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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향기, 오래가는 사람

딸과 함께 꽃을 보네 28

by 최영훈

6월, 치자꽃의 향기

말 그대로, 거짓말처럼, 선거가 끝난 후,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6월 셋째 주 화요일, 모처럼 미팅을 했다. 장애인 체육관의 이십 주년 기념 영상 관련이었다. 세 명의 직원이 나와 감독을 맞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관장이 들어와 사온 커피를 내려놓는 사이, 잠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봤다. 감독의 랭글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하얀 꽃이 보였다. 고광나무 꽃인가, 혼자 생각했다.


미팅이 끝나고 꽃을 찾아갔다. 하얀 별 모양의 꽃이 피어 있었다. 은은한 향기가 내게 거리를 두고 보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의 꽃 폴더에 들어가니 2021년 6월 19일, 집 근처 평화공원의 수목원에서 찍은 꽃치자의 사진이 있다.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그 앞에 있던 이름 표지판까지 걸어 찍었다. 수목원의 나무는 말차 아이스크림콘처럼 동그랗게 정리되어 있었다. 꽃은 하얀 별사탕 토핑처럼 점점이 피어 있었고.


6월 마지막 주 월요일, 전날 아침 일찍 회의가 잡힌 아내가 일곱 시에 집을 나서야 해서, 딸은 나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기로 했다. 음악 수행 평가가 있는 날이라 바이올린도 들고 갔다. 다행히 맑았다. 함께 천천히 걸으며, 얘기를 하며 걸어가 교문에서 짐을 넘겨줬다. 교문 안쪽엔 파란 수국이 피어 있었다. 딸에게 천천히 걸어 올라가라고 몇 번의 당부를 한 후, 그렇게 느릿느릿 걸어 올라가는 딸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돌아섰다.


학교에 갈 때는 문화회관 앞뜰을 건너가는, 비교적 평지 코스로 걸었지만 혼자 집에 돌아올 때는 시작부터 언덕으로 치고 올라가는 문화회관 뒤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교문을 등지고 돌아서자, 학교 앞에 있는 낮게 엎드려 있는 단독 주택의 담장 너머로 이제 막 피어난 능소화가 보였다. 그 집을 끼고돌아 고개를 넘어가 문화회관 뒤편에 다다르니 익숙한 향이 말을 걸었다. 치자 꽃이었다. 울산에서 본 종류와는 다른, 꽃치자 나무였다.


아내에게서 나는 향과 닮아서 유독 더 좋아하는 꽃이다. 그 향을 오래 쓴 아내에게는 늘 치자꽃 향기가 난다. 오늘 아침, 커피가 담긴 내 잔을 자기 잔인 것처럼 들고 한 모금 커피를 마시는, 출근 준비를 끝낸 아내에게서 치자꽃 향기가 났다.

왼쪽은 꽃치자, 오른쪽은 치자나무 꽃이라 부른다. 왼쪽은 문화회관 뒤 편에서, 오른쪽은 장애인 체육관 쉼터에서 찍었다.

치자꽃 두 송이

치자꽃을 보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아내와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아내는 부산에서 평택까지 손수 운전을 해서, 또는 새마을호를 타고 날 보러 왔다. 그 어느 날, 아내와 나는 집에서 영화를 봤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쿠바의 전성기는 1920년 대, 금주령 이후였다. 미국에서 금주령이 시행되자 유흥을 즐기고 싶던 갱과 유명인사들이 플로리다에서 2백 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쿠바, 특히 하바나로 몰려들었고 덕분에 시가와 쿠바의 음악이 두 나라를 오갔다.


그 이후 1950년대 초반, 쿠바 혁명이 있기 전까지,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고립되기 전까지 쿠바의 음악가들은 재즈와 보사노바, 삼바 등이 묘하게 어우러진 밴드 음악과 나른하면서도 힘 있는 보컬을 앞세워 한 시대를 풍미했다. 혁명 이후, 그들의 음악은 쿠바에선 명맥을 이어갔으나 세계의 무대에선 사라졌고, 그들의 소식은 밖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 사라진 전설들을 세기말이 되서야 찾아 나선, 본인 역시 전설적인 음악가인 라이 쿠더의 행보를 뒤쫓아 갔다. 이 영화에서, 당시 칠순이 넘은 이브라힘 페레르가 부른 노래가 중 하나가 <Dos Gardenias>, 치자꽃 두 송이다.


