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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1. 2021

닥터 인사이드 (2)

내 안의 의사

1. 우리 몸의 치유체계 이해하기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의사 없이 살아왔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장 유능한 의사는 우리 몸 안에 있다. 약 300만 년 전, 지구상에 처음으로 인간이 등장했다. 인간 세상에 의사가 등장한 것은 3천 년이 못 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의사 없이 살아왔다. 사람들이 의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번성에 번성을 거듭해 온 것을 생각하면 우리 몸 안에 치유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쉽게 추측된다. 그러나 인체의 자연치유 능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너무나 거대한 시스템이어서 학문의 대상으로 다루기에 벅찬 이유도 있겠고,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까지도 다루어야 되는 신비적인 영역인 탓도 있다. 과학은 인과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무능하다. 

  범위를 한정한 몇몇 단계에서 인체의 자기수정(self-repair) 시스템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전체 치유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추리해 볼 수 있다. 어느 단계에서 작동하는 치유체계가 다음 단계에서는 사라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치유체계에 관한 이야기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내키지 않으면 대충 건너뛰어도 상관없다. 읽지 않는다고 치유체계가 멈추거나 하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 안에서 치유체계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이해하면 건강에 대한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의 수리(修理)

 

  머리카락 굵기의 5만 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나노미터의 세계인 DNA 단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는 것은 놀랍고도 흥미롭다. 면역체계도 없고 신경망도 없는 미시의 세계에서 고차원적인 자기수정 활동이 이루어진다. 정교하고 능숙하며, 빠르다.

   DNA는 당분자(糖分子)가 결합한 두 개의 사슬로 구성된 이중나선 구조의 거대한 분자다. 서로 꼬여 있는 두 사슬 사이에는 수많은 수평결합이 있다. 이 수평결합은 뉴클레오타이드의 상보적인 쌍 사이에 형성되는데, 그 배열 상태에 따라 제각기 고유한 모습을 띠게 된다. DNA는 유전정보를 하나의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혹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복제한다. DNA는 또한 세포 핵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고분자 RNA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전사(轉寫)한다. 그러면 RNA는 이 정보를 특정한 단백질 제조 과정 속으로 번역(飜譯) 한다. 이러한 복제, 전사, 번역의 세 단계는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이 과정은 거대한 건축 공사처럼 복잡하고 위험하다. 너무나 복잡해서 어디에서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DNA는 복제나 전사를 하려면 반드시 긴 이중나선 구조가 풀려서 서로 분리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가닥이 원본 역할을 하고 새로운 상보적인 가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방사선, 자외선 등)의 영향으로 쉽게 손상될 수 있다. 혹은 새로운 가닥이 형성될 때 DNA의 구조 단위인 뉴클레오타이드가 잘못 배치될 수도 있다. 하나의 DNA 는 뉴클레오타이드 수백만 개를 포함하고 있다. 사안의 복잡성이 이해되는가? 

  이 작업에서 한 치의 실수라도 있어서는 인체라는 거대한 구조물은 사상누각이 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수라고는 모르는 완전무결한 기술자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효소다. 효소는 생명의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하는 특수한 단백질이다. 효소는 오직 하나의 기질(基質)과 결합하여 기질의 화학적 결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재단하고, 자르고, 결합하는 등 기질 분자를 손질하는 만능의 기술자다. 예를 들면, 엔도뉴클레이즈라는 효소가 특정 단계에서 DNA를 분해하기 시작하면 엑소뉴클레이즈라는 효소가 DNA를 구성하는 단일한 가닥의 양 끝을 절단하고 자이레이즈는 꼬여 있는 나선구조를 풀어준다. 그러면 폴리머레이즈는 새로운 가닥의 결합을 이끌어나간다. 이런 식이다.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작업 속에서 아무리 사소한 오류가 일어나도 이러한 효소들이 즉각적으로 잘못을 지각하고 완전무결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DNA 수준에서 작동하는 자연치유 의사들은 걸핏하면 의료사고를 내어 소송에 휘말리는 현대사회의 의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무결함을 갖추고 있다. 사람의 몸속에서 초당 천만 번이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기수정(self-repair) 시스템의 안전성은 완벽함 그 자체다.

  모든 DNA는 자신을 보정할 효소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치유는 생명체의 타고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치유체계의 가동은 공백 없이 언제나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인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자연치유는 세포단계에서 조직, 기관, 시스템과 온 몸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작동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이고, 타고났으며, 언제나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우리의 몸을 올바르게 유지한다.

   대체 누가 이 작은 세계의 일을 지휘할까? 인체를 통제하는 뇌의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신경망의 연결지점 밖에 있는 분자 단위의 세계, 아주 작고도 텅 비어있는 미시의 세계에서 어떻게 저토록 정교하고 복잡한 사건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는 여기서 몸과 마음이 만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을 단지 물질로 보는 유물론적 관점의 의학이 그토록 무능한 이유를 이 지점에서 발견한다.우리는 의식의 저 깊은 단계에서 우리의 몸을 스스로 만들고, 변화시키고, 유지한다. 뇌의 신경망 밖에 있는 본질의 단계에까지 우리의 의식과 의지는 당연히 미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솟아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것이 우리의 의지이다.



