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우미양가'로 성적을, '가나다'로 행동 발달 및 태도를 평가하던 시절에 국민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 '수'가 도배된 생활통지표 속에서 유일하게 '우'가 새겨진 과목은 5학년 1학기 체육. 옷태가 나지 않는 체육복도, 봉긋하게 솟기 시작한 가슴도,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법도 점점 더 몸을 움츠리고 덜 몸을 움직이는 소녀가 되게 했다.
초록색 가짜 풀들과 백묵가루로 선을 표시하고 만국기가 넘실대던 운동회날의 운동장은 너무 싫기만 했다. 특히나 싫었던 건 달리기.'땅!' 하고 출발신호도, 앞서 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힘겨웠다. 명랑만화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게 쌩쌩 다리를 움직이고 있지만 전혀 가속도가 붙지 않는 현실은 힘들었다. 1등과 2등의 손목에 도장이 찍히는 동안, 맨 끝 또는 끝에서 두 번째 정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헐떡이는 숨. (윽, 생각만으로도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싫다.) 100m 또는 600m(800m) 단거리 장거리 기록을 재는 체력장은 극혐이었다. 대체 이런 걸 뭐 하려 하는 걸까,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걸 해야 하나. 무수한 함수와 방정식을 풀 때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학교 과목 및 행사였다.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는 느낌은 최악이었다. 곧 멈추기라도 할 것만 같은 숨참과 앞서 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낸 건 절정의 자존감 추락이었다.
신체적 조건을 타고나지도,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를 선호하지도 않았던 소녀는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버스와 지하철, 보행 신호를 놓쳐도 웬만하면 뛰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달리기는 안 좋아하고 안 즐기고 안 하지만, 걷는 것만큼은 나름 좋아하고 조금 즐겼고 종종 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조금 먼 거리도 자주 걸었다. 높은 힐에서 내려와 편안한 운동화와 친해진 지금, 공원이나 성곽의 산책로를 따라 걷기를 좋아한다. 러닝머신에 올라도 거의 뛰지 않으니 내겐 워킹머신일 뿐이다.
속도에 따라 성적을 매기고 남들과 줄 세우기를 하는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나는, 결국 달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걷는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걷기를 택했다. 오래오래 걷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걸음을 내디딘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남들과 비교하며 내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삶은 과부하와 번아웃을 초래하기도 한다. 걷기도 달리기도 스스로 해 보면서 나의 속도를 찾고, 거기에 맞추어 리듬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발걸음을 맞춰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쁜 봄꽃이 보고 싶다고 벌어지지 않은 봉오리를 마구잡이로 열어젖힐 수도 없다. 무르익은 단풍을 보겠다고 나무들을 잡아 흔들며 닦달할 수도 없다. 각자의 속도로 꽃이 피고 지듯이, 계절이 오고 또 가듯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p259
강소영
쓰기 생활자
1979~ 20**
달리기를 싫어해 주로 걸었다.
잠시 멈출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다시 걷기를 택했다.
하루키의 묘비명을 보며 나의 묘비명을 새기는 상상을 잠시 한다. 키보드 자판 두드리기를 어서 멈추고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오늘은 좀 나가야겠다. 절정을 향해가는 짧은 계절을 누리며 천천히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