사랑 노래다. 일흔이 넘은 남자가 사랑 노래를 부른다. 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그의 인생에서 음악이 현재 진행형이듯 사랑 또한 그랬기에 사랑의 상실을 그렇게 사무치게 부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 하나에 열정을 바친 시간은 그렇게 고스란히 인생에 흔적을 남긴다.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흔적을, 문신 같은 그 흔적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사람은 늙지만 그 흔적은, 그 열정의 흔적은 늙지 않는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내게 남긴 교훈이었다.


일희일비하지 마라

딸이 다니는 수학 학원에선 테스트를 한다. 딸한테 전해 듣기로는 그걸 CT라고 부른다. 딸은 현재 본행, 선행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소위 CT도 1학년 과정, 2학년 과정, 심지어 3학년 과정까지 친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떤 시험에서든 만점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 녀석이라 이 낯선 CT를, 그것도 그 수학을 수차례 반복해서 공부한 애들과 함께 치름에도 불구하고 딸은 좋은 성적을 기대했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본행은 물론이고 선행조차 수차례 해 온 아이들에 비해 십오 점 정도 점수가 낮았다. 시험 자체도 처음이다 보니, 어쩌면 저런 결과가 당연하지 싶다. 그러나 딸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학원 차에서 내리는 딸과 집을 향해 걷다가 무심히 “어땠어?”하고 묻는 순간 눈물이 뚝 떨어졌다. 점수를 말하며 억울해했다. 나한텐 당연한 건데, 자기한텐 아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하나는 마라톤 대회에서의 페이스메이커 찾기다. 삼심 대 초반, 마라톤에 심취해 있을 때 대회를 자주 나갔었다. 그때가 마라톤 붐의 첫 번째 물결이 불 때여서 부산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수천 명이 몰리곤 했다. 이런 대회를 나갈 때, 제법 달린 경험이 있고 대회 경험도 있는 러너라면 목표 기록을 설정하고 간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시계를 차기도 하지만, 가장 쉬우면서도 마음이 놓이는 방법은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뛰는 것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대회마다, 또는 큰 마라톤 동호회마다 페이스메이커를 정해놓는다.


관건은 페이스메이커를 찾는 일이다. 물론, 페이스메이커는 찾기 좋으라고 10킬로미터, 하프, 풀코스 등 거리와 기대 기록이 적힌 큰 풍선을 달고 뛴다. 그러니 러너는 자기가 원하는 풍선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몇천 명이 참가하다 보니 대열의 중간이나 끝 쪽에서 출발하기 십상이다. 반면 페이스메이커는 러너들의 표적이 되기 위해 앞줄에서 출발한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고 러너들이 우르르 몰려 뛰다 보면 사람들에 휩쓸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대열이 좀 흐트러진 뒤, 적당한 속도로 뛰면서 풍선을 찾아야 한다.


찾았으면 합류해야 한다. 일단 그 무리에 합류했으면, 우선은 처지지 않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페이스메이커를 믿고, 함께 뛰는 이들의 속도와 리듬에 익숙해질 때까지, 마치 그 무리와 한 몸처럼 뛸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지만 그 속도와 리듬이 내 것이 될 때까지 그 무리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 딸이 겪고 있는 상황이 딱 이런 상황이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보다 한 달이나 늦게 학교에 출석했고, 수학 학원은 다녔던 친구들보다 길면 이삼 년, 짧게는 반년에서 일 년 정도 늦게 갔다. 그렇게 늦게 간 학원에서 한 달 반 만에 중3 선행을 하고 있는 반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그 속도와 리듬에 익숙해져야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수영이다. 어떤 운동이든 특정 종목을 오래 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더 이상 배울 것도, 익힐 것도 없어서 기초 및 기술 연습이나 체력 훈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한 부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선수나 유명한 코치, 강사들의 영상을 보며 자신의 폼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체력을 위해 몸에 안 좋은 걸 삼가고 그 나름의 훈련을 하는 부류다. 난 후자에 속한다. 지금도 좋아하는 수영을 조금이라도 더 우아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그러면서도 몸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하면서 할 수 있도록 궁리와 노력을 하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매일 합기도 수련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갈고닦는 것과, 닮았다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두 부류 중, 어느 부류든 일정 수준 이상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매달 새로운 사람이 수영장에 나오지만 이 중 고급반까지 오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두 명 정도다. 이건 우리 수영장뿐만 아니라 전국 공통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우선은 예상했던 것보다 수영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들고 그 과정에서 자기 몸의 한계를 절감하며 그 몸뚱이를 저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야, 지금 몇 달째인데 아직도 접영을 못하냐.’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버텨야 한다. 우선은 한 달이면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마스터할 거라는 기대부터 곱게 접어 넣어둬야 한다. 운동 신경이라면 누구한테 뒤지지 않으니 아무리 오래 걸려도 두 달이면 되지 않겠냐는 오만한 생각도 넣어둬야 한다. 자유형을 일주일 만에 해버렸으니 다른 영법도 그 정도 시간이면 되지 않겠나, 하는 산술적 계산도 넣어둬야 한다. 자신의 현재의 몸 상태를 받아들이고 강사의 예언, 당신의 기대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라는, 악몽 같은 예언을 받아들여야 한다.


