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자신의 진심을 편지에 담아 전함으로써 여자와의 결혼을 마음먹는다. 비록 현실적인 문제가 앞길을 막는 기분이지만 한결같이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 어떤 일이 생겨도 이 여자를 지켜줘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여태 했던 사랑과는 다름을 느낀 게 남자에게는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긴 사랑을 해도, 깊은 사랑이라고 여겼어도 속마음 한 번 제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끝났던 전 연애와는 다르게 지금의 연애는 갈등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었다. 연애 그 이상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남자는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 예를 들어 밥을 먹다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면 우리 이제 결혼해서 음식 해 먹는 것도 재밌겠다든지, 가족을 만나고 와서 나중에는 같이 보러 가면 가족이 참 좋아할 거라고 예상하든지, 예쁜 집을 볼 때면 우리도 나중에 같이 저런 집에서 살면 좋겠다든지 말이다. 나에서 우리가 된 남자는 마음속에 확신의 집을 점점 짓는다. 처음에는 없었던 그 공간이 점점 크고 단단하게 지어지고 있다.
여자는 남자가 미래 이야기를 하면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짓는다. 어떤 날은 괜히 부끄러워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넘어갈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날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미래를 상상한다. 감각 있게 꾸민 집 안에 남자와 함께 사는 미래, 남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해주는 미래, 때로는 다투더라도 결국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그런 미래 말이다. 그런 상상은 하기만 해도 좋은데 이제 곧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여자는 참 행복하다.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자는 이제 좀 행복한 시기가 오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여자에게 안정은 갖기 어려운 존재인데, 남자 덕분에 안정이라는 집을 짓는다. 늘 부서지고 늘 쉽게 쓰러지던 그 집은 이제 점점 더 정밀해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있을 때 결혼한 부부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기 시작했다. 남자의 아는 누나는 같은 직종의 사람을 만나 결혼한 이야기, 친한 형은 오래 연애하다 결혼에 골인한 이야기. 여자의 가까운 언니는 결혼해서 벌써 아이를 낳은 이야기, 친오빠가 누구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알콩달콩 결혼한 이야기. 이전에는 낯설었던 이야기들이 점점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주제가 됐다.
결혼하면 어디서 살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서울에서 살면 어떤 게 좋은지, 외곽에서 살면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말이다.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주고받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 말이다. 이들에겐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 그 어느 것보다 특별하고 깊은 이야기로 쌓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