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기억들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32

by 최영훈

오늘은 같이 못 가...

딸은 수요일 새벽에 열이 났다. 별 다른 증상이 없고 미열이어서 일단 학교에 간다고 했다. 그전에 아침마다 같이 학교에 가는 예림에게 전화했다.

"오늘은 같이 못 갈 거 같아."


가는 길에 예림이를 만났다. 당연히 예림이가 물었다. "왜 같이 못 간다고 한 거야?", "아.. 내가 감기에 걸린 것 같아서. 너한테 옮길까 봐.", 예림이는 안도하며 말했다고 한다. "아.. 다행이다. 난 지유랑 손절해서 나랑도 못 가는 줄 알았어. 난 감기 옮겨도 돼. 같이 가자.".. 참고로 예림이는 지유랑 같은 반이다. 물론 딸은 안 된다고 하고 혼자 갔다고 한다. 예림이는 규랑이랑 뒤에서 쫓아왔다고... 이게 친구다. 감기가 나은 뒤부터 같이 가고 있다.

매화의 향기

등굣길, 유엔기념공원 후문을 지나친다. 그 후문 앞에 우리 지역에서 가장 멋진 매화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이게 피면 봄이 온 거다. 올 해는 유독 향기가 짙었다. 아... 매화의 향기가 이렇게 좋았구나. 이날 아침도 딸은 예림이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못 간다고 했다. 예림이는 알겠다고 했다. 대신 딸은 나보고 같이 가달라고 했다. 심심하다고...


따라나섰다. 매화나무에 다가 가는데 향이 다가왔다. "야~ 향 좋다. 무슨 향기 뿌려놓은 것 같다. 야.", "오.. 그렇네. 아빠, 무슨 껌 향기 같지 않아?", "아빠는 매화 향기가 이렇게 좋다는 걸.. 이제 알았네. 인생 헛살았다. 헛살았어. 야, 넌 좋겠다. 열몇 살짜리가 벌써 매화 향기 좋은 줄도 알고. 역시 학교는 좋은 데 다녀야 돼." 딸이 피식 웃었다.


직박구리가 사랑하는 매화

사진 속에 직박구리가 최소한 예닐곱 마리는 있다. 동박새도 한두 마리 정도 있고. 겨울에도 신나게 날아다니면서 까치와 영역 싸움을 하는 놈들을 보면서..."어이, 밥은 먹고 다니냐?"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겨울이 끝나고 꽃이 피고... 그 꽃을 먹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동백꽃은 안 먹던데 매화는 좋아한다. 입이 고급인 듯.(3월 9일)


재도전한 반장

이다음 주, 딸은 반장 선거에 나갔다. 4학년 때 한번 낙선의 아픔을 겪은 뒤라 안 나갈 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나갔다. 이번엔 조짐이 괜찮았다. 남자 친구인 주현이도 같은 반이고 3학년 때 친했던 지안이도 같은 반이다. 1학년 때 친구였던 하영이와 여린이도 한 반이 됐다.


작년엔 남학생 후보에게 남학생 표가, 여학생 후보에게 여학생 표가 몰렸는데, 문제는 여학생 후보가 두 명이었다는 것. 단일화에 실패한 두 후보에게 여학생 표가 분산됐고 어부지리로 남학생이 반장이 됐다.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은채는 학기 초부터 남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일종의 표밭 다지기라고나 할까? 여하간 그 결과, 과반을 넘어 얼추 70퍼센트 정도의 득표율로 반장이 됐다. 게다가 부반장도 친한 하영이와 지안이가 돼서 앞으로의 국정 운영, 아니 아니, 반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전에 영재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자기들끼리도 시험장에서 춤만 추고 와도 합격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경쟁률이 약했고 실제로 영재 시험을 본 딸 친구들이 다 합격했기에 난 그러려니 했다. 대신 외할아버지가 무지하게 뿌듯해하시고 좋아하셨다. 용돈을 챙겨 주신 건 두말할 것도 없고.

다시 만난 과거

영재 교육은 이웃동네인 문현동 문현초등학교에서 진행된다. 입학식은 3월 셋째 주 토요일에 열렸다. 입학식엔 내가 아내대신 참석했다. 뒷자리에 서서 듣는 둥 마는 둥 사회를 보는 선생님 말을 듣다보니 뭔가 개운치 않았다. 글 몇 개 쓴다고 영재가 되는 건지, 아니면 영재만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지 선생님 본인도 정확히 모르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했다. 불량 아빠다. 집에 와서 교재를 보니 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과 당국도 같은 곤란함을 겪고 있는 듯했다.


입학식에 와보니 동네가 낯이 익었다. 의지할 지인도, 가족도 없을 때, 여자 하나보고 무턱대고 부산에 처음 왔던 그 해, 아무것도 아닌 시절, 무엇도 안 되던 시절, 이 동네의 작은 보습학원에서 강사를 했었다. 벌써 20년이 흘렀고 동네는 재개발이 확정되어서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거나 이전했다. 보습학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익숙한 거리를 잠시 서성이다 보니 건물 하나가 익숙하다. 학원은 이 건물 2층이었다. 주변을 더 걸어보니 강의 사이, 밤 열 시쯤, 짬이 나면 저녁 삼아 어묵 몇 개를 먹었던 점포도 그대로였다. 물론 장사는 안 하지만.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버티고 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와보게 된다.(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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