수학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이제 겨우 두어 달 됐다. 일희일비하지 마라, 욕심 내지 마라, 일정 점수를 정해놓고 그 정도만 꾸준히 맞아가며 상반기를 버텨내고 후반기부터 어깨를 비벼보겠다는 생각 해라. 그렇게 딸에게 이야기해 줬다. 이후의 CT부터는 더 담담하게 해나가고 있다.


세월을 견디는 힘

실력은 쌓는 것보다 유지가 어렵다. 무엇을 성취하는 것보다 그 관리가 더 어렵다. 대를 이어가는 맛 집이, 대를 이어 갈수록 더 잘 되는 집안이 대단한 이유다. 하다못해 개인의 건강이나 체형도 그렇다. 얼마 전, 아내와 얘기를 하다가 내 몸매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랬다. 딸을 낳기 전, 사십 대에도 수영을 잠시 했었고, 그전에도 몸은 건강한 편이었는데, 쉰이 넘어서 다시 수영을 하게 되면서 몸매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같은 반 총각들이 무슨 운동하시냐고 묻고, 그다음엔 나보나 나이 많은 누님들이 아주 대놓고 칭찬하더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놀라며 말을 붙였다. “흰머리 많은 아저씨치고는 몸매가 좋은 게, 신기한가 보다.”


함께 같은 반에서 운동하는 일흔이 넘은 어르신을 볼 때마다 늘 반복하여 다짐한다. 저 나이 때까지 저렇게 수영을 하고 아랫사람에게 존경받을만한 말씨와 품위를 유지하자고. 남한테 보여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야 그걸로 돈을 버니 어떻게 해서든 그럴 수 있다. 차승원이 그렇고 유재석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도 쉰이 넘어가면, 심지어 결혼을 하고 나면 금방 살이 찌곤 한다. 일반인인 내 경우엔, 동기가 분명했다. 마흔에 딸을 낳았으니 이 녀석이 사춘기가 되어 아빠의 외모를 평가할 때까지는 그럭저럭 외관을 유지해 주자는 것이 내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다.


한 시절 뜨겁게 사는 건 누구나 가능하나, 마음속에 군불 같은 뜨거움을 품고 평생을 사는 이는 흔치 않다. 우리의 늙음이 신체의 힘과 함께 그 열정까지 뺏어가기 때문이다. 젊다고 다 열정적이진 않지만 늙은 사람 중에서 열정적인 사람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마음속에 열정을 가졌다고 해도 그 열정이 육체적으로, 외형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이를 먹은 뒤에도, 은퇴한 이후에도, 일흔이 넘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힘써 공부하고 운동하여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갈고닦는 어른이 존경받아 마땅한 이유다.


딸도 알 것이다. 잠시 잠깐 유행하는 책을 넘겨 보거나 성적을 위해 수학이나 역사를 바짝, 열심히 공부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평생 지적인 자산으로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그 독서와 공부라는 행위 자체를 평생 이어하여 죽을 때까지 지적인 존재로 사는 건 더 어렵다는 것을, 쌓여 있는 것을 유지하고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래야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나태라는 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살 수 있다. 영화 <세븐>에 나오는 그 죄를 말이다. 물론 그렇게 얻은 것이 교만이라는 죄로 이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커버 사진은 남원의 서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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