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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꽃이 피었다.

딸과 함께 꽃을 보네 29

by 최영훈

서두른 능소화

능소화가 피었다. 이르다. 능소화는 보통 음력 6월 중순쯤 핀다. 올해 처음 능소화를 만난 것이 6월 넷째 주 초반이었다. 이르지 않나 싶어 달력을 봤다. 음력으로는 아직 5월 말이다. 7월로 넘어가 둘째 주나 되어야 음력 6월 보름이 된다. 그러니 이르다 한 것이다. 달력을 보다 보니, 7월 말에 음력 6월이 한 번 더 온다. 올해가 윤년이라 음력 6월이 한 번 더 오는 것이다. 7월 25일에 다시 음력 6월 1일이 시작하여 8월 22일까지, 한 달가량이 지난 후, 음력 7월이 시작된다. 능소화가 핀 후, 한 달쯤 지나면 음력 7월 백중인 내 생일을 맞이하는데, 올해는 능소화가 핀 후 두 달이나 지나야 내 생일을 맞이하게 생겼다. 능소화는 자연의 순리에 맞춰 피어야 할 때 핀 듯하다.


딸과 함께 동네와 인근 공원에 핀 꽃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후 여름마다 이 꽃을 기다려 봤다. 마침 앞집 주인장이 이 꽃을 잘 키워 여름이면 담장 밖으로 오렌지색 능소화가 쏟아져 내렸다. 덩굴장미처럼 뿌리와 줄기의 주인은 집 안에 있으나 꽃의 호사는 이웃이 누린다. 감사한 일이다. 이것도 일종의 보시로 봐야 하지 않을까? 능소화의 덩굴은 무성해질수록 바닥을 향하는데 그 줄기에 색소폰처럼 매달려 피는 꽃들은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든다. 능소화가 핀 담장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꽃은 꽃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아름답게 담기는 이유다.


능소화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내가 아는 이야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궁에 들어간 궁녀 중 왕의 눈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반년을 보낸 궁녀들이 이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그 세월을 체감하여 긴 한숨을 짓곤 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도 이와 비슷한데, 왕의 총애를 받던 궁녀가 궁내의 알력 싸움 끝에 외면당하여 왕을 기다리다 지쳐 죽었는데, 그 자리에 핀 꽃이 능소화라는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영광과 함께,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다. 전자의 꽃말은 그 모양새로부터 나왔을 테고, 후자의 꽃말은 그 꽃에 담긴 사연과 이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름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리라.


능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우리가 흔히 보는 능소화와는 달리 생긴, 작고 빨간 능소화도 있는데 이를 미국 능소화라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오렌지 색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지인데, 중국인들은 이 능소화보다 미국 능소화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들만의 빨간색 사랑 때문이다.


가족의 조건

아빠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자식은 흔치 않다. 나도 내 부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차라리 처가 어른들의 취향을 더 많이 안다. 가족에 대한 앎은 함께 보낸 세월에서 나오는 것이지 등본이나 초본, 가족관계증명서에 명기된 공식적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문서 안에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으로 표기된 사람이라고 다 가족이 아니다. 그저 혈육일 뿐인 경우도 많다. 가족이라는 건 서류상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낸 세월, 그 세월 속에 주고받은 사연과 함께 넘어온 인생의 파도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 가족은 아내와 딸뿐이다. 장인, 장모, 처남도 내가 좋아하는 꽃이나 작가를 모른다. 반면 아내와 딸은 안다. 딸과 함께 능소화를 보며 지낸 매해 여름동안 딸은 이 꽃이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꽃임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꽃의 모양뿐만 아니라 그 색 또한 아빠가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오렌지색이니 능소화가 아빠의 꽃이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아빠의 꽃이 피면 아빠의 생일이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다. 꽃은 계절의 첫 문장이자 계절과 계절을 구분 짓는 쉼표이자, 한 계절의 끝을 알리는 마침표이기에, 능소화가 피면 여름이 온다는 것도, 수국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명확히 아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능소화가 아빠의 꽃이라는 걸 안다.


