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꽃을 보네 30
3층 아주머니가 빌라 화단에 심은 수국은 비가 없는 장마 기간에 탈진 직전이다. 녹아 없어질까 걱정될 정도다. 그 와중에, 초록색 대 두 개가 삐죽 올라왔다. 봉우리가 펠리컨의 부리처럼 길다. 설마 여기에, 하는 마음에 활짝 피길 기다려 보기로 했다. 며칠 후, 백합 두 송이가 피었다. 하얀 백합이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어쩐 일로,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아하다. 키가 크고 큼직한데 우아하다.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공간과 좌중을 압도하기 마련이나, 신화에서 걸어 나온 엘프처럼, 런웨이를 압도하는 북유럽 모델처럼, 백합 또한 평범하고 지루한 공간에 우아하고 하얀 곡선을 새겨 넣는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오셨나, 하는 생각에 며칠 지켜봤다.
여름을 달구는 꽃의 색은 오렌지색이다. 앞서 말한 능소화가 담장을 물들이며 쏟아져 내린다면 원추리는 오렌지색을 하늘로 뿜어낸다. 안에 품은 붉은 열정을 날 것 그대로 보이면 사람들이 놀랄까 봐 그 불꽃을 안에서 어르고 달래서 뿜어낸다. 하여 오렌지색 화염 곳곳에 빨간 불통이 튄다. 초록색 파이프를 통해 마그마가 솟아오르는 것 같다. 손을 대면 데일 것 같다. 이른 더위에 사람은 죽을 맛인데 불꽃은 태양을 삼켜 더 진해진다. 능소화가 여름방학에 들뜬 소녀라면 원추리는 여름밤의 탱고 댄서다.
한 여름에 닮은 꽃이 다른 색으로 핀다. 7월 초, 원추리는 태양과 시합 중이다. 더 달궈진 것 같다. 화단에 피었던 백합은 녹아내렸다. 며칠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국이 비가 없는 장마에 당황하여 흐물거리며 버티는 사이 백합은 버티느니 사라지겠다며 자취를 감췄다. 아마 하얀 꽃 중에서 가장 뒤끝 없이 지는 꽃이리라. 꽃이 사라진 자리에 초록 대만 남았다.
앞서 말했듯, 원추리는 신났다. 그 땅 밑으로 용암이라도 흐르는지, 아니면 꽃이 태양열을 흡수하는 재주라도 있는 건지 뜨거울수록 불을 뿜어낸다. 재미있는 건 실제로 이름에 불꽃이 들어간 꽃이 있는데 바로 원추리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불꽃나리이다.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그 불꽃이 원추리에 비하면 얌전하다. 오렌지 백합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차라리 그 이름이 어울린다. 불꽃은 원추리에게 양도하시라.
참고로 원추리는 백합과는 다른 종이다. 봄에 나오는 새순은 먹기도 하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 재미있는 건 원추리는 아스파라거스 목에 속한다고 한다. 반면 백합은 알뿌리 화초다. 이점은 튤립과 비슷하다. 만약 씨앗을 심는다면 꽃을 보기까지 4,5년 걸린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나리라고 부른다. 튤립, 장미와 함께 유럽 귀족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고유의 자생종도 열 종 정도 있다고 한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형제라도 외모도, 성격도 다르다. 나와 동생만 해도 그렇고 아내의 형제들을 봐도 그렇다. 반면 한 사람 내면에도 상충되는 면이 있다. 백합 같은 면과 원추리 같은 면이 공존한다. 비율의 문제이고 상황의 문제일 뿐 그 공존은 당연하다. 자라는 동안, 사회화되면서, 필요에 따라, 감춰지고 잘라지고 눌러지고, 좋게 말하면 다듬어지면서 나라는 하나의 전형, 타입이 만들어진다. 모든 게 가능했던 프로토 타입이었던 나는 그렇게 정교해진 존재로 살아간다.
딸은 춤도 잘 추고 운동도 잘했다. 지금도 춤은 잘 추지만 운동은 자제하고 있다. 근육이 많이 빠져서 가을부터 다시 만들어 채우기로 했다. 어렸을 때 영상을 보면 흥도 많고 표현력도 좋다.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전공을 해보라는 권유도 받아 봤다. 차분한 면도 있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면서 발표할 때는 떨지 않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면 서너 시간은 기본일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지만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방방 뛰어다닌다고 들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듯이 가리는 과목도 없다. 반면 싫은 유형의 친구와 좋아하는 유형의 친구는 있다. 어쩔 수 없다. 엄마처럼 집에서의 딸과 밖에서의 딸은 다르다. 사회적인 나와 자연인인 나의 구별과 구분이 확실하다.
종종, 그런 성격 때문에 엄마와 대화를 하다 욱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주말에도 그랬다. 사실 별 일 아니었다. 엄마와 어떤 친구에 대한 대화를 하던 도중, 딸은 그 친구에 대해 엄마한테 말했다고 했고 엄마는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딸은 며칠 전 말했다고 주장했고 아내는 못 들었다고 했다. 당연히 딸의 목소리가 커졌고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이럴만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했다 치고 계속 말해 봐.”했다. 그러자 딸이 버럭 화를 냈다. 왜 그래야 하냐는 거였다. 아내는 그냥 넘어갔고 대화를 이어갔다.
