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음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

by 친절한 햇살씨

7반은 1학년 전체 반 중, 수업하기에 ‘가장 좋은 반’이었다.


어쩌다 수업에 늦어도 모든 아이들이 떠들지도 않고 바르게 앉아 있다가 앞문을 열고 들어서면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맞아주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내용을 물어보면 대답도 잘하고, 수업 중간 중간에는 얼마나 센스 있는 말을 잘 하는지 정말 ‘수업할 맛이 나게’하는 반이었다.



수업하기 가장 좋았던 반, 떼쓰는 반으로 변하다

이러던 반이 2학기가 시작되자 무너졌다. 종이 울려 교실에 들어가도 교실 안에서 잡기놀이(?) 중인 아이들도 있었고, 앉으라고 이야기해도 계속 서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가 하면 책이 없어 수업 도중 사물함에 오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방학 모드에서 개학모드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으나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업 들어가서 몇 번이나, “너네, 1학기에 내가 알던 7반 맞니?” 하고 되묻곤 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또 너무나 해맑게 “네! 맞아요!”하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는 교실에 들어가서 미처 교과서를 펼치기도 전에 “선생님! 오늘은 영화 봐요!”, “오늘은 공부하지 마요!”, “불금인데 좀 쉬어요!”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에, “불금은 집에 가서부터 즐기도록 하고, 영화는 진도 다 나가고 나면 12월에나 보도록 하자!”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자꾸 되풀이 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 금요일 수업에도 또 아이들의 아우성이 시작됐다.


쌤! 영화요!



왜 맨날 수업만 해요!


놀아요!


순간, 화가 났다. 그래서 부드럽게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진지해지고 말았다.



7반! 너네 도대체 왜 이러니?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
수업시간에 영화는 왜 봐야하는데?
수업시간에 수업을 안 하면 뭐해? 응?
왜 자꾸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마음 상하게 하니?
너네가 자꾸 이러면
선생님도 수업 재미있게 할 맛이 나겠어?
앞으론 절대 이런 이야기 하지 마!
알겠어?



이렇게 톡 쏘아붙이자, 저 뒤에 있던 한 여학생이 소심하게 한마디 했다.




저희가 다 그런 게 아니라
남자애들 몇몇이 그런 건데요...


순간, 아차 싶었다. 맞다. 목소리 큰 남학생 몇몇이 한 이야기였는데 아이들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혼자 더 화가 나서 전체에 대고 화내고 혼낸 것이다.



그러게.
몇몇의 이야기로 전체가 잔소리를 듣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자.
분위기는 몇몇에 의해서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바뀌기도 하는 거야.
이왕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알겠지?



이렇게 이야기 하고선, 화가 나고 그래서 약간 흥분되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업을 했다. 그 다음 주에는 안 그러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웬걸, 다음시간에 들어가니 또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물었다.



얘들아!
아니, 통할 것 같은 사람한테 이야기를 해.
샘이 통할 것 같아?
처음에 안 된다고 했으면 포기를 할 줄도 알아야지.
왜 끝까지 집요하게 이렇게 이야기해서 혼나고 이러니?


내 말에, 혼나던 남학생 한명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희는,
‘포기’라는 것을 모르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긴장으로 부풀어 있던 나의 격한 감정이 한순간에 푹 꺼지면서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참 훌륭하다!
‘포기’를 몰라서!
대단해요 대단해!


이렇게 칭찬할 수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수업을 했다는 사실은 아마 다 짐작하시리라.


나는 애들이 귀엽게만 보이던데

내후년이면 정년을 하시는 선생님과 같이 1학년을 하는데, 수업을 들어가는 길에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7반 요즘 어때요?
애들이 2학기 되어서 흐트러진 것 같아요.
수업 들어갈 때마다 영화 보여 달라고 하질 않나,
놀자고 하질 않나, 떼를 쓰네요.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시고 빙긋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래요?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애들이 귀엽게만 보이던데.


순간,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을 쿵. 울렸다.


수업을 다녀와 곰곰이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보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해도 귀엽게만 보이시다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라 나는 지금 아이들을 ‘어떤 마음’,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한 명 한 명의 인격으로 보기보다는 “반”이라는 ‘전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 ‘전체’가 조용하고, 순종적이고, 차분하게 앉아만 있는 것을 바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 새 학기가 되면 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영혼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교사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또 그런 삶이되길 꿈꾸지만 매일의 수업이 일상이 되고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되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한 영혼’이 아닌 ‘1학년’ 혹은 ‘몇 반’으로 아이들을 지칭하게 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었다.


거기에다, 수업 중 특별히 수업을 힘들게 하는 아이에게나 의도치 않게(?) 특별한 관심을 쏟게 되고, 조용하고 차분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숱한 아이들 한 영혼 한 영혼에게는 더 깊은 관심과 사랑을 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시 붙잡아야할 첫 마음

신규시절, 그때 나의 ‘첫 마음’은 어땠던가. 수업 중 아이들이 던지는 농담 한마디가 뭐라고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메모해 두었다가 교단일기로 적어보고 또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가.


쉬는 시간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이 종달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귀엽고 예쁘게만 느껴지지 않았던가.


우리 반이 아니라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라면 내 새끼들 같은 느낌 때문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고 마음이 더 머물지 않았던가.


문득, 사랑했던 첫 마음 빼앗길까봐 해가 떠도 눈 한번 뜰 수 없다던 시구가 떠오른다.


나는 그 첫 마음 빼앗길까봐 걱정이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 점점 잃어가는 그 첫 마음 붙잡고자 어떠한 노력을 했던가.


사랑은,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 아래에서 더 충만하게 할 수 있는 법.


내 힘과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음을 잘 알다. 그렇기에 다시금 그 ‘첫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흘려보낼 그 사랑 내 안에 가득히 부어주시길 조용히 기도할 수밖에...



2017.11.0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