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잃은 이들의 운명
'풍덩'
실이를 놀리며 도망가던 갈색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물속으로 점프해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개헤엄을 치며 실이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실이 너 우리 개들이 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모르지? 알랑방귀 실이라고 불러!”
"뭐래 이 똥개가!"
"어떻게든 그 김 대표라는 작자한테 잘 보이려고
어찌나 꼬리를 흔들고 다니는지 개망신은 다 네가 하고 다닌다고 붙여졌지"
"내가 언제? 네가 봤어? 으르렁으르렁"
"나만 봤겠냐? 지나가던 개들은 다 봤지?
왜 그렇게 살아? 또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그래?"
실이는 갈색 강아지가 던진 말에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늘"은
현실세계에 올 때마다 챙겨 오는 목끈을 실이에게 단단히 묶었다.
"실아.. 네가 화난 건 알지만.. 김 대표가 더 이상 사고를 치는 건 원치 않을 거야
참아 김 대표를 봐서라도.."
얼핏 쳐다본 실이의 눈에 슬픔이 가득 맺혀있었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어.. 누가 버림받아! 그건.. 그래.. 실.. 실수였어."
마치 그 강아지가 불안함에 부풀려져 버린 풍선을 '톡'하고 바늘로 건드린 것 같이 실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실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배형을 치는 강아지가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말했다.
"야 그게 그거야 이 멍청한 강아지 같으니라고"
"달라! 너 진짜 물어뜯어 버릴 거야! 넌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라고 소리치더니 갑자기 실이가 급발진해서 그 개가 헤엄치고 있던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실이가 또 도망갈까 봐 간신히 그의 목에 걸어둔 목끈이 "늘"을 당겨 물에 빠지게 만들었다. 9-B 표지판이 아닌 곳에서 말이다. 당황한"늘"은 자신을 보고 있던 그림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저 수영 못해요."
'꼬르르륵’
이제는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늘"을 구하기 위해 그림자 송준이 헐레벌떡 물에 뛰어들었고 갑자기 벌어진 일에 놀란 그림자 조우리도 물속을 발을 동동 거리며 쳐다보게 되었다. 물에 빠진 인간"늘"의 의식은 물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갑자기 김 대표가 그림자 판도라 상자에 밑줄 쳐 두었던 그 문구가 방울 소리와 함께 물방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딸랑딸랑) 만약 기억의 상자들이 점점 물에 젖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다(딸랑딸랑)
“늘"은 물속에서 들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기절한 채 가라앉고 있는 "늘"을 향해 그림자 송준이 손을 뻗어서 간신히 "늘"의 팔을 잡게 되었을 때, 순간 "늘"에게서 밝은 빛이 나더니 그의 몸속에서 어떤 영상들이 물속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그 물속 그 자체가 영화관이 된 듯이 울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남녀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계속 울려 되는 방울소리 때문이었는지 물속에서 "늘"을 구출하던 그림자 송준도 물 밖에 그들을 기다리던 그림자 조우리도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그 영상을 홀린 듯이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영상은 계속 다른 시대에 연인들의 모습들을 이어서 보여주고 있었다. 화면이 깜빡거리면서 그들의 모습은 계속 바뀌어 갔지만, 영상 속에 그들의 눈빛 속에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함과 이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듯한 따뜻한 느낌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매번 늘 서로가 서로를 따뜻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그 모습들이 자신들의 기억에는 없지만, 서로를 사랑했을 때의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 두명의 그림자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눈빛이었어.."
영상 속 유일한 대사가 물속에 퍼지며 영상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밀려드는 어떤 기억들 때문에 힘들었는지 그림자 조우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포개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 뒤에 어느새 “늘”을 구하고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는 그림자 송준이 서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안아주었다. 서로의 상처를 안아 주듯이 그들은 한없이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한편 겨우 정신을 차린 인간 "늘"은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레 9-B를 향했다. 자기가 벗어두었던 구명조끼를 입으며 사라진 실이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을 했다.
"버려진 개라..."
그리고 어쩌면 버려진 실이가 인간과 그림자를 이어주는 일을 하는 게 우연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 세상에 돌아가니 어깨가 축 처져 있는 실이를 그림자 세상에 입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보시다시피 그 개는 놓쳤어.
그래도 이번에도 나 혼자 들어가면
네가 나를 가만 안 둘 것 같아서... 기다렸어"
실이 답지 않은 어두운 얼굴에 가득 고인 눈물자국이 안타깝게 반짝였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그림자"하늘"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아... 어.. 고마워 일은 잘 해결된 거 같아. 그런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서 먼저 돌아왔어"
"아.. 어."
영혼을 잃은 것 같은 실이가 터벅터벅 "하늘"이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멍하니 걸어갔다.
