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도 나와 결혼할래?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는 거울

by 야초툰

"처음이었어요. 그림자 조우리와 마음이 맞았던 건..."


그림자 송준은 조심스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저희 그림자 주인들인 인간들은 정말 동네에서 소문난 잉꼬부부였어요. 문제는 저희였죠. 주인들이 서로 사랑하면 뭐해요. 그림자인 저희들이 행복하지 않는데...심지어 저는 그림자 조우리 눈만 마주쳐도 저도 모르게 치가 떨렸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그림자 조우리는 얼굴을 갑자기 내밀어 그의 말에 끼어들었다.


"나도 마찬가지거든! 널 처음 본 순간 똥을 밟은 기분이었어! 아주 더러웠다고! 누가 할 소리를"


"저거 봐요! 제 말을 듣지도 않아도 아시겠죠? 얼마나 다혈질인지! 저를 존중하는 모습을 눈곱만큼도 찾아볼수가 없어요. 제 이상형은 조용하고 제 말을 잘 들어주는 그런 여자 그림자였는데... 저런 천박한"


그들은 결국 몇 마디를 하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때릴 듯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늘"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에 그림자 송준을 따로 뒤쪽 벤치에 끌고 가서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야기 시작이 힘들 것 같아서..."


실이는 화가 난 그림자 조우리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빼고 있었다.


"맞아요 저희는 늘 이래요. 도대체 대화라는 게 통하지 않죠.. 그런데 주인들은 서로 좋다고 매일 안고 뽀뽀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저희가 얼마나 싫었는지 이해하시겠어요?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저희에겐 희망은 시간이 지나는 것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3년 아니 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점점 지쳐갔죠. 이 지옥이 끝이 안 날 것 같았거든요.그러다 그날 그때 금빛 하늘 도서관에서 연설을 하는 영롱하게 빛나는 그분의 연설을 들은 거예요. 인간의 약한 부분을 찾아 파고들어 점점 그들의 몸을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그분의 연설들을 듣고 깨달았죠. 끝없이 펼쳐지는 지옥에서 밝은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요? 어떻게 하셨는데요?"


"저와 그림자 조우리는 각자의 주인의 몸에 약한 부분을 찾기 시작했어요. 제 주인의 약점은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인간들이 해마라고 부르는 '기억을 저장하는 곳'에 있었거든요. 제가 그곳을 점점 차지하게 되면서.. 제 주인은 점점 기억을 잃게 되었어요. 자신의 아내와 행복했던 추억마저 말이에요. 빛을 잃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제 주인은 자신의 아내를 향한 마음들도 차갑게 식어갔죠.그 뒤로는 점점 그림자 조우리를 만지지도 정말 끔찍했던 어색한 맞춤도 하지 않아도 돼서 너무 행복했어요. 다만 제 주인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죠"


자신과의 스킨십을 안 해도 돼서 좋았다는 말만을 들었는지 앞에 앉아 있던 그림자 조우리가 급발진하며 뒤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저도요 저야말로 너무 좋았어요.제 주인의 약점은 정말 힘들게 찾았어요.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꽁꽁 숨겨두었거든요. 겨우 찾은 블랙홀은 가슴골 위에 갈비뼈가 시작되는 중앙에 있었어요. 인간들은 그곳을 '화병이 쌓이는 자리'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도 그곳을 파고들었어요. 그랬더니 제 주인은... 너무 아파했어요.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차가운 말을 뱉을 때마다

아니 그녀와의 소중한 추억들을 기억하지 못할 때마다

그곳이 막힌 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어요. 저는 그림자 송준과 마주치지 않는 건 너무 좋았지만 제 주인이 아파하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그녀가 매일 밤 방에 혼자 앉아서 울면서 말했거든요


"예전에 나는 그를

나를 비춰주는 등대라고 생각했어.
어두웠던 나의 과거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그런 등대 말이야
그런데 이제는 전봇대 같아
아무리 그의 이름을 불러도
이제는 나에게 이상
따뜻했던 불빛을 비쳐주지 않아"

그래서 저는 결심했어요. 조금 더 빨리 이 둘을 헤어지게 하기로 말이죠. 저는 더 이상 제 주인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블랙홀 옆에 있던 심장도 차지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그녀의 심장은 얼음보다 더 차갑게 식어갔어요. 그리고 바로 드디어 오늘 그들이 헤어지게 된 거예요. 정말 눈물이 많이 날 것 같아요. 진짜 참을 만큼 참았거든요 지긋지긋해요

이제... 진짜 다신 만나지 말자 그림자 송준!"


"나도 마찬가지거든 진짜 지긋지긋해 다신 만나지 말자! 그림자 조우리!"


실이는 그런 그림자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분노의 감정을 담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말하기 시작했다.


"사.. 사.. 사실 말이야 내가 하는 일 자체를

그림자들에게 말한다는 건..

김 대표에게 용서받지 못할 일이야.

