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사건들로 일에 의욕을 잃은 나는 점점 업무에 집중을 못하는 시간들이 잦아졌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실적이 부진해졌다. 좋은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달려오던 시간들이었는데, 그때쯤 되자 나도 모르게 '이만큼 했으면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내가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나는 다시 궁극적인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에 의욕을 만들어주고, 건강한 길로 인도해 주는 건 너무 보람찬 일이지만 사실 나는 이미 예전부터 너무 보여주기식 운동이 되어버린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길에 회의감을 느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트레이너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정한 건 특별한 계기나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감당 못할 충동적인 결정도 아니었다. 또래보다 괜찮은 벌이 덕에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나날이 커져갔지만, 밑 빠진 독에 붓는 물처럼 돈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헛헛함이 항상 내 가슴 한 편에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 배부른 소리일까 봐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못한 채 혼자 끙끙 앓았었는데, 마지막 한 가닥 남아있던 의욕마저 뽑혀버리니 그제야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이 객관적으로 인식이 되었다. 나는 이 일만 하기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던 거였다.
그땐 이미 코로나가 창궐한 지 2년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연극을 하며 알고 지낸 지인들도 하나씩 다시 극장이라는 일터로 복귀하는 추세였다. 지인의 초대를 받아 연극을 보고 온 날이면 가슴속 헛헛함이 더 커졌다. 핸드폰 갤러리 속 예전 사진들을 보면 벌이는 시원찮았어도 성취감에 젖어 행복했던 그때가 떠올라 점점 내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개처럼 벌어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 전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겐 그게 바로 연기였다.
나는 바로 회사에 퇴사사실을 알리고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던 회원님의 수가 꽤 되었던지라 인수인계의 과정만 두 달이 예상되었다. 비교적 여유로워진 일정 속에서 남는 시간엔 자기 계발을 했다. 트레이너에서 다시 배우로 돌아가려면 먼저 내 몸에서 튼튼함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어 보여서 나는 바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술자리도 잡지 않고 짬이 나는 대로 연기공부에 몰두하거나 밖에 나가 무작정 걸었다. 당장의 벌이는 확 줄었지만 지금의 이 시간이 나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하니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당장 직업도 없고 계획도 없었지만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있었다. 열심히 하면 뭐가 되든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태생부터 긍정적인 성격이 한몫했던 것 같다. 물론 매일 저녁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면 알게 모르게 조바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에도 나는 스스로를 침착하게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나는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연기학원에서 두 달 동안 배운 지식과 방법들을 활용해 작은 기회를 하나라도 더 만드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바이럴 광고 두 건과 유튜브 영상 한 건이라는 나름 소소한 성과도 낼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연기에 도전하면서 내가 눈을 돌린 곳은 예전과 같은 극장이 아닌 미디어(매체)였다. 결국 대부분 연극배우들의 최종목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눈도장을 찍고 배우로 자리를 잡는 것일진대 그것은 인지도와 그에 따른 대가의 차이가 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하루라도 더 어릴 때 그 문을 두드려 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철옹성 같은 벽을 뚫기 위해 좋은 무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돌멩이라도 꾸준히 던지다 보면 운이 좋게 그 성 안에 사는 누군가가 나를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적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보조출연(엑스트라) 일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단 촬영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야외나 실내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촬영 특성상 덥거나 추운 계절이 가장 일하기가 힘들다던데 하필이면 내가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때가 한겨울이었어서 나는 추위에 덜덜 떨며 촬영 현장을 다녀야 했다. 그저 화면에서 보면 3분짜리에 불과한 장면도 그 잠깐의 순간을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현장에서 처음으로 배울 수 있었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든다는 건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긴 항해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현실을 깨달았다. 케이블 채널 드라마의 작은 단역도 모두 연줄과 노력이 있어야 쟁취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에 그 작은 기회 하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타고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외모가 눈에 띄게 뛰어나지도 않은 나는 연기라도 기똥차게 잘해야 오디션에 붙을까 말까 할 텐데, 현실은 이미 나에게 오디션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조차 희박한 거였다. 아프지만 그게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임을 나는 인정해야 했다.
야간 촬영을 마치고 나와 같은 보조출연자들을 가득 실은 차가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 대기와 촬영에 나도 많이 피곤했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일한 것을 트레이너때와 비교해 보니 몸은 비슷하게 고단한데 벌 수 있는 돈을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 모든 걸 다 감안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내 앞에 닥쳐보니 받아들이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해서 얼마만큼의 경험을 쌓아야 할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꿈과 목표가 너무나도 아득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도 짐작가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움직이는 이 차처럼 내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켜고 오디션 사이트에 들어갔다. 불안함을 극복하려면 더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내가 지원할만한 공고들을 눈여겨 살펴보다가 문득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호주 관광청에서 게시한 일정기간 동안 워킹홀리데이 비자비를 면제해 준다는 광고였다. '워킹홀리데이?' 나는 순간 섬광을 본 듯 눈이 반짝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보자 또 하나의 잊고 있던 나의 오랜 꿈이 떠오른 것이다. '이젠 해외여행을 갈 수가 있는 거구나!' 나는 바로 비행기표 가격비교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렇게 새로운 꿈에 대한 도전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