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 생각을 씁니다 #2

반창고를 안 떼서 다행이야

by 김아침

하늘을 나는 로망을 항공업이라는 특수산업에 근무하며 이루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로 눈을 돌려 다양한 영역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송수단을 주축으로 하는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제 글은 총 3가지 주제로 이뤄집니다. 항공업 경험에서 파생된 '[FLY] 비행기를 삽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겪은 이야기를 '[DRIVE] 자동차를 팝니다', 그리고 찬찬히 걸으며 머릿속에 정제했던 생각을 담은 '[WALK] 생각을 씁니다'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소소하게 풀어 내려합니다



한참 무릎이 안 좋았다. 무릎연골연화증 진단을 받고 매주 무릎에 주사를 맞고 지냈다. 누가 보면 운동을 과하게 하여 얻게 된 부상 같으나, 대단한 운동을 하고 있지도 않아 억울할 따름이다. 뛰는 것은 물론이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다시 말해 거동이 힘드니 우울하기까지 했다.

주말 아침 혼자 한강공원에 천천히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걸어 나가면 한 주간 쌓인 생각의 무게와 복잡함은 하나씩 덜어져 새로운 생각과 공기를 가득 불어넣을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볕이 괜찮은 벤치를 찾아 앉아 한참을 멍을 때리고 있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가져다주는 좋은 풀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바람이 가져온 또 다른 선물이 있었다.

어느새 할머니 한 분이 벤치에 앉아 나를 유심히 보고 계셨나 보다.
"여기에 주사 맞은 거예요?" 물음에 놀라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께서는 어제 주사를 맞고 무릎에 붙인 반창고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답하고 당황하는 사이, 더 가까이 앉으시더니 본인께서도 고생해서 안다며 벌써 무릎에 주사를 맞으면 어쩌냐 걱정을 한가득하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몰토크. 요즘 뭐가 맛있는 과일인지, 아우 그래 요즘 복숭아가 맛있어. 이 앞에 총각네(과일가게)가 괜찮아, 거기서 사 먹어봐요.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고 고생하네. 요즘 다 어렵다는데. 이 동네에 얼마나 살았는지, 나는 여기 산 지 오래됐어요. 동네가 살기 좋아요. 그렇게 본인 가족 이야기 한 구절, 내 이야기 한 구절을 뽑아내셨다. 이 동네 유재석이실까.

한참을 애정 담긴 대화를 하시다가, 할아버지께 가봐야겠다며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 할머니께서는 마지막까지 건강 잘 챙기고 즐겁게 살라고 하시고는 두 팔을 크게 벌려 큰 원을 만드셨다.
"앞으로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바라요~~~~!" 활짝 웃으시고 멀어지셨다.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가 기분 좋은 주문 같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이 취해있었다. 낯선 누군가에게 받는 예상치 못한 위로가 이렇게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가끔은 가까운 누군가에게 듣는 말보다 더 큰 힘을 준다. 무조건적인 응원이라서 그럴까.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스웨덴 수행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인용된 이 구절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과 사람 간에 나누는 정을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하니 이렇게 온몸이 따듯해지고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지, 친절한 몇 마디가 주는 힘을 역체감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을 쓴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도 친절함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용기나 대담함이나 너그러움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친절함.
'당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됐다.'라고 말한다.

언뜻 어렵지 않은 듯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절대 쉽지 않은, 친절한 어른이 더더욱 되고 싶은 날이다.

그리고 어제 반창고를 떼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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