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는 건 아직 걱정 돼

초여름, 5월

by 최영훈

은채는 일곱 살 때부터 혼자 자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자기 방이 있는 요즘에도 엄마랑 같이 잠을 자지만 말이죠. 요즘 들어 부쩍 혼자 하고 싶어진 것이 많아진 은채입니다. 학교도 혼자 가고 싶어 하는데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해서 아빠인 저로써는 허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3학년 때, 재하 형제와 함께 간다면 허락해주겠다고 조건부 허락을 해줬죠.


최근엔 주민 센터를 혼자 가고 싶어 합니다. 수요일마다 가는 미술과 놀자는 물론이고 주민 센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반납할 때도 혼자 가고 싶어 하죠. 아빠는 당연히 반대를 하죠. 대로변과 주택가를 연결 시켜주는 골목에서 언제 차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은채에게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아빠는 너무 걱정이 많다고 핀잔을 듣습니다. 결국 주민 센터 앞까지 같이 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민 센터 4층에 있는 도서관에서 볼 일을 보는 건 은채 혼자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은채 혼자 슈퍼를 가고 싶어 해서 한바탕 엄마 아빠와 함께 긴 논쟁을 했습니다. 발단은 이랬습니다. 은채가 갑자기 우유가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침 냉장고에 우유가 없다고 했더니 은채가 사오겠다고 한 겁니다. 엄마는 의외로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입모양으로 뭐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귓속말로 들었더니 “당신이 따라 갔다 와.”였습니다. 미행을 지시한 것이죠.

은채는 엄마에게 4천원을 받아서 집을 나섰습니다. 저도 잠시 후 몰래 따라 나섰죠. 제법 큰 슈퍼까지는 2차 선 차도를 따라 난 인도로 5, 6분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전 그동안 은채에게 들키지 않도록 적절히 거리를 조절하면서 미행했습니다. 은채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신나게 갔습니다. 댄스 스텝 밟듯이 폴짝 뛰어오르는 걸음을 종종 하면서 말이죠.


슈퍼에서 은채가 있는 걸 보고 전 반가운 마음에 다가 갔습니다. 그러자 은채는 불 같이 화를 냈습니다.

“왜 왔어. 나 혼자 왔다 갈 수는 있는데.” 은채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전 바로 제가 잘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은채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이죠.

“아냐. 아빠도 뭐 살게 있어서 왔어.”라고 변명 했습니다.

“그럼 나중에 따로 오지. 왜 지금 왔어.” 은채는 계속 따졌습니다.

전 더 이상 변명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은채가 걱정 돼서 빨리 와 봤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네가 조심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해. 아빠가 사과의 뜻으로 식혜 사줄게. 우리 화해하자.”

전 은채에게 아주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꼭 안아 줬습니다. 물론 식혜도 사줬죠.


슈퍼에서 전 먼저 결제를 하고 나왔습니다.

자기는 더 사고 싶은 게 있는지 둘러 볼 것이고, 자기가 산 건 자기가 갖고 있는 돈으로 결제를 하고 나갈거니 밖에 기다리라고 해서 말입니다. 전 슈퍼 밖에서 은채가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좀 있으니 은채가 계산하는 아주머니랑 나누는 대화가 들리더군요. 잠시 후 은채가 장바구니를 들고 나왔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오백미리 우유 하나와 호떡 모양으로 생긴 작은 빵이 여러 개 들어 있는 제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엄마도 왠지 좋아할 것 같아서 샀어.”

슈퍼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은채는 또 혼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말이죠.

“아빠, 아빠는 이쪽으로 가. 난 이쪽으로 갈게.”

전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채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길로 갔습니다. 걸어서 2,3분도 안 걸리는 길이었지만 전 걱정이 됐습니다. 다행히 이 갈림길은 한 줄의 주택가가 가르고 있는 것이기에 1층에 주차장을 만든 빌라들의 틈새로 은채가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채가 가는 모습을 몰래 보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은채는 오는 길에 어떤 할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아이고 예쁘다. 네 몇 살이고.”

“여덟 살이요.”

“오냐. 가거라.” 은채가 돌아서 가자 갑자기 할머니는 “예쁜이 사랑한데이.”라고 하셨답니다. 우리는 낯선 할머니가 애한테 말을 걸고 사랑한다고 말을 했다고 하니 그걸 핑계 삼아 그래서 엄마 아빠랑 같이 다녀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세상에는 네가 알지 못하는 의외의 사건과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은채가 어디든 혼자 가고 싶어 하는 열망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불가능하겠죠. 언젠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을 때 자기 힘과 지혜와 지식을 사용해 갈 것입니다. 집 앞 슈퍼 뿐 아니라 지하철로 네 정거장 떨어진 삼촌 집, 지하철 열 몇 정거장이나 가야하는 외할머니 집까지 말입니다. 그런 날이 오는 동안, 은채가 크는 동안, 엄마와 아빠의 담력도 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의 가능성의 크기에 엄마 아빠의 담력이 못 따라가서 아이를 평생 그야말로 아이로 남겨 둘 수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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