세포막의 엔도사이토시스


  분자 단위의 치유체계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살펴보았다.  DNA가 복제 전사되는 세포핵의 바깥으로 멀리 나가보면 세포막을 만날 수 있다. 세포막은 원형질막으로 2중의 지방질로 구성되어 있고 막의 표면엔 어떤 수용체, 즉 특정한 호르몬이나 영양소와 결합하는 특수한 단백질이 끼워 넣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세포막이 외부와의 정보연락이나 노폐물의 배설, 면역에 관여하는 사이토카인 등을 방출한다. 

  세포단계에서 중요한 치유시스템으로 엔도사이토시스라고 하는 프로세스가 있다. 이것은 세포 내부에서 원형질막을 잘라내어 소포라는 함몰구조를 형성하고, 소포 내의 구조물을 세포 내에서 파괴, 소화하는 작용을 한다. 엔도사이토시스에서 표적이 되는 물질로 LDL(저밀도 콜레스테롤)의 수용체가 있다. 혈류 중에서 LDL과 결합하고 있는 콜레스테롤이 동맥의 벽에 침착하여 아테롬성 동맥경화증이나 관상동맥 질환의 원인이 되고 심근경색의 위험요인이 된다. 세포 표면에 있는 LDL 수용체가 LDL 분자와 결합하면, 수용체는 막상에 있는 작은 구멍 모양의 구조체 쪽으로 이동한다. LDL과 결합한 채 그 구멍으로 들어온 수용체는 엔도사이토시스에 의해 변화를 받아 휘감겨 있는 형태로 세포 내의 소포로 들어간다. 이어서 소포는 다른 많은 소포와 결합을 시작한다. 결합이 끝나면 소포 내의 물질이 분류되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보내진다. 세포 안으로 빨려 들어 온 LDL은 더 이상 동맥에 해를 주지 않고, 막상에 나온 LDL 및 남아 있는 콜레스테롤은 리소좀이라는 구조체로 옮겨져 강력한 효소에 의해 가늘게 부수어진 다음 버려진다. 세포 표면의 많은 지점에서 막은 끊임없이 내부로 빨려 들어와 흡수되고, 손상을 입은 막은 리소좀에 의해 인식되어 제거된다. 이와 같이 세포 단계에서도 상처받은 구조와 기능을 인식하고 제거와 치료를 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좀 더 큰 단계에서의 치유활동은 이미 우리의 눈으로 수 없이 보아왔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자잘한 사고로 상처를 입거나 골절을 당했을 때 일어나는 상처의 치유나 골절의 치유가 그것이다. 그런 치유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시시콜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라도 자신의 팔뚝이나 손가락에서 충분히 목격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자연치유의 극히 일부분의 작용이지만 자연치유의 신비를 느끼는데 충분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 보다 한층 놀라운 것이 또 있다. 바로 재생이다. 간은 조직의 80%를 떼어 내더라도 나머지 부분이 건강하다면 불과 수 일 만에 완벽하게 복구 할 수 있다. 자연치유는 시종일관 기적처럼 보이는 경이로움이다. 분자단위의 치유체계나 세포 단위의 치유체계 등을 살펴보았는데, 우리의 몸은 어떤 단계의 손상이나 문제라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처럼 외부의 아무런 간섭이나 방해가 없는 순수한 상태라면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완벽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스스로를 못살게 구는데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다. 



면역 - 방어시스템


  무릇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심지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도 짐승들이나 곤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화합물을 분비한다. 사람이라고 예외 일 수 없다. 인체의 방어시스템은 너무도 치밀하여 병에 걸리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 노출되는 분비선이나 눈물샘 들은 모두 항미생물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외부의 물질을 직접 대면하는 호흡기나 소화기의 표면에는 점액과 항미생물성 화학물질들이 분비된다. 말하자면 외곽을 지키는 보초들인 셈이다. 그런 보초들 뒤에는 면역계의 주역들인 면역세포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다가 외부의 침입자가 있으면 먹어버리거나 녹여버린다. 이런 방어망을 뚫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적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혈구(과립구, 림프구, 매크로파지)들이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제압한다. 백혈구들은 혈관이나 림프액을 타고 우리 몸속을 떠돌거나 특정한 장소에 배치되어 머물기도 한다. 

  떠돌이별처럼 몸속을 유영하는 백혈구들이 어떻게 침입자들에 대응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모든 면역세포들은 시토카인이라는 특수한 단백질 전달자를 분비한다. 시토카인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침입자를 처리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현상을 유도하고 조절한다. 마치 국가조직이 국방을 위해 정보 부서를 운용하고 지휘체계를 갖추어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침입자의 다양성에 맞추어 면역세포들도 다양한 임무와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 병원균과 이물질은 물론이고 체내에서 발생하는 암세포 등의 위험요소도 제거한다.

  인체의 면역시스템은 말할 수 없이 정교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언제나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인체의 다른 모든 기능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영양과 안정된 마음이 완벽한 면역 활동의 전제 조건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빠진 사람은 정상적인 면역력의 반도 발휘할 수 없다. 행복한 미소를 한 번 짓는 잠깐 동안에도 백혈구는 폭발적으로 숫자를 늘릴 수 있다. 반면 분노와 좌절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한탄을 내뿜는 잠시 동안에 인체의 방어부대는 힘을 잃고 중대한 감염에 몸을 내 놓을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면역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두렵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놓인다. 건강을 지키고, 혹은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확인 해 둘 것은, 인체의 면역시스템은 암세포, 바이러스, 세균, 기타 이물질을 매우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면역시스템의 구조에 대해서는 뒤에 개별 질병을 다루면서 필요할 때마다 추가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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