부르지 못한 이유

6월의 마지막 주, 멈칫한 장마 대신 이른 더위가 부산을 달궜다. 월요일 오후 딸을 데리러 갔었다. 땡볕을 피하면 좀 덜 더울까 싶어 양산을 들고 갔다. 음악수행평가를 위해 자기 바이올린도 들고 갔기에 무거운 가방과 함께 들고 진입로를 내려오기엔 힘겨울 것 같아, 늘 기다리던 곳보다 조금 더 학교 쪽으로 올라가 기다렸다. 딸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마침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기에 전화를 했다. 받질 않았다. 길 건너편에 있던 딸이 지나갔다. 자동차 두 대가 빠듯하게 교차하는 좁은 이면도로이니 이쪽에서 부르면 저쪽에서 들리는 것이 틀림없으나 부르지 못했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켜진 자동차 안에서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햇볕이라도 피하면 그나마 좀 낫겠지 않나 싶어 얄궂은 양산 하나 들고 갔다. 아빠를 만난다고 해서 딱히 시원해지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길을 사이에 두고 나도 걸어 내려가 원래 만나던 곳에서 만나 양산은 건네면서 짐을 받아 들었다. 집에 에어컨이라도 틀어놓고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 버릇이 이런 후회를 불렀다.


이날 있었던 일을 잠자리에 누워 아내에게 얘기해 줬다. 말문은 딸의 꿈 이야기가 열었다. 딸이 처음 자신의 꿈을 얘기했을 땐 들어 넘겼다. 그러려니 했다. 헌법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올 때도 그러려니 했다.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내 예상대로 딸은 분야와 작가를 옮겨가며 책을 빌려 왔다. 그러나 꿈은 바뀌지 않았다. 그 꿈을 향한 진학 과정도 구상해 놨다. 유학 이야기도 꺼냈다. 그때도 그러려니 했다. 6학년이 되면 바뀌려니, 중학생이 되면 좀 현실적인 희망을 얘기하겠거니 생각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자신의 담당 의사를 볼 때마다 멋있다고 하기에 바뀔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바뀌지 않았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에 도전할 때부터, 시 영재 시험을 볼 때부터 기대 없이 하라고 했다. 하고 싶으면 도전해 보라고 했다. 딸은 그렇게 담담히 꿈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밀고 나갔다. 투병도 막지 못했다. 그런 딸을 보면서 걱정을 했다. 과다한 공부의 양과 어려운 시험과 진학의 높은 벽과 그 이후의 만만치 않은 도전, 객지 생활과 심지어 외국 생활까지. 그 모든 걸 딸이 감당할 수 있을지, 또 우리는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얘기는 딸을 부르지 못한 오후의 일로 이어졌다. 그때 들었던 내 마음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살면서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한 적 없다. 저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 신경 써 본 적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지 못한 것도 아니다. 돈 생각 안 하고, 승진이나 사회적 명성 같은 것도 신경 안 쓰고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다가 나이를 먹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은 게 무섭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요즘엔 자식이 제일 무섭다. 그 자식이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지, 오늘의 나를 어떻게 볼지 그게 두렵다. 그렇게 아내에게 털어놨다. 아내는 딸이 알 거라고 했다. 아빠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아이가 어릴 때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가 생각했다. 아니 그거면 다라고 생각했다. 크면서 아빠의 역할은 더 많아졌다. 그 역할 중, 어떤 것은 그럭저럭 잘한 것 같지만 어떤 것은 낙제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세월 속에 깨달았지만 ‘아빠’는 아이에게 가장 완벽한 존재여야 한다. 그러려고 애를 썼다. 아이가 컸고 보는 눈이 생겼고 이제 사람 대 사람으로, 우린 서로의 장단점을 보면서도 못 본 척해주는, 부녀, 가족이 됐다. 그런가. 가족은 그렇게 참아줘야 하는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자식이 무섭다.


능소화를 보는 저녁

올해 설은 1월 29일이었다. 이후 2월 3일이 입춘이었다. 2026년의 설은 2월 17일인데, 입춘은 2월 4일이다. 음력의 한 해가 끝나기 전에 입춘이 두 번인 것이다. 이런 해를 쌍춘년이라고 한다. 음력으로 한 해에 봄을 두 번 맞는 것이니 특별하고 특이한 해다. 인생에 봄을 두 번 맞는 것은 불가능해도 한 해에 이렇게 봄을 두 번 맞는 건 가능하다.


능소화가 폈다고 한여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만개하지 않았다. 제대로 핀다면 줄기에 빈 틈 없이 달려야 한다. 어쩌면 올해 능소화는 더 오래 필지도 모르겠다. 음력 6월이 두 번 아닌가. 능소화를 오래 봐서 좋은 여름이나 더위도 길까 걱정이다. 딸은 더위도, 여름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기 계획대로 시간을 밀고 나갈 뿐이다. 틈이 나면 가끔 저녁나절 외출하여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 능소화를 구경하는 것이 그 아이의 최대의 휴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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