하.. 하지만 갑.. 갑자기 너희가 누군지 생각난 이상

나는 이.. 이제 참을 수 없어!

나야말로 너네가 지긋지긋하거든.

으르르릉 왈왈왈"


그 말에 서로를 보며 으르렁 이를 들어내고 있던 그림자 송준과 그림자 조우리가 놀란 듯 실이를 쳐다봤다.


"우리를 알아?"


그리고 인간 "늘"또한 흥분한 실이에게 다가가 천천히 설명을 해달라고 말했다. 실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너네를 잘 알아

아니 너네가 나를 찾아와서 알게 되었지

아마도 그건 내가 하는 일 때문이었겠지.

나는 그림자와 꼭 맞는 인간을 찾아 인연의 실로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어. 그런데 꼭 주인들이 죽으면 찾아오는 그림자 커플이 있었어. 매번 이름을 달랐지만 꼭 같이 와서 하는 행동도 같아서 기억해. 늘 그들은 거울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번 생에는 서로 지긋지긋하게 살았으니까 다음 생에는 다른 그림자와 살고 싶다고 주인은 누가 됐든 상관없는데 서로 그림자와는서로 절대 만날 없이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과 묶어달라고" 부탁하곤 했지. 원래는 그러면 안 되지만 기억을 잃어도 다시 만나서 매번 찾아오는 너네를 보고 나도 오기가 생겼지. 이번에야말로 절대 절대 만나지 못할 곳에 인간들과 묶어주리라! 이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하고 말이야 심지어 서로 만나면 도망가라고 내가 특별히 김 대표한테 부탁해서 서로 만날 때 울리는 방울도 달았다고 너네의 주인과의 인연의 실에 말이야 그런데 이번에도 또 짝이 된 거야? 그리고 또 헤어진다고? 너네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니고 필연 아니니? 그냥 같이 살아"


그림자 송준과 그림자 조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아니라고 손사례를 쳤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그럴 리가 없어! 아니.. 내가.. 쟤가 아니.. 기억이 없어!"


"그럴 리 없어! 나도 기억 안 나"


그들은 서로 같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인간 "늘"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남녀가 서로 첫눈에 반했을 때 종이 울린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어쩌면 실이가 더 인연을 깊게 만든 건 아닐지라는 의심과 함께 말이다.

그때 실이가 자신의 목에 걸린 방울을 흔들며 말했다.

"이 방울이야 기억 안 나? 이 소리?"

딸랑딸랑

그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 방울 소리를 따라 인간"늘"에게 어떤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그림자들의 모습들은 지금 그림자 송준과 그림자 조우리와 모습들과 달랐지만 겹겹이 쌓인 층에 그려진 남녀 그림자 이야기들이 "늘"의 눈앞에 펼쳐졌다.

매번 서로를 점점 알아가면서 갈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의 탓만 하는 그림자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 니 탓이야"

"아니 이건 네 잘못이야"


서로 자신이 더 아프다고 악을 쓰며 소리치며 싸우는 그림자들의 모습들이 뒤죽박죽 되어 보이더니 마지막 장면에서는 신기하게도 마치 자신이 준 상처가 이렇게 컸는지 몰랐다는 듯이 거울에 비친 상대방의 상처를 보고 당황하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곤 실이를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다음에 제발 서로 절대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늘"은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에 만약 다시 만나면 서로에게 줄 큰 상처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다시 만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다시 만나게 됐을 때는 비록 기억은 없어졌지만 해결되지 않고 그냥 곯게 둔 차곡차곡 쌓인 상처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만났을 때 서로를 보고 그렇게 불쾌해하는 모습으로 기억이 끝났다.


그렇게 그들의 기억을 영화처럼 보게 된 "늘"은 어쩌면 이들은 계속 다시 만나게 되는 것도 역시 이제는 서로를 그만 할퀴고 서로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라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눈을 뜬 "늘"의 앞에 서 있는 그 그림자 커플은 여전히 이를 들어내며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었다.


"다시 절대 못 만날게 해달라니! 역시 우리는 악연 중에 최악이었어"


"내 말이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께름칙했어 다시 보지 말자!"


씩씩되며 화를 내는 그들을 보고 인간 "늘"은 조용히 읊조렸다.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요 예약이군..."

그때

딸랑딸랑

갑자기 방울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갈색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실이를 툭하고 치고 실이가 들고 있던 방울을 빼앗아 놀리듯이 도망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그림자 부부를 다시 만나서 심기가 언짢았던실이는 이제 지나가던 개마저 자신의 능력을 무시하는듯한 모습에 그 갈색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쫓아가며 말했다.


"뭐야? 똥개 주제에 감히 나를 놀려? 잡히면 가만 안 두겠어 왈왈왈"


미친개의 목소리가 금빛 한강공원에 울려 퍼졌다.

"늘"은 미친 듯이 실이를 쫓아가며 그림자 둘에게 소리쳤다.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정신 나간 실이 아니 미친개 좀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