다음 주, 수요일, 딸과 함께 하교한 후 조용히 말을 했다. “은채야. 아빠가 며칠, 약간 심각해 보였지. 왜 그런지 알아?”, 딸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우리 하교할 때 부일외고 얘기 했지. 그 학교처럼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에 가면 너랑 엄마, 아빠랑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은 이년 반 정도 남은 거야. 네가 유학을 간다면 오 년 반 정도 남은 거고.”, 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랑 아빠 엄마랑 함께 산 시간을 따져보면 얼마 안 돼. 아빠가 오십이 넘었는데 그중 절반도 안 돼. 좀 있으면 네 엄마랑 산 시간이 더 길어.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가족이면 언제나 볼 수 있을 줄 알아. 그런데 따져보면 얼마 안 돼. 시집가고 장가가면 한 달에 한 번 보면 잘 보는 거고, 명절에 보면 다행인 가족들도 많아. 그러니 네가 엄마, 아빠랑 있는 동안 되도록 행복한 기억, 좋은 시간만 만들어. 그러기에도 짧은 시간이야.”, 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네 친구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아침에 나오면서 짜증 내고, 저녁에 들어가면서 짜증 내고, 친구랑 있을 때는 그렇게 잘 웃으면서 집에서는 웃기는커녕 말도 못 걸게 하지. 그렇게 몇 년 지나면 금방 스무 살이고 대학 가고, 그렇게 몇 년 지나면 취업하고 결혼하고 그러는 거야. 엄마, 아빠랑 얼굴 보고 매일 저녁 먹는 거, 몇 년 안 되는 거야. 아빠는 네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저녁을 같이 먹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질 줄 상상도 못 했어.”, 딸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마 네 반 애들, 수업 시간에 자고 그러는 애들, 공부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할 거야. 인생 길고, 나는 어린데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공부가 직업인 사람을 제외하면 진짜 제대로 된 공부하는 기간은 몇 년 안 돼. 나중엔 바빠서, 늙어선 체력이랑 머리가 안 돼서 못해. 의외로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랑 있는 동안 별 거 아닌 일, 사소한 것들로 목소리 높이고 짜증 내지 마. 우리가 서로 얼굴을 보면서 지낼 시간이 의외로, 정말 의외로 짧을 지도 몰라.”
백합은 핀지 일주일도 안 돼 사라졌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하는 데, 그보다 짧다. 능소화는 여름을 버티지만 대부분의 꽃은 길어야 한 달, 짧으면 한 주나 열흘 안에 사라진다. 기다린 시간보다 보는 시간은 그렇게 짧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시간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시절이 있는가 하면, 일 년이 일초처럼 느껴지는 시절도 있다. 수영장의 물처럼 무한정 넘쳐흐르는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는가 하면 사막의 조난자의 손에 들린 마지막 한 병의 물처럼 귀한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시절도 있다. 또, 그런 사람도 있다. 세월은 나이 따라 상대적이고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기도 하다. 물론 후자의 경우보단 전자의 경우가 일반적이다. 살날이 많은 사람보다 살날의 끝이 뒤꿈치에 닿은 사람들은 남아 있는 시간이 아까워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 재촉은, 어쩌면 죽음으로부터 줄행랑인지도 모른다. 쫓는 이나 쫓기는 이나 그 결과를 다 아는 줄행랑이다. 언젠간 잡힌다.
저마다 뜨거운 부분과 차가운 부분이 있다. 육체적인 면이 있고 정신적인 면이 있다. 흥분시키는 것과 가라앉히는 것도 있다. 그 양면을 잘 조절하며 사는 것이 어쩌면 소위 평범한 삶, 일상을 꾸려가는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나 또한 뜨겁고, 육체적이며 흥분시키는 부분은 수영에 쏟아내고 있다. 일도 그런 부분 중 하나다. 딸에게도 그런 양면성이 있다. 내가 그러했듯 딸도 스스로 그것들을 조율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나갈 것이다.
그러다 불쑥 언젠가 깨달을 것이다. 세상에 맞춰 살아가느라 잊고 잃었던 자신의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는다면 그 면에도 인생의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너무 늦었다면 후회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다 인생이다. 열심히 살아낸 것이다. 어떤 경우든, 딸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은 멈추지 않길 바란다.
7월 둘째 주 화요일, 일주일에 한 번 작업실에 출근하는 날, 좀 늦었다. 딸의 교복을 빨아 널고 나갔기 때문이다. 막 작업실에 들어선 날 데리고 감독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열두 시는 고사하고 아직 열한 시도 안 됐을 때였다. 랭글러를 타고 문수산 초입의 언덕길을 오르면서 감독은 메뉴를 물었다. 콩국수와 소바. 난 소바를 먹자고 했다. 잠시 후 산장을 닮은 식당에 들어갔다. 돈가스와 세트로 나온 소바를 맛있게 먹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얘기를 하자고 했다. 감독은, 정확히 말하면, 해고를 통보했다. 일종의 계약해지라 봐도 무방하겠다. 감독은 감독의 사정이 있었다.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이 쉰이 넘어서 실업자가 됐다. 공식적으론 8월부터 어디 갈 데가 없는 사람이 됐다. 졸지에, 원래 꽃에 얽힌 딸과 나의 추억을 얘기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딸의 투병기에서 회복의 이야기로, 실업자가 된 내 이야기로 이어지게 됐다. 긴 얘기는 다음 주에 하자.
연재 브런치북은 30화까지라, 2권으로 계속 연재를 이어나가려 한다. 아직 우리에겐 가을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내 얘기도.
커버 사진은 내가 준 두 장의 사진을 딸이 합성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