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시작 전부터 삐그덕거리던 내 마음이 연휴가 끝나고 나서도 그 덜컹거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던 이유를.
나는 '며느라期'를 그만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음은 혼인 서약과 성혼 선언이 있겠습니다. 신부 민사린 양은 신랑 무구영 군을 남편으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며느라기를 받겠습니까?
(수신지, 며느라기, Episode 11 中)
"며느리로서 어찌어찌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인 '며느라氣'를 받아 "시댁 식구에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로써의 '며느라期'를 거치며 사린이 겪는 내적 갈등은 왜 여성이 시부모에게 '점수를 따고' 예쁨받으려 애쓰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수신지, 노땡큐 며느라기 코멘터리, p.153)
"너를 내 딸로 생각하마."
신행 후 드린 안부 전화 통화에서 어머님의 말씀이였다. 스물 일곱 살 새 신부는 감격했고 울컥도 했다.
"너 편하게 일하라고 준비했다."
첫 명절날 건네신 작은 쇼핑백 안에는 꽃무늬 앞치마가 들어 있었다. 새 아가는 한복 입어야 한단다. 꽃분홍 치마 저고리 위로 꽃분홍 앞치마를 입었다.
"남자가 사회 생활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잦은 회식과 과음에 내 말이 통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 남편을 일러바쳤다. 입을 뾰루퉁 내밀고 혼 좀 내주십사 했던 내 입을 쥐어 박고 싶었다.
할많하않.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아왔다.
할 말이 너무나 많지만 하지 말아야겠지.
할 말이 목구멍까지 찼지만 안 하는 게 모두가 편하겠지.
하지만
결국 나는 해 버렸다.
"어멈아,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생각한다."
"어머님 딸 있으시잖아요. 저는 며느리만 할게요."
꾹꾹 참으며 담아 두었던 말을 했다.
'며늘아기'가 된 지 17년만이었다.
시부모님은 내게 잘 해 주신다. 너무 잘 해 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때로는 부담이 될 정도이다. 계속 먹으라고 권하신다. 잘 못 챙겨 먹을테니 외식 말고 집밥만 먹자고 하신다. 힘들테니 쉬라고 하신다.
눈만 마주치면 먹으라고 하시는 것도, 연휴 내내 세 끼니 똑같은 명절 음식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안 쉬는 것도 편치가 않다.
명절 전후로 답답하고 더부룩하다. 시댁 시계는 천천히 간다. 명절 당일에 친정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손에 손을 잡아도 넘을 수 없는 벽은, 이번 명절에도 철옹성이었다. 견고하고 단단했다.
"그라모! 난 무조건 니 편이지.
엄마 말고 내겐 니 밖에 없다!"
나랑 20여 년을 함께 했으면서. 빈 말이라도 내가 듣고픈 세 문장 할 줄을 모른다. 끝내 당신은 남의 편. 끝끝내 당신은 어머님 아들.
명절 끝 공감해 줄 친구나 동네 엄마가 없다. 그렇다고 친정 엄마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눈에 띄는 제목의 책들을 찾아 쌓아 놓고 읽었다. 격하게 공감하고 울컥하면서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읽어가는 동안 하나의 단어가 빙글 맴돌았다. 서로의 생각 입장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결국엔 모두가 '사랑'이었다.
벽이라도 살살 매만지며 말이라도 걸면 문이라도 열리지 않을까. 남의 편이지만 그래도 이번 생은 함께 할 사람이니 복화술로라도 웃으면서 다시 얘기하는 게 낫겠지. 위의 문장을 달달 외우게 해서 명절 마지막 AI 처럼이라도 얘기하게 만들어볼까. 처음부터 들이지 못한 습관을 하루 아침에 갈아 엎을 수는 없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노력해야 한다. 나부터 달라져야 내 아이들 세대에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을게요. 더 먹으라는 말씀 그만 해 주세요."
"저녁은 다같이 요 앞에 새로 생긴 식당에 가서 간단히 먹으면 어떨까요?"
"쉬라고 하셔도 저 못 쉬어요. 집에 가서 쉴게요. 저희 조금 일찍 나설테니 어머님도 쉬세요."
꼭 말씀드려야겠다. 예쁘게 조곤조곤 정성스레 말씀드려야겠다. 빙글 맴돈 그 단어를 담으면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대출해 온 책들을 다 읽지 않고 반납해도 될 것 같다. 덜컹거리는 마음이 조금씩 천천히 매끄러운 레일 위를 달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