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넷째주, 설, 성묘 - 외가의 선산, 고성을 오가는 길
전 설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 아내의 처가에 명절 인사드리러 갔을 때 방 곳곳을 채운 친척들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셔서 안계시는, 술 좋아하시던 셋째 처고모부님의 술 상대가 되어 드리던 것이 그립고요. 장인어른은 그야말로 보리밭만 가도 취하시는 분이라 제가 명절에 처가에 가면 “어 최서방 왔나. 고모부님하고 술 한잔해라.”라는 말부터 하셨습니다. 설에는 안주도 다채로웠습니다. 과메기도 처가에서 처음 먹어 봤고, 외항선 선장이시던 둘째 처 작은아버님 덕에 마구로라는 냉동 참치회도 처음 먹어 봤습니다.
은채가 어린이집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복을 입혀서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공손히 세배도 드리고 세뱃돈도 받았죠. 일곱 살 때부터는 제사상, 차례상 차리는 거에 관심을 갖고, 자기도 참여하고 싶어 해서 외할머니는 자잘한 소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 시켜 주셨습니다. 삼촌이 깎은 밤도 씻어보라고 하고, 나물을 담은 제기도 들고 가라고 시켰습니다. 차례나 제사가 끝난 후 밥 먹을 때는 숟가락, 젓가락도 놓으라고 시키고 간장이나 초고추장을 담은 종지도 갖다 놓으라고 시켰습니다. 은채는 부지런히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잔심부름을 했죠. 그래서 제사 때나 명절 때면 의례히 자기가 일손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올해는 모처럼 설 연휴가 길었습니다.
설 전날에는 엄마가 먼저 외가에 가서 음식 만드는 걸 도왔고, 설에는 아침 일찍 차례를 드리러 갔습니다. 차례를 드리고 삼촌 차와 엄마차를 나눠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할아버지 선산이 있는 고성으로 향했죠. 아빠는 은채와 삼촌 차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용한 엄마 차에. 평소보다도 막히지 않아서 금세 도착했습니다. 선산에 모신 조상님들께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 산 반대편의 엄마의 할머니 할아버지 모신 묘소에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도깨비풀이 극성이라 은채의 바지 곳곳에는 도깨비풀이 잔뜩 묻어 있었죠. 은채는 처음 경험하는지 당황했지만 걔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니 겁먹지 말라고 하고 하나하나 다 떼어줬습니다.
감전동 외갓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은채가 좋아하는 “휴게소 들르기”를 꼭 하기로 약속하고 출발했습니다. 차가 막히기 시작했지만 삼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 들려도 되는 진영 휴게소로 향했습니다. 삼촌이 은채와 함께 소떡소떡을 사는 동안 아빠는 음료수를 사러 편의점에 갔습니다. 거기서 반가운 얼굴을 봤죠. 울산 한 방송국에서 광고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잘 생긴 병오씨였습니다. 부산 지역에 오래 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역시 딸 바보인 병오씨는 좌석이 겨우 난 푸드 코트 한쪽에서 딸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가 다가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어깨를 툭 치니 겨우 고개를 들었죠. 고향인 남해에 들렀다가 처가인 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는 병오씨, 병오씨 아내와 반갑게 인사하고 급히 헤어졌습니다. 얼른 먹고 기장으로 향해야 할 테니까요.
소떡소떡을 먹고 있는데 삼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디가?”
“호두과자 쪽에 가서 한번 비벼 보려고요.”
“응? 안 돼 처남, 줄이 얼마나 긴 데. 은채도 줄 보고 호두과자는 안 먹어도 된다고 했어.”
은채도 화장실을 갔다 오면서 긴 줄을 미리 봤거든요.
“아니요. 매형. 제가 갔다 올게요.”
은채랑 소떡소떡을 다 먹었는데도 삼촌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은채는 걱정이 돼서 가 봤죠. 삼촌 앞에는 이제 세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삼촌은 봉지로 파는 것과 박스로 파는 것, 두 종류의 패키지를 샀습니다. 봉지는 은채한테 줘서 가는 차 안에서 먹게 하고, 박스는 단 거 좋아하시는 장인, 그러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잘 가져갔습니다. 결국 은채의 휴게소 삼종 세트는 완성됐습니다. 고성 옥수 휴게소의 명물인 반건조 오징어를 성묘 전에 사서 먹었고, 진영 휴게소에선 소떡소떡과 호두과자를 먹었으니까요.
이런 추억들은 아빠에겐 없는 추억입니다. 사실 전 외가, 친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가 어딘지도 모릅니다. 양가 친척들이 현재 어디 사는지도 모르죠. 중학교 때부터는 명절 때면 어디 안가고 그저 집에만 있었고, 평택에 살 때는 교회 어르신들에게 세배하러 다니는 게 전부였습니다. 결혼 이후에야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의 개념이 생겼고, 은채가 크면서 명절은 더욱 중요한 행사가 됐습니다. 특히 은채에겐 외가의 뿌리를 알게 되는 중요한 시간이고, 아무리 차가 막혀도 휴게소에 들러서 손녀에게 맛있는 걸 먹여야 직성이 풀리는 외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꼭 닮은 외삼촌의 사랑을 새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남은 설 연휴 대부분은 광안리의 삼촌 집에서 보냈습니다. 은채를 미리 데려다 놓고 은채가 손재주 좋은 삼촌과 미니 블록을 조립하는 동안 엄마 아빠는 집 청소를 할 수 있었고, 점심에는 삼촌 집에 가서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삼촌 동네에서 유명한 일본식 해산물 덮밥도 먹고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습니다. 은채에겐 은채가 원하는 것이라면 최대한 해주고 싶어 하는 든든한 삼촌이 있어서 더 행복한 명절 연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