그런 모습에 그림자 "하늘"은 안타까운 마음에 용기 내 말을 걸었다.
"그래도! 이번에도 거의 성공이야. "
".. 그래. 열심히 해야지. 또 버림받지 않으려면 말이야.."
실이의 대답에 그림자 "하늘"은 머쓱해하며 조용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분간의 침묵 지난 후 실이가 마른 입술을 간신히 떼서 힘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 버림받은 개의 그림자였어."
"머?"
"그리고 내.. 내가 내 주인을 두 번 죽였지. 그것도 내 주인이 제일 고통스러웠던 날 말이야.
그날은 내 주인 강아지 실이가 흰 차에 실려 버려지던 날이었어. 내 주인 실이는 자기가 버려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빠르게 자신을 버리고 달려가는 그 흰 차를 쫓아가려고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였어. 내 주인은 그렇게 있는 힘껏 그 차를 쫓아가는 반면 나는 필사적이지 않아서였는지 도저히 내 주인 실이를 쫓아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국 놓쳐버렸지. 심지어 나는 그의 그림자인데도 말이야. 그리고 결국 주인 실이와의 그림자인 내가 이어진 끈이 끊어지게 된 거야. 인연의 끈이라는 게 자기 손으로 놓으면 다시 이을수가 없거든…”
"그림자가 없는 개는 어떻게 되는데?"
"깊은 잠을 못 자고 매일 악몽만 꾸게 된데 김 대표가 그랬어. 인간과 그림자는 서로가 묶여 있기 때문에
낮에는 그림자가 인간에 의해 돈을 벌고 밤에는 인간이 그림자가 열심히 노는 만큼 좋은 꿈도 꾸고 깊은 잠도 자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림자를 잃어버린 개는 매일이 버림받은 날이 되는 거야. 깊은 잠을 자지 못하니까 잊히지도 않는 거야 트라우마로 남는 거지”
"실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게.. 주인과 나는 끊어지기 전까지는 운명 공동체였으니까 버려졌을 때의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너무 괴로웠어. 내 주인이 나 때문에 같은 고통을 계속 겪고 있을걸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었지. 심지어 다른 개들은 나를 보면 놀려댔지
"주인을 놓친 그림자" "개들의 망신"" 버려질만했다"라고 나를 쫒았다니며 괴롭혔어.
그렇게 숨어만 있는 나를 꺼내 준 게 김 대표야 그가 나에게 와서 말했지 네가 놓친 그 끈은 이미 끊어져버렸지만 다른 인연의 끈을 묶어주며 살지 않겠냐고 말이야"
"그래서 네가.."
"맞아 인간과 그림자를 묶어주는 일을 하게 된 거야. 그런데 그 일이 생긴 거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쩌면 너의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 수도 있어 내가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지.
그래서 나보고 자신과 자신의 주인의 인연의 끈을 끊어지지 않게 꽉 잡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 거겠지.
멍청한 실! 이제야 깨닫다니 말이야."
자신을 자책하듯이 머리를 때리는 실이는 무겁게 그림자 세상 입주센터의 문을 열었다.
"다녀.."
놀란 눈으로 실이를 향해 달려오는 김 대표가 실이의 이쪽저쪽을 살펴보며 말했다.
"실아!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아니 그림자 세상을 순찰하고 있는데.. 내가 너에게 준 방울을 물고 다니는 강아지를 잡았어. 무슨 일 있었냐고 그 개한테 물으니까 아무 말도 없이 도망가서 혹시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얼마나 걱정했다고!"
"김 대표... 나는... 흑흑"
"왜 무슨 일 있었어? 나에게 말해봐 내가 그 갈색 강아지를 가만 두지 않겠어! 누가 감히 김 대표 가족을 건드려?"
"가.. 가.. 가족?
"그럼 너랑 나랑 같이 한 세월이 얼만데 이제 우리가 가족이지 비록 사고뭉치긴 해도 말이야"
"끼잉 끼잉 끼잉"
실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김 대표는 말없이 실이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하늘'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 대표가 그림자 "하늘"에게 윙크를 하며 얼른 들어가 쉬라고 손을 휘저어 보였다. 그렇게 오늘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하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대표가 실이에게 한말들을 다시 떠올리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 내가 만난 그림자 송준과 그림자 조우리 그리고 김대표와 실이를 보며 누구나 자신의 가족이자,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존재들이 한 명씩은 있구나.. 그럼... 나에게 남은 가족은?"
그나마 자신에게도 남은 가족 '주연'이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하늘"의 주변 그림자 세상은 밝게 반짝이고,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에 비치는 하늘 그림자 도서관의 불빛도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