 출근 시간 일분이라도 늦으면 가만 두지 않는다고 했어 “
"아.. 어"
"아 그리고 기억해 너는 그림자 세상에서는 그림자일 땐 "하늘"이고 금빛 한강 공원을 올라가면 다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일 때는 다시 "늘"이라고 불릴 것이야. 지금으로서는 너를 영원한 그림자화를 막는 마지막 수단이지. 헷갈리지 마! 다시 네 영혼을 찾기 전까진 그렇게 불려야 해!”
"이름이 그렇게 중요해? “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건 늘 중요해! 사람들도 운이 안 풀릴 때 개명을 하기도 하잖아! 특히 너는 그림자 운명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운명이 더 쉽게 꼬일 수 있거든!”
“그림자 ”하늘“과 인간 ”늘 “이라…..”
그림자 “하늘” 은 그 말에 갑자기 어제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생각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실이의 번개처럼 소리치는 소리가 하늘의 귀전을 때렸다.
"야 이 멍청한 개야!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검은 개 실이는 그림자 세상에 나갈 때 검은색 네모난 박스에 그림자 모양의 카드를 대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야! 초! 동반 출근 그러니까 출근 두 번 찍어줘"
"....."
"야! 초! 내가 오늘 인수인계해 줬잖아! 출퇴근하는 거 지금 해줘!"
'출근, 출근입니다.'
검은색 네모난 박스에서 인식된 소리가 났다. 화가 난 실이는 씩씩되며 말했다.
"이 멍청한 개가 나를 대신할 개라니 말이 돼? 이름이 야초!래 아주 첫 출근에 초를 쳐요! 아무리 설명해줘도 저렇게 말을 못 알아들으니 나참! 나 없이 어떻게 일을 할지 모르겠다. 저렇게 느려 터져 가지고 내가 알빠야? 암튼 빨리 가자 9시 5분 전이야 “
검은 개 실이는 수영하듯이 개헤엄을 치기 시작했고 하늘은 황급히 그 개를 쫓아갔다. 마치 자신은 수영을 못한다는 걸 까먹은 듯이 헤엄 치려고 허겁지겁 팔을 저었다. 그 순간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더니 갑옷을 입은 듯 팔과 다리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하늘은 아련하게 멀어지는 실이를 쳐다보다가 점점 의식이 흐려짐이 느껴졌다.
‘꼬르르르륵’
“퍽퍽퍽”
"야! 하늘! 아니 지금은 인간!”늘" 숨 셔!!"
그림자 세상에서 "하늘"이었던 검은색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인간 "늘"이 9-B 표지판 앞 금빛 하늘 공원에서 새하얗게 질려 누워 있었다.
"야!! 인간들이 쳐다보잖아 빨리 일어나.."
"푸에엑"
"늘"은 배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물 들을 자신도 모르게 검은 개 실이의 얼굴에 뿜어냈다.
"아씨 더러워... 수영을 못하면 구명조끼를 달라고 미리 말했어야지! 이렇게 스펀지 같은 인간은 처음 보네..."
"아.. 미안..."
다행히 사람들은 자신의 일은 아니라는 듯이 그들을 쳐다보고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간다.
"인간들이 사실 자신의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길 망정이지. 들킬뻔했어. 야 빨리 찾자 9시야"
시간이 9시가 된 걸 알리듯이 늘과 실이의 뒤로 많은 그림자들이 9-B 표지판 앞 물을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인간 "늘"이 처음 그림자 세상에 뛰어들 때 본 그들의 모습처럼 오늘도 환희 그 자체였다.
"오늘도 진짜 몇 번이고 집에 가고 싶었다아아 아~"
그림자들의 모습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들은 마치 “자유”라는 두 글자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상반되게 다시 인간의 옷을 쓴 "늘"은 숨이 턱 하고 막히고 팔과 다리에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무겁게 축 늘어지는 것 같은, 감옥에 다시 갇힌 느낌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현실세계의 개가 된 하얀색 강아지 실이가 미친 듯이 냄새를 맡고 있었다.
"킁킁킁. 겨우 떠돌이 개 몸을 그림자 당근나라에서 겨우 얻었는데.. 냄새가 아주 고약하군.. 그러니까 찾아야 해 그놈을 찾아야 해 내가 다 찾아내고 원래 내 자리를 다시 찾겠어!”
"천천히가 실아! 천천히!"
실이를 놓칠까 봐 허겁지겁 실이를 부르며 쫓아가는 “늘”은 사람들이 강아지와 대화를 하는 자기를 이상하게 볼까 봐 옆을 둘러봤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갈색 푸들과 산책하는 할머니가 빠르게 달려가는 늘을 향해 소리쳤다.
"해피야! 저기 가는 언니한테 안녕해봐! “
그 옆에 프렌치 불도그와 배 나온 아저씨가 같이 풀밭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었다.
"망치야! 오늘은 끙할 수 있지 끙해봐 밥 많이 먹었잖아! 끙!"
이런 분위기라면 본인이 오히려 정상으로 보이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실이가 짖기 시작했다.
"왈왈왈왈왈"
왈왈왈왈왈 짖는 실이의 소리가 그가 도망친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짖으면서 다가오는 강아지의 모습에 흠칫 놀란 덩치 큰 검은색 그림자가 벤치에 앉아서 그들을 게슴츠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검은색 그림자는 늘과 실이가 자신의 곁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듯 불편해 보였지만. 인간 ”늘"은 날뛰는 실이의 발걸음에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앞에 끌려왔다. 그리고 어색하게 주뼛주뼛 그 옆에 앉았다. 다행히 덩치 큰 검은색 그림자는 어차피 사람은 자신의 말을 못 듣는다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참 강아지가 사납네 사나워 사나운 강아지를 키워야 내 주인도 움직이려나..."
인간 "늘"은 그의 목소리에 크게 숨을 쉬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당신... 내가 보여요?"
"네... 설명하긴 좀.."
그때 실이가 소리쳤다.
"이놈 황혁! 우리는 그림자 세상에서 너를 잡으로 온 저승사자다!! 이 놈 빚을 지고 감히 도망을 가?!"
그 그림자는 그림자 세상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식겁하더니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놓칠까 실이와 “늘”은 그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람들은 그들을 금빛 한강 공원을 열심히 뛰는 강아지와 주인으로 생각했다.
"참.. 저 강아지는 건강하네.”
사람들 눈에 건강해 보이는 하얀 개 실이는 눈을 붉히며 도망가는 덩치 큰 그림자에게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왈왈왈왈 미친 황혁! 잡히면 가만 안 둬!!
-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