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남자는 한 번의 큰 다툼 끝에 여자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란 건 자신의 인생에 절대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삶의 목표라고 이야기하는 여자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실 남자는 처음부터 비혼주의자였던 건 아니다.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하면서 결혼은 자신의 삶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혼을 주제로 두고 친구와 논쟁하다 다툰 적도 있다. 비혼 혹은 결혼은 삶의 선택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그래서 남자는 더더욱 고민했고 책임감에 못 이겨 결국 비혼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처음 만난 날 이 사람이랑 결혼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에 다툼으로 인해 그 생각이 사그라들기도 했지만 결국 남자는 자신의 촉이 맞을 거로 예측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를 원했고, 여자와 오래 함께하는 상상을 했다.
자연스레 남자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주변에 결혼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 결혼한 이유가 뭐예요? 어쩌다 결혼했어요?
- 결혼한 거 후회하지는 않아요?
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에게도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꺼내기 시작했다.
-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엄마가 참 좋아할 것 같아요
라고. 남자의 부모님은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가졌다. 남자는 여자를 만날 때도 여자의 행동을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 자신을 잘 챙겨주는 모습, 항상 웃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자를 보며 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남자의 마음은 점점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자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결혼을 이야기한 여자는 이후 남자를 볼 때마다 괜히 부끄러워진다. 이성적으로 말해도 설득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감정을 호소하며 이야기하다니. 좀 더 잘 말해볼 걸 후회스럽다. 하지만 이상하게 남자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여자가 불만이라고 이야기했던 술자리를 줄인다든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씩 꺼낸다든지 말이다. 전에는 애정 표현을 해도 표현에 멈추었는데 요즘은 결혼하면 어떨 것 같은지, 미래에 평생을 함께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비혼주의자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던 연애라면 요즘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 여자는 혹시나 남자가 결혼에 관한 생각이 바뀐 건지 기대한다. 하지만 너무 강력히 비혼주의자를 외쳤던 그이기에 여자는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여전히 결혼에 대한 꿈을 펼친다. 이 남자와 함께 살면 어떨까, 가족에게 이 남자를 소개해 주면 어떤 반응이 올까,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둘은 서로 알게 모르게 결혼에 대한 이상을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